우크라이나의 블라디슬라우 헤라스케비치가 지난 11일 중국 옌칭 국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경기 3차 시기를 마친 뒤 중계 카메라를 향해 “우크라이나에 전쟁은 없다”라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옌칭/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스켈레톤 선수가 전운에 휩싸인 조국을 위한 반전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했다.
블라디슬라우 헤라스케비치(23)는 지난 11일 중국 옌칭 국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경기 3차 시기를 마친 뒤 중계 카메라를 향해 스스로 준비한 팻말을 들어 보였다. 팻말에는 “우크라이나에 전쟁은 없다”(NO WAR IN UKRAINE)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문구의 배경색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키는 파란색과 노란색이었다.
헤라스케비치는 경기를 마친 뒤 <에이피>(AP) 통신을 통해 “나는 내 조국이 평화롭길 바란다. 세계가 평화롭길 바란다. 이것이 나의 입장이다. 나는 평화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우크라이나는 지금 매우 초조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주변 지역에 배치된 군대와 무기에 대한 무수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21세기에 이건 아니다. 그래서 올림픽 전에, 내 입장을 세상에 보여주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헤라스케비치의 행동은 올림픽 헌장을 위반한 정치적 의사 표현에 해당할 수 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올림픽 헌장 50조 2항은 “올림픽에서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이오시는 경기 후 헤라스케비치의 행위를 “평화에 대한 일반적인 요구”로 규정하면서 논란을 일축했다.
앞서 토마스 바흐 아이오시 위원장은 지난 4일 열린 개막식에서 “올림픽 평화 정신에 근거해 이 자리에서 전세계 정치 지도자 여러분께 부탁드린다. (유엔의)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지켜달라”고 말한 바 있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2월 베이징겨울올림픽 기간에 전세계의 분쟁을 중단하자는 내용의 휴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은 1993년부터 올림픽에 앞서 올림픽 휴전 결의를 채택하는 관례를 유지해왔다. 이번이 15번째 결의안이다.
러시아 역시 휴전 결의안에 합의한 173개국 중 하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의 긴장 구도는 이를 무색게 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연합 병력 13만명 이상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에워싸고, 헤라스케비치의 외침이 나온 이날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과 한 화상회의에서 오는 16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물리적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의견을 폈다고 보도했다.
헤라스케비치는 이날 최종 주행 기록 합계 4분06초28로 20명 참가자 중 18위를 차지했다. 그는 2018년 평창 대회를 통해 19살 나이로 올림픽에 데뷔했다. 당시 기록은 12위. 헤라스케비치는 스켈레톤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크라이나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이 종목 개척자이기도 하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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