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카밀라 코주바크가 지난 5일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슬로프스타일 예선을 치르고 있다. 장자커우/AP 연합뉴스
때론 출발선에 서는 것만으로도 박수받기에 충분한 경우가 있다. 엎친 데 덮친 불운을 뚫고 기어이 출발선에 선 선수가 있다. 병마와 싸워 끝내 완주를 이뤄낸 선수도 있다. 이들의 도전은 메달 색과 등수로는 측정되지 않는다. 설사 그들이 꼴찌를 했더라도 말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스포츠 정신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헝가리인 어머니와 캐나다인 아버지를 둔 스노보더 카밀라 코즈바크(18)는 14살 때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당뇨병 환자 중에서도 10%, 주로 소아·청소년에게 나타나는 희소 질환이다. 환자는 가혹한 식이요법과 지속적인 혈당 체크, 인슐린 주사를 영원한 삶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진단 직후 코즈바크의 첫마디는 “스노보드를 계속 탈 수 있을까”라는 탄식이었다. 당장의 통증보다 꿈을 포기해야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컸지만 그는 진단 후 2년 만에 캐나다 대표로 2020 유스올림픽에 나서 빅에어 8위, 하프파이프 9위에 올랐다.
국적을 바꿔 헝가리 역사상 첫번째로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선수로 이번 베이징 대회에 참가한 코즈바크는 세번의 경기를 뛰었다. 지난 5일 여자 슬로프스타일 예선에서 28명 중 28위, 9일 하프파이프 예선에서 22명 중 19위, 14일 빅에어 예선에서 29명 중 17위를 기록했다. 최하위로 시작한 순위는 조금씩 상승했다. 코즈바크는 “어린 1형 당뇨병 환자들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케이시 도슨이 8일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미국의 케이시 도슨(22·스피드스케이팅)이 달려온 ‘짧고 굵은’ 올림픽 선수의 길도 험준했다. 도슨은 개막 3주 전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동료들과 함께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네 번 연속 음성 반응’이라는 베이징행 자격을 갖추기 위해 그는 무려 45번의 검사를 받았다. 결국 7일 1500m 경기 시작 12시간 전 베이징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푸쉬업을 하는 등 체력을 관리했지만 잦은 검사로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설상가상 수화물이 분실돼 스케이트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라트비아 선수의 스케이트를 빌려 신고 레이스를 마친 그의 기록은 29명 중 28위. 기진맥진한 레이스였다. “출발선에 발을 디디는 것이야말로 큰 일이었다”고 도슨은 말했다.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이 지난 5일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경기를 마친 뒤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은 5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결승선을 4분17초16으로 통과했다. 20명 중 20위. 평범한 꼴찌의 성적표지만 놀라운 숫자는 따로 있다. 페히슈타인은 오는 22일에 만으로 50살이 된다. 겨울올림픽 최고령 여성 참가자로, 베이징은 그의 여덟번째 올림픽이다. 그가 꼴찌를 한 5일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이레네 슈하우텐(네덜란드)이 1992년생인데, 페히슈타인은 그해 열린 알베르빌겨울올림픽에서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다. 2009년 혈액도핑으로 2년 자격정지를 받아 밴쿠버 대회를 건너뛴 것을 제하면 30년간 개근이다.
그는 올림픽에서만 9개의 메달(금 5·은 2·동 2)을 휩쓸며 역사를 썼다. 2012 런던올림픽에는 깜짝 사이클 선수로 나서기도 했다. ‘도전 중독자’ 페히슈타인은 최하위로 레이스를 마친 뒤 “오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난 그저 여덟번째 올림픽에서 레이스를 하기 위해 여기에 왔고 내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만의 리웬이가 9일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경기에서 주행을 펼치고 있다. 옌칭/DPA 연합뉴스
대만의 알파인스키 선수 리웬이(20)는 9일 이 종목 세계 최강 미케일라 시프린이 출발하자마자 넘어지며 실격된 슬로프를 종합 2분46초04 기록으로 완주하며 1·2차 시기를 모두 완주한 50명 중 50위를 기록했다. 1위와 차이는 61초06. 가장 느린 완주였으나 32명이 완주에 실패한 레이스에서 박수 받기 충분한 기록이었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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