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사리넨(핀란드)이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손 키스를 보내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혼신의 연기를 마친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빙상을 벗어난다. 터벅터벅 몇 걸음을 걸어 도착한 장소는 경기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공간이다. 선수는 그간 함께 무대를 지켜온 코치와 함께 긴장된 모습으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윽고 점수가 발표되고, 결정된 운명에 따라 선수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 장소는, 이제는 얼음 위 만큼이나 중요한 무대가 된 ‘키스앤크라이존’이다.
키스앤크라이존은 말 그대로 선수들이 팬들에게 키스를 날리거나 감격, 혹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장소라는 의미다. 1983년 세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소속이던 제인 에르코가 티브이(TV) 중계 담당자에게 이 공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붙은 이름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식 규정에도 이 명칭으로 등록돼있다. 이름이 생긴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키스앤크라이존은 티브이 중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팬들은 이곳에서 빙판 위 냉정한 선수들의 모습과는 다른 그들의 인간다운 면모를 볼 수 있었고, 이는 피겨스케이팅 저변 확대에 큰 도움이 됐다.
유영이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손 하트를 보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김예림이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손 하트를 보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서도 선수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친 유영(18·수리고)과 김예림(19·수리고)은 팬들에게 ‘손 하트’를 보내며 결과를 기다렸다. 유독 이번 대회에선 키스 대신 각양각색 하트를 날리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하트앤크라이존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린제이 반 둔더트(네덜란드)가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손 하트를 보내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예카테리나 쿠라코바(폴란드)가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손 하트를 보내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키스앤크라이존은 선수들에게 초조한 기다림의 공간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낸 선수들 입장에선 그저 심판진의 판정을 기다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15일 열린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선 아나스타샤 샤보토바(16·우크라이나)가 도저히 결과를 보지 못하겠다는 듯 마스크로 눈을 가리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나스타샤 샤보토바(우크라이나)가 15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마스크로 눈을 가린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카렌 첸(미국)이 15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스트프로그램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초조한 모습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키스앤크라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에선 선수들의 눈물도 볼 수 있다. 때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 대회에서 도핑 문제로 논란의 주인공이 된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17일 프리스케이팅 무대에서 실수를 연발한 뒤 키스앤크라이존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쏟아냈다.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키스앤크라이존은 코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곳이기도 하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동고동락했던 코치와 손을 꼭 잡거나, 어깨동무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이번 대회 여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딴 사카모토 가오리(22·일본)는 두 남녀의 사진이 붙은 부채를 들고나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이들은 사카모토를 지도했지만 이번 베이징 대회에 함께 오지 못한 카와하라 세이 코치와 그레이엄 미츠코 코치다.
사카모토 가오리(일본)가 15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스트프로그램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카와하라 세이 코치(왼쪽 사진)와 그레이엄 미츠코 코치의 사진이 붙은 부채를 들어 보이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예카테리나 쿠라코바(폴란드)가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코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 등과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대회 여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건 안나 쉐르바코바(18·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평소 라인 프렌즈 캐릭터 브라운 등 곰 인형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쉐르바코바의 개인 인스타그램에는 대형 브라운 인형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키스앤크라이존에서도 쉐르바코바는 갈색 곰 인형과 함께 결과를 기다렸다.
안나 쉐르바코바(러시아)가 1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친 뒤 곰 인형과 함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안나 쉐르바코바와 브라운 인형의 모습. 쉐르바코바 인스타그램 갈무리
베이징/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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