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럭비 롤 모델 박완용·한건규, 두 베테랑의 막바지 ‘불꽃’

항저우AG 팀 정신적 지주
11월 올림픽 예선에도 뛸 듯

한국 럭비의 간판 박완용(오른쪽)과 한건규가 26일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완용이 형, 독하고 착하다.”(한건규)

“(한)건규요? 최고의 선수죠.”(박완용)

26일 중국 항저우 사범대학 운동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7인제 남자럭비 시상식 뒤 만난 대표팀의 플레잉코치 박완용(39·한국전력)과 한건규(37·한국전력)는 진한 아쉬움에도 밝게 인터뷰에 응했다.

둘은 최근 10여년간 한국 남자럭비의 간판이었고, 이날 한국이 은메달을 따는데 밑돌을 놓았다. 전후반 7분씩 15분 안팎에서 승패가 갈리기에 전원이 전력 질주를 해야 하지만 한건규는 ‘철의 수비’로, 박완용은 ‘영리한 공 배급자’로 공수의 균형을 잡는다.

하지만 둘이 활용도는 경기력이나 기술 측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된다. 플레잉코치로 영입한 박완용은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 실전에서 뛰었고, 찰리 로우 전 대표팀 감독이 “세계적인 선수”라고 칭찬했던 한건규는 4강전까지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 7인제 럭비대표팀 선수들이 26일 중국 항저우 사범대학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럭비 시상대에서 홍콩, 중국 선수들과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한국 럭비는 2020 도쿄올림픽에 사상 첫 출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때 시스템 럭비를 도입한 이가 로우 전 감독이다. 지금은 로우 감독을 보좌한 이명근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이 감독은 “박완용과 한건규 역시 로우 감독의 럭비를 잘 안다. 이들이 대표팀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럭비 대표팀 선발 자원이 100명도 안 되는 처지에서 이명근 감독이 한국 나이로 마흔을 바라보는 둘을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둘이 대표팀의 쌍두마차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7인제 럭비대표팀의 김찬주가 26일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홍콩 선수를 향해 태클을 시도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4강전 중국과의 경기에서 목과 가슴팍을 다쳐 결승전에 나서지 못한 한건규는 “완용이 형처럼 독종이 없다. 자신에게 가혹하다. 그런데 후배들한테는 너무 좋은 선배”라고 평했다. 쑥쓰럼타는 코치 겸 선수 박완용은 “건규는 타고난 선수다. 축구도 잘하고 뭐든 따라갈 사람이 없다”라고 추어올렸다.

아시안게임 메달(은, 동)을 이미 여러 개 수집했지만, 둘이 바라던 금메달과의 인연은 끝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다.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2024 파리올림픽 7인제 럭비 예선전(출전권 1장)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이명근 감독은 “10월21일께 대표팀을 다시 소집한다. 국내에서 대기 중인 11명의 선수들과 함께 다시 경쟁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당연히 만능의 한건규와 체력관리의 롤 모델 박완용도 경쟁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팀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툼한 가슴팍을 자랑하는 둘은 “귀국 뒤 전국체전도 뛰어야 하는 데 걱정”이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항저우/김창금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