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신유빈(가운데)이 임종훈(왼쪽)과 함께 볼하트를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은 전지희. 대한탁구협회 제공
30일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신유빈(가운데)이 임종훈(왼쪽)과 함께 볼하트를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은 전지희. 대한탁구협회 제공
“저희 시상식도 진짜 재밌게 하고 있는데, 못 보셨죠?”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친 신유빈(19·대한항공)이 묻는다. 살짝 심통난 표정이다. 기자들이 ‘못 봐서 아쉽다. 뭐가 재밌었느냐’고 묻자 “비밀”이라고 한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떠나려던 찰나, 신유빈이 아쉬운 듯 다시 돌아와 휴대전화를 꺼내며 묻는다. “보여드릴까요? 저희 시상식.” 기자들이 다가오자 신유빈은 활짝 웃으며 영상에 관해 설명한다. “볼 하트를 했고요…. 여기서 이게 재밌는 거예요. (장)우진 오빠가….” 1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 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준결승전 직후 풍경이다.
이날 신유빈은 세계랭킹 1위 쑨잉샤(중국)를 만나 0-4로 패했다. 이로써 신유빈은 동메달이 확정됐다. 이번 대회 탁구는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준결승 패자 모두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기자들이 시상식을 못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금메달이 나오는 아시안게임에서 취재진은 여러 경기장을 오가야 한다. 보통 준결승은 오전이나 이른 낮에 열리고, 결승과 시상식은 늦은 저녁에 열린다.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도, 기자들은 이미 다른 종목 결승전을 취재하러 떠난 뒤다.
신유빈이 1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 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준결승전 패배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에게 시상식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항저우/이준희 기자
전지희(30·미래에셋증권)와 연습을 하기 위해 떠나는 신유빈에게 ‘내일 결승에 진출하면, 모두 시상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유빈은 웃으며 “내일 결승에 가겠다”고 답했다. 신유빈은 2일 오후 1시(한국시각) 같은 장소에서 하리모토 미와-기하라 미유(일본)와 여자 복식 준결승을 치른다. 이미 동메달 3개를 목에 건 신유빈이 메달 색깔을 바꿀 마지막 기회다. 신유빈은 이날 “내일은 (전)지희 언니랑 하니까 (메달) 색깔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물론 신유빈은 동메달에도 기뻐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은 신유빈에게는 행운의 대회나 마찬가지다. 애초 손목 부상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이 불발됐으나,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연기된 덕에 대표팀에 뽑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유빈은 “원래 저는 여기에 없었을 운명”이라며 “제가 아시안게임에 나갈 확률은 0%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그래서 별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동메달을 따니까 신기하고 좋다”고 했다.
첫 아시안게임이지만, 신유빈은 인터뷰 때도 여유가 넘쳤다. 이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몇 번씩 치른 베테랑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날도 신유빈은 인터뷰 녹음을 위해 겨우 팔을 뻗어 휴대전화를 내미는 기자들을 위해 웃으면서 직접 전화기를 모아들었다. 신유빈의 팔을 걱정한 기자들이 다시 되가져오기는 했지만, 어지간한 베테랑 선수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센스였다. ‘삐약이’ 신유빈은 이렇게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항저우/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