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오락실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5 종목에서 우승한 김관우(맨 왼쪽)가 29일 중국 항저우 그랜드 뉴센추리 호텔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선수단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항저우/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대다수 운동선수들은 체력적인 한계 탓에 20대에 전성기를 맞고, 30대부터는 노장으로 불린다. 극소수만이 40대까지 활동해 전설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첫 정식 종목인 이(e)스포츠부터 세계 최강 양궁까지 ‘나이’라는 운명을 거슬러 출사표를 던진 선수들이 이목을 끌고 있다.
이스포츠 스트리트파이터5(격투 게임) 종목에서는 김관우(44)가 지난달 28일 동갑내기인 대만의 샹위린을 세트 점수 4-3(2:1/0:2/1:2/2:0/2:1/0:2/2:0)으로 격파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스포츠 7개 종목에서 한국이 따낸 첫 금메달이었다.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여타 종목과 달리 이스포츠는 시간과 경험을 쌓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대회 준비에 매진했던 김관우는 유년 시절부터 ‘스타리트파이터’ 한우물만 판 경험을 이번 대회에 쏟아부었고, ‘아재들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한국 럭비의 간판 박완용(오른쪽)과 한건규가 26일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신체 능력이 우선시되는 종목에서도 노장들의 활약은 돋보였다. 한국 7인제 럭비대표팀에서는 ‘영원한 주장’ 박완용(39·한국전력)이 아시아 최강 홍콩을 결승전에서 맞아 분전했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21년 만에 정상을 노렸지만, 값진 은메달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박완용은 지난해 11월 2022 아시아 럭비 세븐스 시리즈 2차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명근 감독의 설득 끝에 은퇴를 번복하고 출전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무술인 쿠라시(Kurash)에서는 유도 국가대표 출신 김민규(41)가 90㎏ 결승에서 이란의 사데그 아자랑을 만나 패해 준우승을 했다. 쿠라시는 기술과 경기 방식에서 유도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20여년간 유도복만 입은 김민규에는 새로운 도전이자, 생애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기도 했다. 김민규는 경기를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나 “가만히 안주하고 싶지 않아서 도전했다”며 “제자가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브레이킹 국가대표팀의 김홍열(Hong10)이 3일 인천공항에서 대회가 열리는 중국 항저우로 출국하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회 막바지까지 대표팀 노장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6일과 7일 열리는 댄스 브레이킹 종목에서는 2023 아시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이자 비(B)보이 전설인 김홍열(38)이 첫 우승을 노린다. 오랜 기간 세계 브레이킹 씬에서 최강자로 군림한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 탓에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을 고심했지만, 압도적인 실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김홍열은 이번 대회 금메달을 목표 삼아 2024 파리올림픽까지 내다보고 있다. 파리올림픽에서도 브레이킹은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있다.
남자 양궁의 맏형인 오진혁(42)은 4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리커브 단체전 메달 사냥에 나선다. 이우석(코오롱)과 오진형(현대제철), 김제덕(예천군청)으로 꾸려진 한국 남자 리커브는 지난 2일 북한을 만나 세트 스코어 6-0(57:54/57:56/58:52)으로 승리해 8강에 진출했다. 6일 열리는 8강 상대는 일본이다. 대표팀은 2010 광저우 대회 이후 13년 만에 단체전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오진혁은 2017년 심각한 어깨 부상으로 은퇴까지 권유받았지만, 치료와 보강 운동으로 통증을 이겨내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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