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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연패 뒤 귀한 1승…‘철비’ 이한비는 울보가 됐다

등록 2023-01-31 10:55수정 2023-02-01 02:34

[2023 올해도 뛴다] 페퍼저축은행 주장 이한비
페퍼저축은행 주장 이한비가 두 팔을 뻗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페퍼저축은행 주장 이한비가 두 팔을 뻗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울보란다. 게다가 “국민 울보.” 최근 시원하게 울긴 했다. 해가 바뀌기 직전인 지난해 12월31일. 페퍼저축은행은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한국도로공사를 꺾었다. 페퍼저축은행 주장 이한비(27)는 코트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 경기 끝나고 하이파이브하러 갈 때 선생님들과 선수들 얼굴을 보니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눈물이 날 법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올 시즌 개막 17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무려 18번째 도전 끝에 따낸 값진 승리였다. 게다가 승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니. 그런데 실은 이날만 울보인 게 아니었다. 이한비는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라며 “그냥 눈물이 잘 난다. 이유도 모르겠다. 기쁠 때나 슬플 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아쉬워했다. “올해는 잘 참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코트 안 이한비는 사뭇 다르다. 한국배구연맹이 운영하는 사진 자료 누리집을 보면 이한비는 주로 두 가지 표정을 짓고 있다. 환하게 웃거나, 뜨겁게 포효하거나. 코트 안 이한비는 그렇게 밝고 강해 보인다. 어쨌든 본인은 인정을 못 하는 눈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색해하는 이한비에게 “웃는 게 트레이드 마크 아니냐”고 묻자 “제가요?”하고 되묻는다.

페퍼저축은행 주장 이한비가 경기 용인 드림파크연수원에 있는 훈련장에서 배구공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이준희 기자
페퍼저축은행 주장 이한비가 경기 용인 드림파크연수원에 있는 훈련장에서 배구공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이준희 기자

팀원들은 그를 “할붐”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1996년생. 27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다. 팀원들이 ‘한비 언니는 우리를 지켜줄 것 같고, 품어줄 것 같다’며 지어줬다고 했다. 이한비가 동갑내기 하혜진을 챙겨주는 모습에 팀원들은 둘을 노부부라고 부른다. 페퍼저축은행은 해가 바뀌었는데도 선수 평균 나이(23.9살)가 24살이 안 된다. 여기선 27살도 ‘어르신’으로 대접받는 걸까?

사실 나이가 전부는 아니다. ‘진짜 할아방’ 김형실(71) 전 페퍼저축은행 감독은 이한비를 “철비”라고 불렀다. 김 전 감독은 창단 때 흥국생명에서 이한비를 데려왔고, 주장을 맡긴 주인공이다. 김 전 감독은 페퍼저축은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이한비를 언급했다. “체력이 강하고, 열심히 뛴다”는 칭찬일색이었다. 수십년 배구밥을 먹은 그가 볼 때도 이한비는 팀을 지탱할 대들보감이었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올까. 이한비는 자신이 “체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라고 했다. 원동력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배구 사랑이다. 이한비는 “운동 시간에 나오기 전까지는 ‘너무 힘들다’ 하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재밌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 “배구가 정말 좋다”고 자주 느낀다고 한다.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쉬라고 했는데도 몰래 가서 운동하고 있으면, ‘어이구, 어차피 할 거면 아프다는 소리나 하지 말거나’ 한다”고 했다. 그는 “운동할 땐 아픔도 잊을 만큼 좋다”며 웃었다.

페퍼저축은행 이한비가 경기 도중 포효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페퍼저축은행 이한비가 경기 도중 포효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흥국생명 시절, 이한비는 주전이 아니었다.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엔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다. 책임지기보다는 배워가는 단계였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에 오고 많은 게 달라졌다. 이한비는 “처음 팀에 왔을 때는 5명밖에 없어서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공을 많이 만지고 코트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고 했다. “배구를 많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로 경기 경험이 늘면서 이한비는 무섭게 성장했다. 특히 약점이었던 리시브가 올 시즌 효율 40.44%까지 올라왔다. 지난 시즌(29.35%)보다 10%포인트 넘게 올랐다. 공격성공률(34.44%)로 지난 시즌(30.13%)보다 좋아졌다. 이한비는 다시 돌아가 팀을 고를 수 있다면 “고민은 하겠지만, 페퍼를 선택할 것 같다”고 했다.

팀과 동료에 대한 믿음도 이한비를 키웠다. 이한비는 “예전에는 공을 받기도 전에 공격부터 생각하니까 받는 걸 대충하게 됐다”며 “지금은 내가 받으면 다른 사람이 때려준다는 생각을 한다. 몸으로 실천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했다. 이한비는 또 “제가 좋게 받아서 다른 선수가 점수를 내면 기쁘다. 물론 다른 선수가 잘 받아줘서 내가 해결했을 때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연패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한비는 동료를 믿었다. 그 결과 페퍼저축은행은 23일 안방에서 지에스(GS)칼텍스를 꺾고 승리를 더했다. 시즌 2승째다. 이한비는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지금은 부족하지만, 발전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 크다”며 “앞으로 팀이 더 잘되고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한비(뒷줄 가운데)와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이 23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지에스칼텍스와 안방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이한비(뒷줄 가운데)와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이 23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지에스칼텍스와 안방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무엇보다 그에겐 팬들이 있다. 팬 이야기에 활짝 웃은 이한비는 “팬분들이 저희가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얘기해주셨다. 그 기대를 알고 있다. 항상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한비는 또 “항상 감사하다.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철비’ 이한비는 더 많은 승리로 사랑에 답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강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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