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③ 천태종 삼룡사 주지 무원 스님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세번째 인생멘토는 서울 망우동 천태종 삼용사 주지 무원(63) 스님이다.
무원 스님은 불교계의 대표적인 활동가 중 한명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다문화인을 돌보고, 이웃 종교인들과 교류하며 대북지원사업사업을 주도해왔다. 한국다문화센터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생명존중환경포럼 대표와 한국종교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불교계 3대 종파 중 하나인 천태종의 총무원장권한대행을 거쳐 종단 입법부 수장인 종회의장직도 맡고 있다. 17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 용마산 자락의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삼용사 주지실에서 무원 스님을 만났다.
‘허허실실’은 무원 스님을 두고 나온말인듯하다. 그저 ‘허허’ 웃고만 있는 듯한데, 그는 가는 곳마다 ‘일’을 맡았다. 고려대사 대각국사 의천이 세웠다가 폐사가 된 북쪽 개성 영통사를 천태종이 2003~2005년께 복원할 때 그 일을 맡아 복잡한 난관을 뚫고 육로로 물자를 수송해 29채의 전각을 세운 데서 그의 소통력이 증명되기도 했다. 천태종의 본산인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수도해온 산골수행자였던 그가 20년 전 세상에 얼굴을 내민 이후 어떤 활동가 못지않게 일을 척척 해낸 데는 포대화상처럼 넉넉한 마음이 사람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최근 젊어서 목돈을 마련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FIRE)족’이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겨운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젊은이들의 소망이 반영된 사회 현상이다. 출가자들도 그처럼 절집안을 꾸려나가는 부담에서 벗어나 한가한 수행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무원 스님은 “일터야말로 최고의 수행 터이자 공덕과 수행을 쌓는 복밭”이라고 말한다. 일과 수행, 일과 행복을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이를 분리하려는 데서 고통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곳이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작은 사찰이어도, 다문화인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여도 말이다. 그 비결이 뭘까. 불교의 이상인 화엄 세계를 피안이 아닌 바로 이곳 현실에서 피워내는 비결을 그는 ‘마음 씀’에 있다고 했다. 43년 전 처음 구인사에 입산했을 때 그는 천태종 2대 남대충 스님에게 “무엇이 도(道)냐”고 여쭈었는데, 당시 스승은 “마음 하나 잘 쓰는 게 도”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그 화두로 매사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앉아서 하는 참선이 아니라 마음을 잘 쓰기 위해 매사 최선을 다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선(禪)”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부터 지난 4월까지 머물던 대전 계룡산 광수사에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도덕경 글귀를 담은 펼침막을 머무는 동안 내걸었다. 무엇가를 성취하기 위한 욕심과 그로인한 스트레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처방이었다.
그는 “어떤 일을 잘 해내려는 욕심은 가져도 여유나 여백이 있어야 한다”며 “여유 없이 열심히만 한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예술 세계에만 여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삶에서도, 일에서도 여유와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여유와 여백은 일하지 않고 편히 놀고 한가로운 시간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부족함이 없고 완벽하고 최고라는 생각이야말로 여백을 없앤다”며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여유와 여백이 생긴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 한 일문일답이다.
―왜 조계종 사찰들이 많은데, 천태종으로 출가했나.
“국민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죽음을 보고 무상을 느껴 ‘참나’를 찾아 나섰다. 오대산 월정사 스님들이 장지까지 오셔서 염불해준 인연으로 처음엔 강원도 평창 오대산의 산사에 머물렀는데, 어머니가 구인사에 ‘산 부처’가 계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결국 천태종 구인사로 출가했다. 내가 구인사에 갔을 때는 어머니가 뵈었던 천태종 중창조 상월 원각 대조사께서는 열반한 뒤여서 2대 남대충 종정께 출가했다.”
―천태종은 승려들이 일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데 출가해서 힘들지 않았나.
“천태종 출가자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수행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을 한다. 입산해 도를 닦아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으니 낮이고 밤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처음 49일간은 밤에만 기도를 했는데, 낮에 온종일 일하고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기도했다. 그 49일간 기도가 평생 수행자로 살아가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일이 많아도 불편함이 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출가를 했으니 노동에서 벗어나 수행과 기도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나.
“천태종은 ‘일하지 않는 날은 먹지도 말라’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정신으로 대중들의 자급자족을 위해 승려들이 농사를 직접 짓는다. 출가 당시엔 행자들이 밤에도 각자 전기나 보일러를 담당해 챙겼다. 보일러를 담당하면서 새벽 3시면 꺼야 했다. 남들은 계속 기도해 삼매에 들어가는데, 기도 중에 일어서야 하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내가 수행하고 기도하러 왔지 일하러 왔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승께 그날은 항의할 작정을 했다. 그런데 그날 스승께서 대중설법을 하면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던 낮이든 밤이든 다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면 도(道)가 아닌 것이 없다. 앉아만 있다고 도가 되는가. 노동하다 짬을 낸 한두시간이라도 간절히 집중하면 온종일 앉아있는 이보다 더 빨리 깨닫는다’고 했다. 내 마음을 다 들여보는 듯한 설법에 하심(下心·마음을 내려놓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사인 남대충 (1925~93)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구인사에 가서 49일 기도를 하고, 정식으로 출가를 하게 되어 스승께 ‘도를 어떻게 닦습니까’ 하고 여쭸다. 그랬더니 ‘마음 하나 잘 쓰는 게 도를 잘 닦는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그 마음 하나 잘 쓰는 것이 무엇일까를 화두 삼아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에서는 매년 우리나라에서 김장을 가장 많이 하기로 유명한데 어떤가.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3만 포기의 배추를 스님들이 직접 심어 가꾼다는 것이다. 현 김도용 종정 스님께서도 농사를 강조한다. 구인사에 와서 4박5일이나 한달간 농사를 함께 짓다 보면 정신적인 병도 다 치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농사를 지으면 마음농사도 함께 짓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서울 삼용사 주지를 맡았는데,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코로나로 불거졌지만 환경문제, 자살예방, 남북평화 등 시대적 숙제를 풀기 위해 종교는 종교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코로나로 신자들이 예전처럼 절에 많이 나오지 못하기에 사경(경전을 베끼는 것)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사경들을 모아 절에 사경탑을 쌓아서 세상 문제의 해결에도 동참하면서 개인적인 마음 해탈을 도모하도록 할 계획이다.”
―스님은 경기도 검단에 대가람 황룡사를 세운 것을 비롯해 14개의 사찰을 세웠는데, 무에서 유를 이뤄낸 스님만의 비결이 있나.
“몇개를 짓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저 다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때 부처님 가피와 조화의 공덕이 이뤄지곤 했다. 분수에 넘는 욕심을 내도 일이 안 되지만, 욕심을 전혀 안 내서도 일을 할 수 없다. 노력을 하되 슬기롭게 노력하고, 욕심으로 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놓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인연들이 모여들게 된다. 마음을 비워야 좋은 지혜를 담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태종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개성에 영통사의 전각 29채를 복원하는 대북사업을 주도했는데, 지금 남북관계가 전혀 개선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
“남북관계는 이해타산만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 특히 정치인이나 관료가 ‘내가 뭘 합네’ 하는 상을 내면 될 일도 안 된다. 뭔가 수혜를 베풀듯이 하면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다.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가 정이다. 인간적인 정을 나누다 보면 어렵게 생각했던 것도 뜻하지 않게 풀리기도 한다. 종교인들이 정으로 일을 풀어나가는 모범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을 상대로 영통사 복원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사바세계는 잘 살아도 걱정, 못 살아도 걱정이란 말을 실감했다. 남쪽은 잘살게 되면서 이해타산으로 사람들이 갈라지고, 정이 메말라간다. 북쪽은 못사는 게 안타깝지만 정은 남아있다.”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건강이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는가.
“그때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마저 쉬워야 한다. 코로나는 몸과 마음을 쉬며 마음을 관(觀·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코로나 시대에 많은 사람이 우울증과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해야 마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소리를 관(觀·봄)해서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불자들은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한다. 불자들은 코로나시대엔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 마음을 관하는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한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觀自在)보살’이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있음’을 관하면 관세음보살이 멀리서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치유하고, 고치게 된다. 치유의 보석이 내 마음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마음 병을 왜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가.
“자기 마음의 소리를 스스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데만 팔리다 보니 진짜 내 마음을 보지 못해 마음의 진주를 놓쳐버린다. 그것이 중생과 현인의 차이다. 바깥에 현혹되는 데서 벗어나 내면의 희로애락에 오욕을 보고 들으면 내 마음의 아픔과 상처와 슬픔이 보여서 치유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삶의 길이 뚜렷하게 보인다.”
―스님은 ‘화합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인화성사’(人和成事)를 강조하는데, 화합의 비결은 무엇인가.
“종교인이기 이전에, 좌익이나 우익이기 이전에 우린 인간이다. 그러니 마음을 터놓고 인간적인 정을 나눠야 한다. 특히 지금은 수평적 리더십의 시대 아닌가. 계급장을 떼고 만나면 편해지고, 통할 수 있게 된다.”
―불교에서 인욕을 강조하는데, 스님은 슬기롭게 참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참는 게 슬기롭게 참는 것인가.
“그저 참는 것이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슬기가 나온다. 삼용사 오기 전 대전 계룡산 광수사에 있었는데, 그곳 신자들에게 충청도 스타일, 계룡산 스타일로 느긋하게 수행하라고 했다. 참고 인내한 자만이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스님은 영험 가피를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만들어야 한다며 그 방법 7가지를 제시했다.(△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자비는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외롭다면 남을 도와라. △좋은 마음을 쓰는 게 자선이다. △영험은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해 만드는 것이다. △힘든 이를 돕는 그대가 바로 보살이고 부처다. △그대만의 경전인 경험과 삶의 노하우를 가져라) 특히 무엇이 영험을 만드나.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매사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거기에서 깨달음이 생긴다. 최선이 선(禪)의 경지를 이룬다. 일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과 어묵동정간의 선(禪)은 동일하다.”
―스님은 다문화인을 비롯한 노약자,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 보살행에 앞장서는데, 불가에선 먼저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한 뒤 중생구제를 하는 경향이 짙지 않나.
“불교에서 말하는 상구보리(上求菩堤·위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함)는 지혜고, 하와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구제함)은 실천이다. 자선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상구보리다. 실천의 묘용을 통해 희열을 느끼면 수행을 앞당길 수 있다. 실은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돕는 것이다. 자선행에서 기쁨과 행복이 증장되기 때문이다.”
―동티모르의 유소년축구단을 비롯해 다문화인을 절에 초대할 때도 일절 불교법회에 참여하게 하지 이유는 무엇인가.
“좀 도와주면서 상을 세우는 것은 부끄러운 짓 아닌가. 인연 따라 위로해 주고 도와주면 된다. 그런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마음이 오가는 데 종교가 있는가. 아이들은 그런 개념 자체가 없이 웃는다.”
―스님의 사찰엔 한국종교연합 상임대표인 김대선 원불교 교무나 주낙길 천주교 글라렛 선교수도회 원장수사 등 이웃 종교인들이 자주 오는데, 왜 다른 종교인들과 교류하는가.
“좋으니까. 만나면 그저 좋다.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로 도와줄 것이 무엇인지, 이웃 종교인들이 세상 걱정도 함께하고, 기후위기 같은 세상의 일을 함께 대처해 가는 게 좋다.”
―20년 전만에도 충북 단양 구인사 산골 수행승이었는데, 세상에 나와 어떤 활동가보다 대외업무를 능숙하게 해냈는데, 어떻게 수행자 모드에서 활동가 모드로 전환이 가능했나.
“수행자든, 활동가든 세상을 배우는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고 배웠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도와줬다. 도움 주신 분들에 감사하고 경배를 올리고 싶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서울 중랑구 망우동 용마산 삼용사에서 천태종 본산인 충북 단양 구인사를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선 무원 스님. 조현 기자
서예를 하는 무원 스님. 조현 기자
무원 스님이 실무를 맡아 천태종이 복원한 북쪽 개성 오관산 영통사. 조현 기자
충북 단양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에서 김장할 배추 앞에 선 현 천태종 최고 지도자인 김도용 종정. 천태종 제공
동티모르유소년축구단을 초청해 함께 한 무원 스님. 천태종 제공
한국종교연합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웃종교인들과 함께 한 무원 스님. 조현 기자
서울 중랑구 망우당 용마산 삼용사에서 무원 스님.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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