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학 박사 1호인 문광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 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아홉번째 멘토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초빙교수인 문광(51) 스님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 ‘코로나19’의 극성도 새벽의 징조일 수 있다. 한민족이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듯이. 잠자는 나무와 꽃들을 깨우는 꽃샘추위와 함께 비가 촉촉하게 내린 14일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문광 스님을 만났다. 자신이 근무하는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달려 나온 문광 스님이 봄바람처럼 맞는다.
그는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학·석사, 동국대 선학과와 불교학과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를 거친 불교학자이자 국학자이다. 통광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을 받아 경허-한암-탄허-통광으로 이어지는 전통 강맥을 이었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혜암 스님이 열반하기 전 마지막 시봉자였던 그는 참선 수행에 매진한 수좌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설법하는 문광 스님. 문광 스님 제공
그뿐이 아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퇴계학파인 유학자 부친에게서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힌 그는 또래에서 드물게 일찍이 유(학)·불·도(학)의 경전들을 쉽게 섭렵할 수 있었다. 그가 유·불·도뿐 아니라 주역·정역·성경까지 통달했던 탄허(1913~1983) 스님을 사숙(私淑·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한 것은 그 박람강기(博覽强記·동서고금의 책을 널리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함)와 통섭에서 통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탄허사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탄허학 박사 1호인 그는 <탄허선사 사교회통사상>에 이어 최근에도 <탄허학>(조계종 출판사 펴냄)과 <탄허사상특강>(도서출판 교림 펴냄)을 동시에 출간했다. 탄허 스님은 한국전쟁 이후 강원도 산골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를 이끌면서도 불교 역사상 전무한 역경과 저술 작업을 통해 초인적 성과를 이룬 인물이다. 탄허 스님은 새벽 1~2시쯤 일어나 신선법과 참선으로 하루를 열었다고 한다.
문광 스님도 참선에 연구에 강연까지 눈코 뜰 새 없어 보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선가(禪家)의 보물이라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의 <선문염송 요칙>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도 늘 아침에 통기법(通氣法)이라는 몸 푸는 체조 같은 것을 하고 바로 좌선을 한다. 그것이 바쁜 일상에 압도되지 않고 살아가는 건강 비결이다. 통기법과 좌선을 하루도 끊김 없이 이어온 지 6000일이 넘었다고 한다. 햇수로 16년이 넘은 셈이다. 그는 “운동이든 수행이든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 이처럼 끊기지 않게 습관을 들이는 게 가장 좋다”며 직접 지은 신조어인 ‘최귀연공’(最貴連功·끊기지 않고 단련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을 늘 불자들에게 강조한다.
특히 그는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 안정을 위해 선(禪)을 최고의 비법으로 제시한다. 미래에 대한 예지와 예언으로 미래학의 지평을 연 탄허 스님이 “변화무쌍한 미래엔 변화 자체보다 두렵고 놀라서 해를 입는 사람이 더 많다”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참선을 권유한 것과 같다. 일문일답이다.
# 근심·걱정·스트레스가 없는 마음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선(禪)과 명상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왜 선이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선은 생각이 끊어진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선과 명상을 하면 본래 일 없는 무사(無事)하고 평화로운 자리로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떠날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 ‘심체리념’(心體離念)이란 말이 있다. 우리 마음의 본체는 원래 생각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근심과 불안의 실체는 본래 없는 것이니 자꾸 생각 끊어진 마음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정신수양법과 마음관리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한국이란 땅은 수행하러 태어나는 곳인 것 같다. 불교 수행은 삶에 깊이 녹아 있고, 도교 또한 국선도 등 마음 닦는 법이 이어져오고, 유교의 정좌법(靜坐法)도 있다. 유교의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원리는 ‘마음을 일념으로 해서 흩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으로, 유불선(儒佛仙)의 원리가 동일하다. 일례로, 퇴계의 ‘중화탕’(中和蕩)은 한국 유학의 심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생각에 삿됨이 없는 ‘사무사’(思無邪), 선행을 실천하는 ‘행호사’(行好事),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막기심’(莫欺心), 시기 질투하지 않는 ‘막질투’(莫嫉妬), 탐욕을 경계하는 ‘계탐’(戒貪) 등 30가지 약재를 함께 달여서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중용의 마음이 최고의 약이라는 은유인데 멋지지 않은가.”
―한국 사상의 해답을 탄허학에서 찾는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원효에서 탄허까지 내려오는 회통의 정신은 한국학의 중요한 특질이다.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 도교, 기독교를 회통한 탄허학을 21세기 한국학의 새 지평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대 세계의 특징인 융복합과 융섭의 경향이다.”
# 탄허 스님이 미래 예지는 힘든 세상을 살아낼 중생들을 위한 연민의 발로
―통상 불교 고승들은 역을 점치는 것이라며 멀리했는데, 왜 탄허 스님은 주역과 정역을 중시하고, 미래를 예지했나?
“중국의 근대철학자 모종삼은 <중국 철학의 특질>에서 동양사상의 핵심을 역학의 ‘우환의식’으로 보았다. 중생들에 대한 연민심의 발로였다. 힘든 세상이 온다는 것을 법력으로 알았으니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할지 미리 알려주고 싶었던 보살정신에서다. 역학의 예지는 성현의 무심(無心)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도 미래학이 많다. 미륵불이라든지, 관음·지장보살에게 중생제도의 사명을 준 것도 미래예지였다. 삿된 욕심에서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과는 경지가 다른 것이다.”
―탄허 스님은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능가하는 것이 바로 동양의 역학적 정치사상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본 까닭은?
“동양이 정신적이라면 서양은 물질적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모두 물질과 소유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물질은 삶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역학은 그 중심을 항상 마음과 정신으로 설명한다. 동양 고대의 정치사상은 바로 인간의 마음과 정신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심학적 정치사상이기 때문에 결국 물질적 풍요가 충족되면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동양의 정치사상을 말했던 것이다.”
―탄허 스님은 지구의 미래, 갈등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았는가?
“동양과 서양, 좌파와 우파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북극과 남극은 있어도 동극과 서극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의 통일이 중요한 기점이 된다고 했다. 한국의 통일은 지구적으로 볼 때에도 큰 사건이라고 했다. 인간의 문제보다도 기후위기, 지진, 화산 같은 지구 자체의 격변과 변화를 많이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호들갑 떨지 말고 참선하라는 것이다. 선업을 짓고 남을 도우면서 말이다.”
문광 스님이 사숙한 탄허 스님. <한겨레> 자료사진
#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류 드라마는 영웅이 아니라 바른 마음을 가진 개개인이 주인공
―한류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데, 어떤 점이 어필한다고 보나?
“미드(미국 드라마)는 영웅이 나와서 해결한다. 히어로물이 대세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엔 그런 영웅 대신 깨어 있는 개개인이 있다. 인간의 근본 마음을 가진 상식적인 휴머니즘의 ‘마음’이 바로 한국 장르의 특징이다. 심학(心學)이다.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좀비물도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얘기하고 있다. ‘최고의 영웅은 바른 마음 아니겠어?’라는 질문을 세계에 던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누구나 존중하라는 거다. 결국 불교의 불성과 유교의 심성이 한류의 기저라고 볼 수 있겠다. 배트맨, 슈퍼맨 같은 초능력적인 ‘맨’(man)이 아니라 그냥 ‘휴먼’(human)이라는 보통의 ‘맨’이 영웅인 것이다. 왜 영웅인가? 근본 마음, 순수한 심성이 있으면 영웅인 것이다. 그래서 감동이 있고 정(情)이 있다. 한국적 신파가 단순한 신파로 끝나지 않고 세계적인 신파로 엄청나게 세련된 방식으로 문화화되고 문명화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관통할 테니까.”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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