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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정말로 사랑할 때, 여러분은 그것과 하나가 된다”

등록 2023-12-18 14:15수정 2023-12-18 21:46

통합심리학의 태두 덴버 통합연구소 켄 윌버
켄 윌버. 조현 기자
켄 윌버. 조현 기자

‘나’보다 ‘우리’가 익숙했었던 우리. 그러나 어느새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 시대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 속에서 빈부격차, 정치 이념 갈등과 남녀노소로 갈리며 개인과 개인의 소통도 막혀갑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더욱 그립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를 진행하며 국내편에 이어 미국에서 6명의 고수들을 만났습니다. 미국편 두번째는 통합심리학의 태두 켄 윌버(74)입니다.

지날달 17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통합연구소에서 통합심리학의 대가 켄 윌버를 만났다. 덴버시내 고층아파트 꼭대기 층의 펜트하우스에 자리한 통합연구소에서였다. 자연주의 음유시인 존덴버가 너무도 사랑해 자신의 이름을 바꿀 만큼 사랑했던 덴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내 고층아파트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에 통합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존 덴버가 노래한 ’로키 마운틴 하이’에 나오는 로키산맥의 설산이 멀리 펼쳐져 있다.

거실과 연결된 툭 터진 서재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들 뒤로 켄 윌버가 앉아있다가 걸어왔다. 23살에 첫 저서 ‘의식의 스펙트럼’을 썼을 때 많은 이들이 플라톤 이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의식분야의 아인슈타인이 나타났다며 찬사를 보낸 그가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 등의 책 표지에 등장해 세계인을 매료시켰던 형형한 눈빛의 젊은이가 아니었다. 긴노랑머리의 노학자는 총기와 영기를 내뿜던 젊은시절 수행자에서 로키산맥을 품에 안는 듯한 넉넉한 예술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켄 윌버는 동양의 깨달음과 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함으로써 인간 의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잭 크리텐든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은 “21세기는 다음 세 명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여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냐, 니체냐, 아니면 켄 윌버냐.”고 했고, 로버트 키건 (하버드대 교수)은 “그처럼 심오한 정신과 마음으로 동양과 서양의 지혜를 통합한 사람은 없었다”고 격찬한 바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통합심리연구소에 놓은 켄 윌버의 젊은 시절 사진. 그 뒤로 덴버의 밤이 펼쳐져 있다. 조현 기자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통합심리연구소에 놓은 켄 윌버의 젊은 시절 사진. 그 뒤로 덴버의 밤이 펼쳐져 있다. 조현 기자
켄 윌버가 동양에 선물한 축복이라면, ‘깨닫기만 하면, 영적 체험을 하기만 하면, 보통 사람들과 완벽히 다른 신적인 존재가 되거나 성자적 인격체가 된다’는 우상을 깨뜨린 것이다. 동양만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절날 자신을 찾아왔다느니, 깨달음으로 인해 부처가 됐다고 사람들을 현혹시켜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운 사기꾼들은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현재까지도 활개를 치고 있기에, 켄윌버의 ‘우상 깨기’는 여전히 절실하다. 켄 윌버는 동양에서 깨달았다거나 영적 체험을 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경우 트라우마가 해결되고 인격적 성숙까지 동시에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왜 그럴까

“성장하면서 억압된 것들은 의식 밖으로 밀려나 무의식으로 숨게 된다. 따라서 알아차림이 나아져도 마음 지하실에 숨어있는 것까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설사 깨달음의 경험을 가지고 있더라도 억압된 그림자가 여전히 신경증과 질병, 불편함을 야기하기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조차 신경증(노이로제)과 그림자요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완전히 깨어나 어른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과 상호작용을 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그들은 뭔가 좀 이상하거나 지금 여기에서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적 체험을 했다는 이들이 돈 문제나 성적 욕망의 문제를 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켄 윌버는 “깨달은 의식으로 무의식의 그림자까지 고치는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특정한 훈련과 실습을 하고, 심리치료나 정신분석을 병행할 때 억압되고 감춰진 것들을 찾아내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윌버는 인간은 누구나 8단계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데, 각 단계마다 다른 궁극의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첫번째 태고단계엔 음식과 생존, 두번째 마법단계엔 섹스와 정서적 쾌락, 세번째 마법-신화단계엔 권력과 안전, 네번째 신화단계엔 사랑과 순응주의적 소속감, 다섯번째 합리 단계엔 성취와 탁월성, 여섯번째 다원 단계엔 감수성과 배려다. 여기까지가 1층이다. 7번째 단계는 2층이다. 7번째 단계는 애정이 깃든 수용과 포용, 3층은 통합의 단계인데, 순수한 자기 초월과 매 수준마다 증가하는 전체성을 다루는 신비적 일체성이다.

서재의 켄 윌버. 조현 기자
서재의 켄 윌버. 조현 기자
윌버는 배타적인 근본주의적 종교는 “2살에서 7살 사이에 가진 마술적 신화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근본주의 종교인의 그 누구도 살아계신 궁극적인 실재 하나님에 대한 신비로운 직접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런 사고에 머물러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깨달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동양전통을 짓밟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심리학이 ‘성장의 길’을 도와준다면, 명상은 ‘깨어남의 길’을 돕는다. 그는 이 둘을 통합함으로써 인간 진화의 더욱 온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윌버는 10대 중반 노자의 도덕경을 비롯한 동양 경전을 읽고 난뒤 “기존 종교의 대부분이 어린아이 같은 신비주의와 근본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신념, 믿음 같은 작은 작은 자아들이 참자아가 아니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작은 작아를 극복해 ‘빅마인드’와 하나되는 것이 종교 전체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대때부터 자신과 세상의 분리감에서 벗어나 일체감을 체험하는, 이른바 깨달음의 체험을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그는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것들과 완전히 동일시될 때 우리는 모든 존재의 근거와 하나가 되어 깊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아버지가 하나’라고 한 심오한 체험도 바로 분리를 극복한 하나됨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당신이 제시한 ‘통합 마음 챙김’을 통해, 어떻게 깨어날 수가 있는가.

“통합된 마음챙김을 수행하기 위해 앉을 때 수행은 무엇보다도 먼저 관찰자의 자세를 취해야한다. 작은마음을 내려놓을수록 작은 자아를 초월해 크고 거대한 통일된 참나 안에서 안식할 수 있게 된다. 모든 형태의 깨어남은 바로 지금 자신의 생각을 목격하고 있는 이 진정한 관찰자를 알아차리는 데 있다. 관찰자가 되면 더 이상 분리된 생각에 집중하지 않는다. 더 이상한 단순한 사고장치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의식과 동일시된다.

-당신이 마음의 눈을 뜨게 한, 영적 체험과 그 후의 변화는.

“살면서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10대 중반에 처음이자 가장 이른 깨달음을 경험했다. 과거의 고문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사람들이 눈을 파내거나,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매달거나, 엄청난 고문을 당하는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소름 끼치는 그런 고문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명상을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견뎌낼 수 있고, 여러분은 그 모든 형태들을 견뎌왔다’는 답을 얻었고, 바로 그 순간 나는 나의 분리된 작은 자아와 결별하고 이 진정한 자아, 이 순수한 증인 의식과 동일시했다. 참자아는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목격하는 부분과 완전히 동일시될 때, 우리는 모든 존재의 완전한 근거와 동일시되었다. ”

-당신은 명상에만 의지해 그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며.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치유작업을 따로해야 한다고 했다. 그림자는 너무 교묘해서, 쉽게 자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심리적 그림자나 숨은 지도를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나.

“프로이트의 심리치료, 칼 융의 심리치료, 프리츠 펄스의 게슈탈트 치료가 있다. 이러한 치료법 중 다른 치료법보다 더 나은 치료법이 있다고 믿는다. 극도로 과도하게 통제하는 상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당신의 상사에게 매우 화가 나 있고, 당신은 미쳐가고 있다. 펄스가 가르쳐준 대로 자기 앞에 빈 의자를 놓고, 통제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라.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왔다 갔다 하면서, ‘왜 나한테 그러는 거지?’라고 질문하고, 답변해보라. 그렇게 하면 그 상사가 당신을 덜 짜증 나게 하고, 당신의 불안은 줄어들 것이다.”

-신체적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만큼이나 요즘은 감정이 다치지 않을 권리도 중요해지고 있다. 감정을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들은 과거에 문제가 생겼거나, 불안을 유발했거나,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무의식 속에 봉인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한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것은 실제로 당신 자신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그들에게 당신의 감정적 존재를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을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한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유일한 감정은 투사된 그림자 감정이다. 당신은 그녀가 당신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하고, 당신의 감정이 당신 스스로를 공격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켄 윌버와 조현 기자. 조현 기자
켄 윌버와 조현 기자. 조현 기자
-당신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트레야를 5년간 병간호하면서 느낀 러브스토리를 ‘그레이스 앤 그릿’(GRACE AND GRIT)이라는 책으로 쓴 적이 있다. 암 환자와 가족 등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모든 것을 사랑하라. 그것이 고통이어도 질병이어도 어떤 부정적인 것이 일어나도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것을 밀어내지 않고, 숨기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은 그것과 하나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때, 그리고 여러분이 그것을 정말로 사랑할 때, 여러분은 그것과 하나가 된다.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불러일으켜 일어나는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는 이 사랑을 더하면, 여러분의 고통 속으로 흘러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에 찬 접근 방식을 통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포용할 수 있다. 트레야는 통증에 시달렸음에도 암과 고통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은 지구인들이 신화적 순응주의적 4단계를 지나, 합리적 근대단계인 5단계에 도달하면서,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이 일어나고, 대의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미국 헌법도 만들어졌다고 했다. 당신은 지구 인구의 10%가 통합적 단계에 이르면 인류역사에서 가장 심오한 티핑포인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언제쯤 10%에 이를까.

“아마 100년 정도가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가장 먼저 일어날 일 중 하나는 우리가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전쟁은 초기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본질적으로 내재되어있다. 근본주의 종교는 지구 상의 다른 모든 근본주의 종교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동서양 사상에 심취돼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당시 동양 철학의 어떤 부분이 당신을 커다란 충격에 빠뜨렸나?

“처음으로 동양철학을 꽤 깊이 접했을 때, 저는 10대 초중반이었다. 15살에서 16살 사이였을 때, 처음으로 사토리(깨달음, Satori) 또는 통일된 경험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한두 해 전에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것은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동양 종교, 특히 불교뿐만 아니라 아드바이타, 베단타, 도교, 힌두교의 무아(無我)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통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몇년 후 깨달음 체험을 하고 나서, ‘상대적인 자아가 있고 나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나의 진짜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자아는 없다. 참자아가 아니고, 나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니다. 에도 로시(Edo Roshi)로부터 공안(화두)을 받아 수행한 뒤 몇년이 지나지 않아, 내가 볼 수 있는 작은 자아가 아닌 진짜 자아를 가졌다는 것을 궁극적인 현실로 받아들였다. ‘내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볼 수 있었을 때, 누가 보고 있었을까?’, ‘누가 이 작은 자아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게 큰 자아였다. 그것이 스즈키 로시가 빅 마인드(큰마음)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 경험들과 그것들이 세워준 신념체계로 인해 좋은 일이 많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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