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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

등록 2021-06-09 07:33수정 2021-06-09 10:52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코로나는 엎친 데 덮친 충격이다. 이 충격은 일시적 재앙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가 좀 더 근본적인 변화의 시발이 될 수 있다.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선각자들의 혜안을 듣기 위해 휴심정이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인생 멘토에게 코로나 이후의 길을 묻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하는 시리즈의 마지막 멘토는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93) 홍역학회 고문이다.

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 홍역학회 고문. 사진 조현 기자
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 홍역학회 고문. 사진 조현 기자

그는 주역을 통달해 ‘이주역’으로 불렸던 야산 이달(1889~1958)의 제자다. 어린 시절부터 김시습의 화신으로 불릴 만큼 영민했던 야산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철원에 수십만평의 땅을 매입해 농장을 짓고 고향 김천에서 빈민들을 이주시켜 공동체 생활을 했다. 한국전쟁 때는 미리 300가구를 충남 태안 안면도로 피난시켜 살리기도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재야 사학자 이이화가 그의 아들이다.

야산의 가르침은 1985년부터 주역을 가르친 대산에 의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대산은 조부 김병철에게 한학을 익힌 뒤 19살 때 야산을 찾아가 문하생이 됐다. 13년 동안 야산한테서 <주역> <서경> <시경>을 배웠으며, 생활고 속에서도 술사의 길로 빠지지 않고 주역 공부에 매진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정규 학력의 전부지만, 문하에 명문대 교수들이 즐비하다.

오랫동안 대전에서 거처하던 그는 부인과 사별하고 2년 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큰아들 집으로 옮겨왔다. 지금도 매일 오전과 오후 30분씩 집 앞 몽촌토성을 걷는다. ‘천일(天一) 지이(地二) 천삼(天三) 지사(地四)…’라고 박자를 맞추며 걷는다. 손은 많이 떨리지만, 그런 걸음 습관 때문인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경쾌하게 걷는다.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93) 홍역학회 고문. 조현 기자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93) 홍역학회 고문. 조현 기자

그는 어린 시절 부모 아래서 보살핌을 받으며 잘 먹을 때는 뚱뚱보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돌이라도 씹을 나이에 대둔산에 올라가 공부하며 굶주리거나 소금밥을 먹다 보니 몸은 비쩍 마르고, 39살 때는 피를 토하며 혼절해 폐병 3기 진단을 받고 죽을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후 공자가 주역 8괘에 따라 하도록 한 전신운동으로 건강을 지켜 80대 후반까지도 전국을 누비며 주역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스승 야산의 뜻을 잇기 위해 설립한 홍역학회의 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대선 정국이 되면 여기저기서 점괘를 물어오는 주역의 대가임에도, 신비주의에 현혹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주역 점이란 귀신이 있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법칙에 따른 수(數)를 해석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과 수양의 정도에 따라 해석의 깊이가 천양지차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주역의 핵심이 ‘중정’(中正)에 있다면서 시종일관 이를 강조했다. 정치란 정(正·바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바름과 선, 정의란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내 편에겐 정의가 상대편엔 편벽돼 ‘내로남불’이 되기 쉬운 것이니, 지도자가 공정하고 통합하려면 ‘중’(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중’이란 치우침이 없고, 편벽됨이 없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해법 역시 ‘중정’에 있다고 했다. 사람의 몸을 끌고 다니는 원동력은 마음과 기(氣)이며, 기와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몸도 편안해지는 것이니, 마음을 수양해 내 기운과 천지 기운이 서로 잘 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역(易·바뀜)인데, 주나라 때 나와 주역이라고 한다, 음양이니, 사상(四象)이니 하는 것은 다 주역에서 나온 것이다. 주역은 변혁하는 것이다. 변혁을 모르면 안 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어린아이가 자라고, 늙어서는 검은 머리도 하얗게 변한다. 주역은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수시변역(隨時變易)한다. 공연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바뀐다. 따라서 때에 따라 변하되, 사람의 도리, 즉 중정을 지키면서 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주역의 가르침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도 매일 아침 주역 점을 쳐서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점괘를 귀신이 알려준다고도 하고, 음양의 이치나 신명이 발동한다고도 하는데, 어떤 이치인가?

“귀신이 알려주는 것도, 신명이 발동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의 정도에 따라 아는 것이 달라질 뿐이다. 처음 주역을 배워 점을 쳐보고는 귀신처럼 딱딱 맞아 무서워서 점을 못 쳤다. 혹여 나쁜 괘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을 치고 공부해보니 정신 수양이 됐다. 주역은 점 책이 아니다. 주역 책인데 점치는 게 그 안에 있는 것뿐이다. 주역은 최고의 철학이다. 그런데 주역 괘는 수(數)다. 사람들은 미래의 수를 내려 한다. 무슨 좋은 수가 없나, 그럴 수가 있나, 신수와 재수는 어떠냐는 게 다 ‘수’(數) 타령이다. 변혁기에 미래를 열 ‘뾰족한 수’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운수는 어떤가?

“따로 점을 칠 필요도 없이 그해 간지(干支)만 주역으로 풀어도 알 수 있다. 작년(2020년)은 경자년(庚子年)이다. 경(庚)은 천간(天干)으로 일곱번째로 칠간산(七艮山) 산(山)괘다. 자(子)는 지지(地支)로 첫번째로 일건천(一乾天)이다. 산과 천은 산천대축(山天大畜) 괘다. 7과 1을 합한 8로 효를 뽑으면 효는 6개니, 8에서 6을 빼면 2효가 남는다. 산천대축괘를 뒤집으면 천뢰무망(天雷无妄) 괘가 된다. 이 괘는 ‘망령되게 잘못 재앙을 취하니 스스로 경계하여 함부로 발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괘에서 나오는 무망질(无妄疾)은 역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질에 안 걸리려면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신축년(辛丑年)도 이렇게 수로 환산하면, 8과 2, 지택림(地澤臨) 괘가 나온다. 8과 2를 합하면 10인데, 6효를 빼면 4효가 남는다. 즉 지택림괘 4효가 변해 뇌택귀매(雷澤歸妹) 괘가 되는데, 총력을 기울여 병을 퇴치함을 의미한다. 내년(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이다. 천화동인(天火同人) 괘가 나와 여섯번째 괘가 동하면 택화혁(澤火革) 괘가 나온다. 변혁의 해가 된다는 것이다.”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 홍역학회 고문. 조현 기자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 홍역학회 고문. 조현 기자

―매일 주역 괘를 뽑는다고 했는데, 정작 부인과 선을 보는 날은 나쁜 괘가 나올까 봐 아예 괘를 뽑지 않았다고 들었다. 괘가 나쁘다고 그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점을 치기보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게 현명한 것 아닌가?

“남한테는 나처럼 점치라는 말은 안 한다. 성실하게 살면 된다.”

―주역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정(中正)이다. 공정하고 바르게 산다는 것이다. 내 가족에게 바르면 상대한테는 편벽될 수 있다. 그렇게 혼자만 정의로워선 안 된다. 치우치지 않는 중(中)이 있어야 한다. 정(正)만 하면 바르기만 하고, 중(中)은 안 따라온다. 자기들끼리는 바르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우치지 않는 중을 행하면, 바르게 된다. 중이 되면 정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남남이, 남북이 싸우는 것도 자기만 바르다면서 편벽되기 때문이다.”

―야산은 번뇌망상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했는데, 번뇌망상은 무엇인가?

“나만 알고, 나만 옳다고 하는 것이 그 뿌리다. 그것이 정신병이 되고,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게 한다. 번뇌망상이 아니면 몇백년이고 살 수 있는데, 그 번뇌망상이 인간을 소진시킨다.”

―야산은 지옥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지옥은 무엇인가?

“자기가 바로 지옥이다. 잘못해놓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이 사는 곳이 지옥이다.”

―야산은 주역, 점, 관상, 풍수에 두루 능통했는데도 왜 당시 유가 전통과 달리 세상을 뜰 때 유골을 화장하고 봉분도 만들지 말고 한치의 땅도 남기지 말라고 했나?

“그러니 야산 선생님이지. 그분은 언제나 현실에 입각했지, 허무맹랑한 것을 믿지 않았고, 허망한 말씀도 하지 않았다. 점술과 풍수를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술사의 삶과는 달랐다. 꼿꼿하게 할 말만 해서 덧붙이고 뺄 게 없었다. 왜정시대에 모두 일본 순사라면 벌벌 떨 때도 지혜를 써서 순사들을 꼼짝 못하게 한 분이다. 사람이 죽으면 썩어버리는 것이니 남김없이 태워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분의 삶다운 말씀일 뿐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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