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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이름보다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등록 2021-07-02 06:01수정 2021-07-02 06:06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한 유대인 부부가 논쟁을 벌이다 랍비를 찾아갔다. 문제는 그들의 첫 아이에게 지어줄 이름에 관한 것이었다. 부인이 먼저 랍비에게 말했다. “남편은 시아버님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기 원하지만, 저는 저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고 싶어요.” 이스라엘에서는 후손들이 훌륭한 조상의 이름을 따르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랍비가 부부에게 물었다. “당신들 아버지의 이름이 뭡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두 분 다 요셉입니다.” 이에 랍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부인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시아버님은 말 도둑이었고, 저의 아버지는 정직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제 아들이 어느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잖아요?” 랍비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를 요셉이라 부르시오. 그러고 나서 말 도둑이 될지 혹은 정직한 사람이 될지 지켜보시오. 그러면 어느 쪽 아버지의 이름을 따른 것인지 알게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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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단어는 "이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서 중세 국어에서는 “일홈” 또는 “일훔” 등으로 표기되었습니다. 좁게는 성 뒤에 붙은 개인명( personal name)만을 말하며, 넓게는 성(姓)을 포함하여 사람이나 사물을 부르거나 가리키는 모든 명칭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한자로 명(名)이라고 씁니다. 이 명자를 파자 하면 명(名)은 저녁을 뜻하는 夕(석)자 아래에 입 구(口)자가 있습니다. ‘어두운 저녁에 입을 벌린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라는 글자를 한자로 그렇게 썼습니다.

옛날에는 이름이 여러 개였습니다. 한 여섯 개쯤 있었습니다. 먼저 태명(胎名)이다. 임신한 여성의 태아가 태어나기 전까지 부모가 임시로 붙이는 이름으로 배냇이름이라고도 합니다. 태명을 지어 부르는 것은 일종의 태교이기도 합니다. 부르기 좋은 단어, 건강을 기원하는 단어를 태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아들인지 딸인지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짓는 경우가 많아서 중립적인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어나면 아명(兒名)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명은 좀 천한 이름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조 세종 때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돼지)였습니다. 고종 황제의 아호는‘개똥이’였습니다. 아명을 이렇게 천하게 지은 이유가 있습니다. 아호를 좋은 뜻의 이름으로 지으면 귀신이 와서 해코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호를 천한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그러면 귀신이 왔다가 이름이 천하기에 얼굴을 찡그리고는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20세 되는 성인식 때 이름을 지어주는 데 이 이름을 자(字, 글자, 자)라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이 자는 본명이 아닙니다. 황희 정승의 자는 구부(懼夫)이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자(字)는 원춘(元春)입니다.

본명은 어릴 때 짓지만 호적에만 넣어두고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명(實名)을 기피하는 풍습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본명, 실명은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라도 실명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황희 정승의 본명은 희(喜, 기쁠 희)입니다.

호, 아호라는 이름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애칭을 뜻하는데 특별히 자기의 작품에 이 호를 많이 사용합니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호는 포은(圃隱)이고, 성삼문은 매죽헌(梅竹軒)이었습니다. 황희 정승의 호는 방촌(厖村)이고, 추사 김정희의 호는 추사(秋史)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호는 백범(白凡)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는 중수(中樹)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가 시호(諡號)라는 이름입니다. 시호는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이 죽은 후에 임금님이 주는 이름입니다. 황희 정승의 시호는 익성공(翼成公)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시호는 충무(忠武)입니다. 충무는 호가 아니라 시호입니다.

이름이 인격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사는가가 그 이름을 결정합니다. 이름에 맞는 인격, 인격에 맞는 이름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입니다.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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