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이다. 1885년 독일 남서쪽에서 유대인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63살에 처음 교수가 되기 전까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재야 학자로 살았다. 1917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위스 망명을 한 후 1933년부터는 나치를 피해 방랑한 15년간 유럽 여러 도시와 미국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뛰어난 여성들과 세번이나 결혼을 하고, 베버나 지멜, 루카치, 베냐민, 브레히트, 아도르노를 비롯한 당대의 수많은 석학이나 예술가들과 만나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치열한 토론을 했다.
30년이 넘는 최악의 망명 상황에서도 그 수많은 책을 썼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스위스에 망명한 이듬해에 낸 <유토피아의 정신>, 나치에 쫓긴 지 3년이 지난 1935년에 낸 <이 시대의 유산>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썼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의 순간을 살면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절망했기에 희망을 더욱 절실히 추구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독에서 환갑이 지나 처음으로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곧 공산주의 정권과 마찰을 일으켜 10년 만에 1957년에 퇴직당했다. 74살 때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희망의 원리>를 20년 만에 완성했다. <희망의 원리>는 사실 반세기에 걸친 블로흐 사상의 결산이었다. 그는 76살 되던 1961년 서독으로 이주하여 1977년 숨을 거두었다. <희망의 원리>는 철학이나 문학 또는 역사 등 인문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음악, 미술, 건축 등 모든 예술분야와 기술, 과학, 의학 등까지도 아우르는 책이다. 모든 학문과 예술 분야를 ‘희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꿰뚫는 사상서라는 점에서 ‘희망의 백과사전’이다.
블로흐는 이 책에서 희망에 대해서 다섯가지로 정의를 했다. 첫째, 인간은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희망을 먹고 산다. 둘째,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삶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셋째, 희망이 힘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삶을 포기하지만 희망이 있는 사람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극복하게 된다. 넷째, 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다섯째, 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을 약속해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압되는가 싶었는데 다시 변이된 모습으로 창궐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것일까?’하는 비관적인 생각부터 독감처럼 함께 살아야 하는가의 체념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돌아보면 이 보다 더한 것들로부터도 이겨낸 경험이 있습니다. 이 보다 더한 공포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습니다.
이 철학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독일의 신학자인 몰트만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를 읽고 나서 희망의 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몰트만은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시다. 희망의 원천이 그리스도이시다. 희망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희망을 누리고 바로 이 희망을 전도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한 인생은 불쌍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고,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삽니다. 절망은 인간을 죽이는 독약이고, 희망은 인간을 살리는 명약입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