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기로 유명한 왕이 있었다. 그 나라는 그의 통치 아래서 오랫동안 행복과 번영을 누려왔다. 오랫동안 행복이 계속된 비결은 왕이 매번 올바른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툼이 생기면 신하들은 왕에게 찾아와 그의 판결을 듣고 따랐다. 재판 때문 왕은 양측의 말을 다 들은 후 가죽으로 된 두툼한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책을 꼼꼼히 살피고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매번 옳았고, 항상 양측 모두를 위한 해결책이었다. 이웃 나라에서 왕의 지혜의 책을 훔쳐오라고 자객을 보냈다. 자객은 지혜의 책을 훔쳐 오다가 내용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첫 페이지에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형식이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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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고도의 정신을 수련하고, 훌륭한 인격을 소유했다 할지도 거지꼴을 하고 예의 없이 말하고 필요한 자리에서 주머니를 열지 않는 사람이라면 비호감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아무리 멍청하고, 성격이 지랄맞고, 제 잇속에 빠른 사람이라도 잘 차려 입고 논쟁의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고 식사가 끝난 후에 먼저 계산대로 달려간다면 사람들은 호감있는 사람이라고 평할 것입니다. 사람은 그 속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가진 스펙을 갖춘 인격과 동일시합니다.
헤겔도 1821년 쓴 저서 ‘대논리학’에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나가는 ‘레떼르’를 달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합니다. 그러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고 말했습니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없는 형식이라면 그 결과는 허영으로 끝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는 얼마나 잘 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할 수 있는 자젹증을 갖고 있느냐는 묻는다는 것입니다.
알고 떠들어야 합니다. 진짜는 멋부리고 폼 잡아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아무리 많아도 방위를 알 수 있는 별은 북반구에 북극성 하나밖에 없고, 남반구에 남십자성 밖에 없습니다. 껍데기 보다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