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후 관점 디자이너가 쓴 <관점을 디자인하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추운 날, 두 친구가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친구가 뒤늦게 도착해서 막 가게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술집 입구에서 꽃을 팔던 할머니가 다가왔다. “신사 양반, 꽃 좀 사줘요.” 친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추운데 왜 꽃을 팔고 계세요?” 할머니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손녀가 아픈데 약값이 없어서 그래요. 꽃을 팔아야만 손녀에게 먹일 약을 살 수 있다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들은 친구는, 할머니가 얘기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꽃을 샀다. 꽃을 들고 술집으로 들어서자, 기다리던 친구가 꽃장수 할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그 꽃, 저 할머니한테 샀지?” 나중에 온 친구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기다리던 친구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저 할머니 사기꾼이야. 저 할머니는 저기에서 항상 손녀딸 아프다면서 꽃을 팔거든. 그런데 저 할머니, 아예 손녀딸이 없어.”
그러자 속았다며 화를 낼 줄 알았던 그 친구의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 진짜? 손녀가 없어? 그러면 저 할머니 손녀가 안 아픈 거네! 정말 다행이다! 친구야, 한잔 하자. 건배!”
‘무엇을 보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급변하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생각이 멈추거나 갇히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절대화할 때 나는 꼰대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강변할 때 나는 꼰대의 늪에서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는 겁니다. 입안에 치석을 제거하듯 때때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뒤집을 필요가 있습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