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왕이 태자를 궁으로 불렀다. 당시 초나라 법에 의하면 내궁 안까지 말수레를 타고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큰비가 내려 뜰 안이 물에 잠겼기 때문에 태자는 어쩔 수 없이 안뜰까지 수레를 몰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정리라는 문지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말수레를 내궁까지 몰고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태자의 행동은 위법입니다.” 도끼눈을 뜬 태자가 되받아쳤다. “부왕께서 빨리 들어오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고인 물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태자가 말에 채찍을 먹이며 그대로 몰고 들어갔다. 그러자 문지기는 창으로 말머리를 내리쳐 길을 막고 도끼를 휘둘러 수레를 부숴버렸다. 진흙탕에 내동댕이쳐진 태자가 부왕에게 울며 달려가 호소했다. “뜰 안에 물이 차서 할 수 없이 수레를 몰고 내궁까지 들어온 것인데, 말단 문지기가 위법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창으로 말을 치고 수레를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부디 처벌해주십시오.” 아들의 말을 들은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자기 앞에 늙은 상감이 있는데도 법을 무시한 태자를 용서하려 들지 않고, 뒤에 있는 자가 젊은 태자인데도 이에 기대어 훗날의 이익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 문지기야 말로 진실로 법을 지키는 충신이로다.” 왕은 문지기를 두 계급 특진시켜 관리로 임명하고, 태자의 잘못을 엄하게 훈계했다. 한비자 제34편 외저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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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힘이 엄청나게 센 거인 악당인데,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서 강도질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데려와 자신의 쇠 침대에 눕혀놓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란 말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횡포나 독단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쇠 침대 하나쯤은 마음속에 감춰두고 있습니다. 각자의 쇠 침대는 각자가 지닌 원칙입니다. 누구나 자기 생각과 가치관이 있으니 그 침대는 ‘나’의 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나의 말과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 또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로 판단한 ‘나’가 모이고 쌓이면 ‘우리’가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만든 침대에 맞는 ‘우리’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결국엔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룬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최후를 맞습니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그가 저질러온 똑같은 방식으로 처치해버립니다. 남을 해치려고 만든 침대가 결국에는 자신의 형틀이 되고 만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은 바로 자기인 것입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