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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주역에서 길하게 여기는 사람의 모습은

등록 2022-12-13 16:56수정 2022-12-13 17:07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하늘의 도는 꽉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고 겸손한 것은 보태어준다. 땅의 도는 가득한 것을 변하게 하여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한다. 겸손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서는 빛이 나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그를 넘 수 없으니, 군자의 끝맺음이다.’ <주역・겸괘>

매화를 사랑한 퇴계가 운명하던 날은 살포시 눈이 내렸다. 사진 픽사베이
매화를 사랑한 퇴계가 운명하던 날은 살포시 눈이 내렸다. 사진 픽사베이

▪ 겸괘의 사람, 퇴계 이황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의 일이다. 임종이 다가옴을 직감하였는지, 퇴계는 제자들을 하나씩 불러 뒷일을 맡겼다. 서책을 맡으라는 분부를 받은 이덕홍은 물러나와 여러 제자들과 함께 주역점을 쳤다. 겸괘(謙卦)의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君子有終)”라는 점사를 얻고는 저마다 얼굴빛이 변하였다.

<퇴계연보>에는 선생이 임종하던 날의 모습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아침에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이날은 개었는데 유시(酉時, 오후 5~7시 사이)로 들어가자 갑자기 흰 구름이 지붕 위에 모이고 눈이 내려 한 치쯤 쌓였다. 조금 있다가 선생이 자리를 바루라고 명하므로 부축하여 일으키자, 앉아서 운명했다. 그러자 구름이 흩어지고 눈은 개었다.

매화, 맑은 하늘, 구름과 눈, 바르게 앉아서 운명하자 구름이 흩어지고 가만히 눈이 그치는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맑은 정신으로 가족과 문인제자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퇴계선생의 정갈한 모습이 아름답다.

퇴계의 제자들이 쳤던 점의 상세한 내용은 겸괘(謙卦䷎) 구삼효(九三爻) “공로가 있어도 겸손하니(勞謙), 군자가 끝마침이 있어서 길하다”이다. 그리고 “공로가 있어도 겸손한 군자는 만백성이 승복한다”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노겸(勞謙)은 “수고하고서도 겸손하다”라 풀이할 수도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겸손’이다.

겸괘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 아래에 산을 상징하는 간(艮☶)이 놓여있는 모습의 괘이다. 산은 본디 땅 위에 솟아 있는 것인데, 겸괘에서는 땅 안에 산이 있다(地中有山) 하였다. 땅은 낮게 있지만 그 안에 산을 품고 있으니, 비록 낮은 데 처하지만 그 속은 존귀하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여섯 효가 모두 ‘길하다’거나 ‘이롭다’고 한 경우는 오직 ‘겸괘’뿐이다. “겸괘는 형통하다”, “큰 강을 건너도 길하다”, “바르고 길하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 한다. 심지어 군대를 일으키는 일조차도 “이롭다”라 기록하고 있으니, <주역>에서 ‘겸손’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퇴계의 임종 무렵에 얻은 ‘끝맺음이 있다’는 점사(占辭)는 그가 곧 세상을 떠나리라는 무거운 암시였으리라. 동시에 퇴계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할 때, 함께 얻은 노겸군자(勞謙君子)만큼 함축적이고 적절한 표현을 찾기도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그의 모든 행위가 길하다는 ‘노겸군자’, 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퇴계의 삶과 학문을 통해, <주역>이 말하는 길한 사람의 본보기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위기지학(爲己之學), ‘참나’를 향한 군자의 공부

깊은 산 무성한 수풀 속에 한 그루 난초 있어

종일토록 향기를 뿜으면서도

스스로는 그 향기로움 알지 못하네 -퇴계 <언행록>

군자의 공부는 종일토록 향기를 내면서도 스스로는 그 향기로움을 알지 못하는 난초와 같다. 사진 픽사베이
군자의 공부는 종일토록 향기를 내면서도 스스로는 그 향기로움을 알지 못하는 난초와 같다. 사진 픽사베이

퇴계 이황은 지역과 학파를 막론하고 조선조를 통틀어 큰 존경을 받는 사상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학자는 퇴계학의 특징을 “참다운 앎을 구하여 오래 힘쓰고”, “인(仁)을 구하여 성인(聖人)을 이루고자 하는 ‘참나’를 위한 공부”라고 하였다. 이때 ‘참나’를 위하는 공부를 가리켜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부른다. 위기(爲己)란 글자 그대로 ‘나 자신을 위한다’는 뜻으로, ‘남을 위한다’는 뜻의 ‘위인(爲人)’과 상대가 되는 말이다.

나 자신을 위한 공부로서 ‘위기지학’은 본래 공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예전 사람들은 나 자신을 위해 공부를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하는구나”라며 탄식한 바 있다. 얼른 생각하면 공부의 목적은 결국 사회, 국가, 인류를 위해 일하는 것이니 ‘남을 위한 공부’가 더 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공자가 평소에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던 가르침은 ‘나에게서 가까운 일’로부터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성미가 괄괄하고 배포가 큰 제자 자로가 “군자란 어떤 사람입니까”라 묻는다. 공자는 “경(敬)으로 자신을 닦는 사람”이라 답한다. 실망한 듯 재차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자신을 닦아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거듭 더 큰 답을 원하는 자로에게 공자는 “자신을 닦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 답하며, 이는 요순과 같은 성인(聖人)들도 고심했던 일이라는 말로 제자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요컨대 ‘나 닦음’이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혁명하기 전에 나 자신을 혁명할 일이며, 남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킬 일이다. 나를 변화시키기에 힘쓰는 일이 사회를 개혁하는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나 자신을 이기는 일일지 모른다.

퇴계는 마음으로 체득하고 실천함 없이 외적인 명성을 구하고 허식에 힘쓰는 일을 경계하였다. 그것은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남을 위한 공부, 즉 ‘위인지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군자의 공부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부터 출발하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일 뿐이다. 퇴계는 이를 남모르게 골짜기에 피어난 난초가 맑은 향을 토하는 모습에 비유하고, 이 뜻을 깊이 체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퇴계의 졸기(卒記)에는 흠결이라 할 만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사관(史官)은 퇴계에 대해 “참된 앎과 실천”을 위주로 했다고 하였으며, 겸양하여 감히 작자(作者)로 자처하지 않아 본인의 이름으로 별다른 저술을 내지 않았다고 기술하였다. 또한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확립되자 더욱 더 겸허하여서, 배우려는 이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고 고관대작들도 그를 흠모함으로써 사풍(士風)이 크게 변화되었다”라 평하였다. 그런데 정작 퇴계 자신은 평생 스승으로 자처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계는 애초에 문호를 열어 가르칠 작정을 한 일이 없었으나,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공부하다 보니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퇴계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마다 품성이 다르므로 사람을 일괄해서 평가하기는 어렵다. 부족한 모습이더라도 단정해서 비판하기 보다는, 그가 학문하는 뜻을 귀히 여겨 서로 도와 성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와 비슷하게 <주역> 겸괘는 ‘땅 안에 산이 있는(地中有山)’ 모습(象)에서 배워야 할 교훈으로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적은 데는 보태주며, 만물을 잘 저울질해서 고르게 베푸는 일”을 제시한다. 열 명이면 열 사람 모두 제각각 들쭉날쭉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으니,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서 원만한 인격으로 가다듬어 가는 과정이 곧 교육이고 수양이지 않을까.

안동 도산서원. 사진 문화재청 자료
안동 도산서원. 사진 문화재청 자료

퇴계가 문인들에게 보내 준 편지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자성록(自省錄)>이란 책이 있다. 책의 제목 자체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스스로 살피기 위한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퇴계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옛적에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이제 붕우(朋友)와 더불어 강구 왕복하는 가운데 말을 하게 된 것은 부득이한 것이었을 뿐으로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라 써도 아무 하자가 없을 터인데, 벗들과 함께 강구(講究)하는 가운데 부득이하게 말을 하게 되어서 부끄럽다는 서술에서 퇴계다운 겸양이 잘 드러난다. 퇴계는 문하의 젊은 사람에게도 이름을 부르거나, ‘너’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자성록>에는 퇴계가 율곡에게 답한 편지도 실려 있어 반가움을 더한다. 후대의 학인들은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 조선 후기의 사상사를 갈라놓았지만, 율곡에게 퇴계는 학문뿐 아니라 개인적 삶의 문제도 의논한 존경하는 선생님이었다.

퇴계 &lt;자성록&gt;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퇴계 <자성록>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 나를 바루었더니 남들이 바르게 되더라

<맹자>에는 “나를 바르게 하여 다른 것들이 바르게 된다(正己而物正)”는 말이 있다. 맹자는 몇 가지 인간의 유형을 들면서 그 가운데 자신을 바르게 하여 다른 것들이 바르게 되는 경우의 사람을 ‘대인(大人)’이라 칭하고, 그러한 경지에 최고점을 주었다. 꽃은 제가 있는 자리에서 제 향기를 토할 뿐인데 벌・나비가 모여들어 꽃가루를 널리널리 퍼뜨린다. 맹자는 ‘자신을 바루는’ 평범한 위기지학이 가장 어렵고 위대한 경지임을 말하고 있다. <주역>의 건괘(乾卦)에서는 대인(大人)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대인은 그 덕이 하늘・땅과 부합하고, 그 밝음이 해・달과 부합한다. 하늘보다 앞서 나가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있으면서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도 그를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에게서랴, 하물며 귀신에게서랴!

<주역>이 말하는 대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늘보다 앞서 나가도 하늘이 그를 어기지 않는다고 하니, 대인은 하늘과 동격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하늘과 같은 덕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대인은 ‘하늘의 뒤에서 하늘의 때를 받든다’는 겸양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도 승인하는 대인은 하늘을 받드는 군자와 무관한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겸괘의 군자는 ‘하늘의 뒤에서 하늘의 때를 받들고자’ 노력하지, 결코 하늘과 동격임을 자처하지 않는다.

어릴 적 읽었던 너새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이라는 소설을 생각한다.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이 빚어낸 큰 바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와 닮은 모습을 한 인물이 나타나길 오래 기다리던 소년 어니스트는 생애 만년에 자신도 모르는 새 그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보다 현명해서 큰 바위 얼굴을 더욱 닮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평생 진지하게 길을 찾아 길을 가다보니, 어느새 그 자신이 길이 되어 있었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길 위에 있는 사람이다.

퇴계가 평생 추구한 바는 나를 바르게 하려는 위기지학일 뿐이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맑은 향을 토해내는 난초를 닮은 그런 공부를 지향했다. 그런데 이러한 겸손함이 도리어 대인(大人)의 풍모로 이어진다. 이러한 ‘노겸군자’의 위기지학은 또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을까?

글 이선경(조선대 초빙객원교수・한국주역학회 차기회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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