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되려면 변화해야한다는 역설
<주역>에는 항괘(恒卦)가 있고 또 혁괘(革卦)가 있다. 항(恒)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오래간다는 뜻이고, 혁(革)은 변혁과 혁신을 뜻하는 말이니, 이 둘은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이 세상에서 오래가는 종류라면 무엇이 있을까? 항괘가 제시하는 사례는 천지, 일월, 사계절이다. 그런데 이들이 오래갈 수 있는 비결을 ‘변화’에서 찾는다는데 그 묘미가 있다. 해와 달은 때에 맞춰 운행 변화함으로써 장구하게 비추며, 사계절 역시 변화함으로써 오래도록 지속된다. <주역>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라고 하였다. 상(常)과 변(變)은 늘 얽혀 있고, 때에 맞게 변역(變易)함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러니 항괘와 혁괘는 상반된 듯 보이지만 실은 내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항상성’이란 생명의 특성 중 하나로,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성질을 말한다. <주역>의 언어로 말하자면 상반된 음양의 작용을 통한 적절한 균형의 유지가 생명을 지속하게 한다. 해와 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모두 천지가 생동하는 작용이다. 밤과 낮, 밀물과 썰물, 추위와 더위의 갈마드는 변화가 생명을 존속하게 한다. “생명을 낳고 살리는 것”이 하늘과 땅의 큰 특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한 개체도 생명이지만 천지도 하나의 커다란 생명 단위이다. 그리고 유비적 사고가 두드러진 <주역>의 관점에서 국가도 하나의 생명체에 견주어 볼 수 있으니, 그 운영원리를 자연의 변화에서 찾는 것이 이상할 바 없다.
이처럼 세상만사를 변화와 변통의 연속으로 볼 때, 혁괘는 그 ‘변혁’의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기준을 제시하는 괘이다. 특히 국가와 같은 큰 조직의 차원에서 변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변혁의 목적은 두말할 것 없이 비색한 국면을 타개함으로써 장구한 번영을 누리는 데 있다. 혁괘는 사계절이 때에 맞추어 그 거대한 변혁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듯, 사회의 변혁 또한 그렇게 시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한다. 또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혁주체 자신의 인격적 변화와 소통, 그리고 간절한 정성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계절이 변화하듯 개혁에는 때가 중요하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혁(革)이란 망가진 것을 조금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풀무에 넣어 새롭게 주조해 내는 근본적 변혁을 뜻한다는 점이다. 혁괘에서는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왕조를 새로 세운 혁명을 그 구체적 사례로 들고 있다. 혁괘에 ‘혁명(革命)’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쓰여 있으니,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는 이 말의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혁명(革命)’을 글자대로 풀면 ‘천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나라가 새로 서는 일이니만큼 온 나라 사람들의 삶과 관계되는 엄청난 변혁임에 틀림이 없지 않은가?
<주역>의 작자는 혁괘의 의미를 “천지가 변혁하여 네 계절이 이루어지며, 탕·무(湯武)가 혁명하여 하늘에 순종하고 사람에게 응하니, 변혁의 때가 크도다”라 요약하였다. 옛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 즉 자연 세계의 변화를 혁(革) 가운데에서도 지대(至大)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사람이 느끼기에 계절의 변화는 그저 무심히 흘러가는 듯하지만, 그 같은 계절 변화의 뒤편에는 음과 양의 변혁 작용이 있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오행의 용어로는 이 변화의 특징을 ‘종혁(從革)’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급격한 변화를 따른다는 말이다. 봄에 돋아난 새순은 여름을 거치며 무성히 자라나고 꽃을 피운다. 그렇게 밖으로 생장(生長)하던 생명은 그 발산하던 힘을 거두어 꽃 떨어진 자리에 씨방을 맺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다. 봄 여름의 생장에서 가을의 성숙으로, 발산에서 수렴으로 전환하는 이 변화가 ‘종혁’이다.
율곡 이이는 “마땅히 개혁해야 할 일을 두려워해서 개혁하지 않는다면 때를 잃어서 해가 된다”라 하였다. 열매를 맺으려면 제때에 꽃을 떨궈야 하니, 그 변혁의 시기를 놓치면 겨울을 지낼 수 있는 가을의 수확을 거둘 수 없는 법이다.
꽃 떨어져야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 삽화 이선녕 제공
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주체 자신의 변화와 소통이다
<주역>에서는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생명을 낳고 살리는 일”이라 말한다. 이에 부응하여 혁괘에서는 자연이 때에 맞게 변화하여 생명을 살리듯, 사회의 개혁도 이를 본받아야 하늘의 뜻에 부합하고 인심이 호응하리라 말하고 있다. 또한 <서경(書經)>에 “하늘은 우리 백성의 눈을 통해서 보고, 우리 백성의 귀를 통해서 듣는다”라고 하였으니,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가를 알려면 민심을 살필 일이다. 조선시대의 사림들도 “시골 장터의 사람들까지도 다 정치의 득실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여, 언로의 개방을 중시하고 여론이 가리키는 방향을 국시(國是)로 인식하였다. 예로부터 개혁에는 민심의 호응이 절대적이라 여겼음을 알 수 있다.
혁괘에는 개혁을 이끄는 리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효(五爻)의 대인과 상효(上爻)의 군자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먼저 오효에서는 ‘대인은 범과 같이 변화하니, 점을 치지 않아도 미더우며, 그 문채가 빛이 난다’고 하였다. 대인이 하는 일은 점을 쳐서 하늘의 뜻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미덥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건괘(乾卦) 오효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용으로 상징되는 대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인의 면모에 대해 건괘 <문언>은 이렇게 말한다.
“대인은 천지와 덕이 부합하며, 해‧달과 밝음이 부합하고, 네 계절과 질서가 부합하며, 귀신과 길흉이 부합하여,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의 뒤에서는 하늘의 때를 받드니, 하늘이 또한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에게서며, 귀신에게서랴!”
이러한 대인이 이끄는 혁명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혁명의 차원을 넘어선다. 천지와 덕을 합하고, 자연의 질서와 합하며, 하늘보다 앞서가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의 뒤에서는 하늘의 때를 받드는 그러한 대인의 혁명이란 인간 자신이 혁명할 수 있는 길을 밝혀주고 있는 진리의 스승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리라.
맹자는 한 국가를 안정시키는 자, 천하를 안정시키는 자를 훨씬 넘어서는 경지에 있는 이를 대인(大人)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 대인은 “자신을 바르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되는(正己而物正)” 그런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맹자는 ‘성인(聖人)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저절로 교화가 일어나는데, 그 결과가 계절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워 천지의 변화와 하나가 되니, 인위적으로 조금 고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하였다. 이것이 “대인은 범과 같이 변한다”라는 말의 실상이겠다. 다시 말해 대인이 일으키는 변화는 중후하고 위용이 있으며 또 자연스러워서 호랑이의 무늬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것에 비견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혁괘에서 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맨 위에 있는 상효의 내용이다. <주역>에서 상효(上爻)는 지나치게 높아서 대체로 흉(凶)을 경계하는 말들이 쓰여 있지만, 혁괘의 경우는 좀 다르다. ‘군자는 표범과 같이 변하여 그 문채가 아름답고, 소인은 낯빛을 고쳐서 순하게 따른다’라 한다. 오늘날은 표변한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주역>에서 ‘표변’은 범의 무늬보다는 작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표범의 무늬로 상징되는 군자의 변화를 뜻한다. 맹자는 탕왕과 무왕은 ‘본래부터 타고난 본성대로 행한 이’가 아니라, ‘노력해서 본성을 회복한 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대인이라기보다는 현인·군자의 수위(首位)에 있다는 뜻이 되니, 혁괘로 본다면 상효의 표변하는 군자가 그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혁괘는 혁신과 개혁의 리더로 대인과 군자를 지목함으로써, 사회변혁의 바탕에는 반드시 인격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논어>에서 공자가 군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 “자신을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 “자신을 닦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 답하였듯, 혁명을 이끄는 자의 ‘나 닦음[修己]’은 필수적이다. 기본적으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 의해 주도되는 혁명은 경직된 이데올로기이거나 집단적 탐욕의 결과물이기 쉽다. 변혁의 도리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혁명이다.
서울 사직공원의 율곡 이이 동상. 사진 <한겨레> 자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율곡 이이는 국가 시무(時務)의 요체는 창업(創業), 수성(守成), 경장(更張)의 3가지라 보았다. 창업은 새 나라를 건국하는 것이고, 수성은 이미 정비해 놓은 법제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다. 경장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법제의 폐단이 누적되고, 사회적 기풍이 흐트러져 국가다운 모습을 잃었을 때 행하는 일대 개혁을 말한다. 창업은 말할 것 없이, 경장 역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율곡 역시 고명한 식견을 갖춘 이가 아니라면 경장을 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율곡은 이 시대에 인재가 없다는 푸념에 대해 ‘진실로 인재를 구하려는 성의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예로부터 국가의 지도자가 “도를 배우고 어진 이를 좋아하며, 창생을 구제할 뜻을 세우고 인재를 구했는데도, 인재를 구하지 못해서 정치를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한다. 인물은 다른 시대에서 구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율곡은 “다만 그 배우는 것이 도가 아니요, 좋아하는 것이 어진 이가 아니기 때문에, 도에서 더욱 이탈되고 인재도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 지탄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기둥이 썩어 곧 무너지려 하는데, 가까운 곳에 목수가 없다고 핑계를 대면서 집이 무너지기를 기다릴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수를 구해올 것이듯, 국가의 병폐를 고치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요컨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우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종류가 달랐을 뿐 과연 우환이 없었던 때가 있었던가. <주역>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라 하였다. 또한 “군자가 집 안에서 하는 말이 선하면 천리(千里) 밖에서도 호응한다”라고도 하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위기에 대해 우환의식(憂患意識)을 지니고 곳곳에서 참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며, 그 결실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글 이선경(조선대 초빙객원교수・한국주역학회 회장)
*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