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기러기 한 마리가 있었다. 가을철이 되어서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함께 사이 좋게 지냈던 거위가 마음에 걸렸다. 기러기는 거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함께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거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위들도 처음에는 매우 흥미있게 생각했다. 기러기의 수고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거위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거위들은 기러기에게 매서운 말을 했다. 경험도 없고, 지혜도 없는 공상적인 바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기러기는 하도 깊이 자기 자신을 거위와 관련시켰기에 이제는 거위들이 그 기러기를 지배하게 되었다. 거위의 말이 기러기에게 무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침내 기러기는 그 무게에 눌려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말았다. 기러기가 한 일은 아름다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과오였다. 거위라는 놈은 결코 기러기가 될 수 없지만 기러기는 곧잘 거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의 시도는 훌륭한 일이 었지만 한 가지 유의했어야 했다. 즉 자신을 보존했어야 했다. 거위들이 자신을 지배하려고 드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그 때는 떠났어야 했다. 이것은 천재에게도 해당된다.
이상은 1854년에 쓰여진 키에르케고르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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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남을 가르치려는 오만이 자신의 발목을 잡습니다. 발을 담그기는 하지만 물들지는 말아야 하는 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오늘도 많은 거위들은 자신의 한계를 보기보다는 자신들을 가르치려는 기러기를 탓하며 거위가 되기를 거부하는 기러기를 타살하며 기러기 없는 거위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러기이신 그분은 날기를 포기한 거위떼 속에서 피 흘려 죽으시며 가르치려드십니다. "그래 한 번 날아보자꾸나" 꿈꾸며 결단하는 거위를 기대하시며...
오늘 날개가 돋았는지 겨드랑이를 만져보시기 바랍니다.
문병하(양주 덕정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