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휴심정 벗님글방

민들레처럼 진정 강인한게 엎드려 긴다

등록 2020-06-30 10:04수정 2020-06-30 10:05

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2
약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민들레
약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민들레

민들레군락지
민들레군락지

그 까짓 제비 새끼들이 뭐라고 봄이면 녀석들을 기다립니다. 삼월삼짓날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녀석들을 기다립니다. 놀라운 건 동그라미 칠 달력도 없을 텐데, 녀석들은 삼월삼짓날을 귀신같이 알고 온다는 겁니다. 올해도 그렇게 찾아온 녀석들은 대문간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알을 까고 알을 품어 새끼들을 부화시켰습니다. 그렇게 제비들이 새끼를 까면 얼마나 반갑던지요. 아이들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불임의 시골마을에 살며 둥지에서 나온 제비 새끼들이 재재재재거리면 상쾌한 하루를 열어갈 생기를 얻곤 했죠.

보름 전부터는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 제비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와 날기를 연습했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둥지가 텅 비었습니다. 쪽마루에 한참을 앉아 기다려도 제비들은 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빈 둥지 아래 땅바닥엔 백금 같은 제비 똥만 수북했죠. 그렇게 애지중지한 녀석들인데, 똥만 잔뜩 갈겨놓고 온다간단 말없이 떠나다니! 조금 서운하고 허전했습니다.

쪽마루에 앉아 멍하니 빈 마당과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부엌문을 밀며 아내가 나왔습니다.

“왜 그렇게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어요?”

“제비 새끼들이 다 떠난 모양이오.”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습니다.

“내년에 또 오겠죠.”

“그래도 서운하구만. 제비들 또 올까?”

“안 와도 할 수 없죠. 제비들은 만남이나 이별에도 무심 하찮아요!”

아, 무심! 녀석들이 그걸 가르치려고 왔었나? 지구 위에서의 어떤 만남이나 이별에도 무심하라고?

필자 고진하 목사시인이 사는 원주 불편당에 들어선, 제비집
필자 고진하 목사시인이 사는 원주 불편당에 들어선, 제비집

불편당에서 어미 제비를 기다리는 아기 제비들
불편당에서 어미 제비를 기다리는 아기 제비들

“여보, 이젠 떠난 녀석들 생각은 그만 하고 얼른 민들레나 좀 뜯어다줘요.”

나는 갑자기 사라진 제비들 때문에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조반을 먹으면서 아내는 오늘 민들레를 재료로 유튜브에 올릴 요리를 찍겠다고 했거든요.

“얼마만큼 뜯어 오면 되겠소?”

“오늘 ‘민들레 비빔국수’ 만들려고 하는데, 유튜브 찍고 나서 우리 식구들 점심으로 먹어야 하니까 당신 큰 손으로 서너 움큼 뜯어오세요.”

아내가 유튜브를 시작한 건 1년 전쯤. 야생초 혹은 잡초 요리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소명을 가진 아내는 지금까지 요리 영상 40여 편을 찍어 올렸지요. 아내 혼자 하는 건 아닙니다. 화가인 딸이 영상을 찍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들이 편집을 해서 올리고 있죠. 물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머슴(!)인 나는 요리할 재료 뜯어다주는 일을 하고.

간편한 일복을 갈아입은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마을 언덕의 천주교 공소 부근에 있는 공터로 향했습니다. 마을 둘레 길을 산책하면서 공터에 넓게 번진 민들레 군락을 봐둔 적이 있었거든요. 물론 민들레는 내가 사는 집 주위나 길바닥에도 흔하디흔하지만, 하늘의 노란 별들이 와락 쏟아져 내린 것 같은 민들레 군락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공터에는 일찍 꽃을 피운 민들레들이 하얀 꽃씨를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공터 가장자리에 퍼질러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려니, 문득 언젠가 읽었던 민들레에 얽힌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답니다. 민들레들이 사는 마을에도 큰물이 밀려왔죠. 발 달린 것들은 다 도망갔지만 민들레들은 발이 땅에 붙어 있어서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민들레들은 두려움에 질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습니다. 민들레들은 하느님께 살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느님이 살려줄 것을 약속하고 민들레를 옮겨 주려는 순간 갑자기 물이 덮쳐 왔죠. 이 때 하느님은 민들레 씨앗에 날개를 돋아나게 하여 사뿐히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게 하였습니다. 민들레 씨앗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봄 언덕 양지쪽에 앉아 다시 싹을 틔웠습니다. 그 후로 민들레들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황금빛 얼굴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들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아름다운 전설이죠.

이 전설에도 나타나듯 민들레는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강인한 식물입니다. 민들레는 생명이 모질고 질겨 풀밭이거나 논둑이거나 길옆이나 마당 귀퉁이나, 심지어 도시의 보도블록 틈새에도 노란 꽃을 피우지요. 그래서 옛 사람들도 민들레를 민중의 꽃, 민야화(民野花)라 불렀지요. 그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가까운 풀입니다.

나는 공터에 쭈그리고 앉아 민들레를 뜯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민들레 포기에 달린 잎을 다 뜯지 않고 듬성듬성 뜯습니다. 그래야 다시 잎을 피울 내일을 기약할 수 있거든요. 민들레는 추운 겨울을 힘겹게 이겨낸 풀이기도 하니까요. 꽃다지나 제비꽃이나 곰보배추 같은 로제트 식물들이 다 그렇지만, 민들레 역시 가을에 싹이 터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혹한의 겨울을 난 후 봄을 맞이한 식물이니까요.

원주의 예수로 불렸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자주 “엎드려 기어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민들레가 생각나곤 하죠. 그분의 제자의 집에서 장 선생이 붓글씨로 쓴 ‘하심공경’(下心恭敬)이란 편액을 본 적이 있는데, 민들레는 땅바닥에 엎드려 기면서 자라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성스러운 생명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민들레가 아홉 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서당에서는 훈장이 마당에 민들레를 심어 놓고 학생들한테 민들레가 지닌 아홉 가지 덕을 늘 되새기도록 가르쳤다고 하죠. 그 아홉 가지 덕의 후반부에 보면, 민들레 잎이나 줄기를 뜯으면 흰 즙이 나오는데 이것을 바르면 기미를 없애고 종기를 낫게 하니 그 약효의 인자함이 곧 팔덕(八德)이요, 뿌리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여 사람들한테 좋은 약과 훌륭한 음식이 되게 하여 다른 생명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그 정신이 곧 구덕(九德)이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민들레의 팔덕 구덕을 구현하는 뛰어난 약성을 소개해야겠네요. 민들레는 황달이나 간염, 강경화증 같은 간질환을 고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민들레로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어떤 약초학자의 이야기입니다.

50대의 한 부인이 황달(黃疸)을 오래 앓아 흑달(黑疸)이 된 상태에서 찾아왔답니다. 간경화를 흑달이라고 하죠. 온 몸의 피부가 노랗게 되었다가 까맣게 되었고 기운이 없어서 일어나기도 힘들어 했으며 복수가 차고 변비도 심했습니다. 환자는 일 년 동안 시난고난 앓으면서 병원비로 가산을 모두 탕진하였으나 병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환자의 남편이 먼저 와서 환자의 상태와 집안의 처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자, 약초학자는 환자의 형편을 딱하게 여겨 민들레 뿌리를 캐서 하루에 120그램씩을 물로 달여 먹으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남편은 날마다 밖에 나가서 산과 들로 돌아다니면서 민들레 뿌리를 캐서 부인한테 달여서 먹였죠. 두 달 동안 민들레를 열심히 달여 먹었더니 1년 넘게 고생하던 간경화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치료를 위한 약용으로만 아니라 식용이나 관상용으로도 좋은 민들레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식물입니다. 북미의 원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민들레 뿌리를 달여서 커피 대신 차로 마셨다고 합니다. 그들은 민들레 뿌리를 난로 위에 얹어 바삭바삭하게 말려 가루를 내어 끓는 물에 넣어 우려내어 마시는데, 맛이 커피와 비슷하여 민들레커피라고 불렀다고 하죠.

일본에서도 1990년대에 민들레 뿌리를 달여서 건강음료를 만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찻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민들레 사탕, 민들레 떡, 민들레 빵, 민들레 과자 등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죠. 또 쌀가루나 밀가루에 민들레를 섞어 떡이나 과자, 빵 같은 것을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역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이제 나는 민들레가 지닌 가장 중요한 약성을 여기서 소개하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야생초를 연구하면서 최근에 발견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흔하디흔한 민들레가 유전자변형식품(GMO)의 독을 해독하는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사다가 먹는 많은 식품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유전자변형농산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유전자변형농산물 수입 세계 1위 국가지요. 대표적인 GMO 수입농산물은 콩 옥수수 밀 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많이 먹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이 GMO 수입농산물로 만들어졌고, 라면 국수 과자 식용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GMO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GMO 농산물이나 식품의 유통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그걸 어긴 사람은 사형으로 다스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유해하면 그런 가혹한 법을 만들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GMO 농산물과 식품의 유해성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GMO 식품을 지속적으로 먹었을 경우에 유방암 자궁암 등 23가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기 쉽고, 그로 인해 자폐아의 출생률도 점점 높아지고, 아기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불임환자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통계로 우리나라 불임부부가 23만 쌍이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하여간 우리는 민들레가 GMO 식품의 독을 해독한다는 걸 알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들레 요리법을 개발하여 널리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우리 가족이 만드는 유튜브 「권포근의 건강요리」에는 GMO 해독요리 영상이 이미 여러 편 올라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올릴 생각입니다. 지구 위에서 생긴 치명적인 병들을 치료할 약이 지구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조물주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필자의 부인인 야생초 요리가 권포근씨가 만든 야생초 비빔국수
필자의 부인인 야생초 요리가 권포근씨가 만든 야생초 비빔국수

나는 공터에서 민들레 잎을 뜯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영상 촬영을 위해 딸도 와 있었고, 대문간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왔습니다. 난 요리재료인 민들레가 담긴 봉지를 건네주며, 다른 손에 들고 온 민들레 씨앗 두 송이를 아내를 향해 후― 불었습니다. 하얀 씨앗들이 아내 얼굴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앗, 뭐하는 거예요. 사랑 고백을 하는 거예요?”

“후후후…”

민들레의 꽃말이 “사랑의 신탁(神託)‘이라지요. 전설에 의하면 연인과 나란히 앉아서 깃털이 달린 민들레 꽃씨를 하나씩 불어 날리면서 ‘나는 너를 사랑해’와 ‘너는 나를 사랑해’를 되풀이 말하다가 마지막 남은 하나로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신탁’을 얻는다고 합니다. 민들레 꽃씨가 바람을 타고 하얀 솜털처럼 깃털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민들레 꽃씨 세례를 받은 아내는 내가 뜯어온 민들레 잎을 받아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한 마디 툭 던집니다.

“유튜브 다 찍고 나면 오늘 만든 요리로 점심 먹을 거니까 느긋이 기다리세요.”

요리영상 찍는 날마다 듣는 말입니다. 그 동안 나는 아내가 만드는 야생초 요리의 최초 시식자였죠. 요리 책도 두 권을 냈고, 유튜브를 1년 이상 찍었으니 내가 최초로 시식한 요리가 수백 가지는 될 겁니다. 행복한 남자라고요? 그런데 요리를 시식할 때마다 아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염려 말고 드세요. 죽진 않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온새미로 야생의 풀로 만든 요리를 무수히 먹었지만 아직도 씽씽하게 살아 있답니다.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kkumds.or.kr)과 함께 합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휴심정 많이 보는 기사

단순하게 살기 위한 몇 가지 기술 1.

단순하게 살기 위한 몇 가지 기술

“먼저 된 많은 자가 나중이 될 것이나…” 이 말뜻에 닿기 위해 2.

“먼저 된 많은 자가 나중이 될 것이나…” 이 말뜻에 닿기 위해

우리 곁에 왔던 유마거사 김성철 교수 열반 3.

우리 곁에 왔던 유마거사 김성철 교수 열반

더없는 행복을 누리는 자는 누구인가 4.

더없는 행복을 누리는 자는 누구인가

삶은 쓴머위를 싸먹으며 견뎌내는 것이다 5.

삶은 쓴머위를 싸먹으며 견뎌내는 것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