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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코딱지’란 이름으로도 너는 눈부시구나

등록 2021-04-06 12:21수정 2021-04-06 12:22

불편당 일기 20: 이른 봄의 약초들

* 기관지를 튼튼하게 하는 약초: 꽃다지

꽃다지비빔국수
꽃다지비빔국수

봄나물을 뜯으려고 텃밭으로 나가 앉았는데, 바람이 아주 맵다. 한겨울 삭풍이 연상될 만큼 살을 에는 꽃샘바람. 왜 바람은 봄꽃 피는 걸 시샘하는 걸까. 볕이 좋아 목도리도 하지 않고 나왔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목도리를 두르고 목장갑도 끼고 나왔다.

텃밭에는 가장 일찍 노란 꽃을 피운 꽃다지가 찬 바람결에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다. 꽃다지 옆엔 아직 꽃을 피우지 않는 냉이도 보이고, 밭 가장자리엔 연둣빛 잎이 막 피기 시작한 광대나물도 보인다. 가장 먼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봄의 전령들!

꽃다지, 이름이 얼마나 예쁜지! 우리 들꽃들은 예쁜 이름들이 참 많다. 꽃마리, 괭이눈, 별꽃, 노루귀, 바람꽃, 패랭이… 등등. 꽃다지 역시 아주 고운 이름이다. 본래 꽃다지의 접미사인 ‘다지’는 맨 처음 열린 열매를 가리키는 말로, 꽃다지라는 이름 속에는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는 뜻도 들어 있는 것일까. 해토된 지 얼마 안 된 땅에서 연둣빛 줄기가 나와 이른 봄에 서둘러 꽃이 피운다. 생명의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꽃다지는 아주 작은 꽃인데, 대개 작은 꽃들은 가까이서 봐야 더 예뻐 보인다. 나이 들면서 큰 꽃보다는 작은 꽃들의 아름다움에 더 매혹되는 까닭은 뭘까. 바람결에 바르르 떠는 꽃다지 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마을 부녀회장인 강릉댁이다.

“뭘 그렇게 들여다보고 계시우?”

“요 녀석들 예뻐서요. 좀 뜯어 먹으려고 나왔는데, 너무 예뻐 뜯질 못하겠네요.”

너무 예뻐 뜯질 못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자, 강릉댁이 까르르 웃더니 툭 한 마디 내뱉는다.

“며칠 지나면 쇠버려서 못 먹어요. 어서 뜯어다 드시구려!”

강릉댁이 자나간 뒤 난 예쁜 꽃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은 뒤 국 끓여 먹을 만큼만 뜯어서 집으로 돌아와 우리 집 셰프에게 건네주었다.

꽃다지
꽃다지

꽃다지는 우리나라의 저지대에 흔하게 자라는 두해살이풀. 세계적으로는 중국, 일본,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분포한다. 꽃다지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이면 흙의 상태와 관계없이 어디서나 잘 자란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길이는 2~4㎝이고, 폭은 0.8~1.5㎝이다. 이 식물의 모양은 땅에 찰싹 붙어 방석처럼 퍼져 있다.

꽃은 열십(十)자 모양으로 좁쌀을 모아 놓은 것처럼 노랗게 핀다. 이렇게 십자 모양을 이루는 꽃들은 ‘십자화’라고 부른다. 꽃은 원줄기나 가지 끝에 여러 송이가 어긋나게 달리는데, 보통 작은 꽃줄기는 길이가 1~2㎝로 비스듬히 옆으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열리며, 편평하고 긴 타원형으로 길이는 0.5~0.8㎝ 정도이다. 꽃다지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다는 것. 열매에도 털이 송송 나 있다. 모양이 비슷하지만 열매에 털이 없는 것은 민꽃다지라 부른다.

꽃다지의 꽃말은 ‘무관심’으로 알려졌는데, 너무 작아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아 그런 꽃말이 붙여졌을까. 나는 봄나물을 뜯으러 가면 냉이도 캐고 꽃다지도 캔다. 하지만 사람들은 냉이는 캐지만 꽃다지는 외면한다. 풍물시장에 나가 보아도 냉이를 캐 가지고 나와 파는 이들은 많지만, 꽃다지를 캐다 파는 이들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봄나물로는 냉이를 으뜸으로 여겨온 관습 때문이리. 하여간 그렇게 냉이가 뽑혀 나가는 덕택에 꽃다지는 봄의 들판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우리 조상들은 꽃다지를 식용으로 하기보다는 주로 약으로 써 왔다. 꽃다지는 기침과 천식, 심장질환으로 인한 호흡 곤란, 변비나 몸이 붓는 데도 쓰인다. 또한 이뇨작용이 있으며 가래를 제거하는 데도 효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어느 대학에서는 천연의 식물에서 항암 후보 물질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꽃다지에서 얻어낸 추출물에서 항산화 효과를 밝혀냈으며, 이뇨제, 진해거담제, 항바이러스제의 특성을 지닌 것을 알아낸 후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야생의 풀요리를 즐기는 우리 집에서는 겨우내 그리워했던, 가장 먼저 잎과 꽃을 피우는 봄풀인 꽃다지를 뜯어다 갖가지 요리를 해 먹는다. 잎과 줄기를 채취하여 끓는 물에 데쳐 떫은맛을 없앤 다음 나물이나 국거리로 이용한다. 꽃 피기 전의 어린 꽃다지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간장으로 무침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해 질 무렵, 우리 집 셰프가 불러서 부엌으로 들어가니 내가 뜯어다 준 꽃다지로 요리를 해 놨더라. 식탁에 차려놓은 요리를 보니 ‘꽃다지 비빔국수’. 요리 실험을 즐기는 셰프 덕분에 오늘도 새로운 요리를 맛보았다. 양념에 고추장과 땅콩을 집어넣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봄 요리를 먹고 나니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봄에 나는 것들을 먹으면 비로소 몸에 봄이 온다고. 겨우내 애타게 기다린 봄, 오늘 내 몸에 깃든 연두가 입을 열어 당신 몸에 봄이 왔다고 일러준다!

광대나물
광대나물

*뼈를 잘 붙게 하는 약초: 광대나물

희끗희끗한 잔설이 녹을 무렵이면 기다려지는 들풀이 있다. 광대나물! 이 들풀은 하얀 눈 속에서도 잎을 피우며 봄맞이에 나선다. 꽃다지보다는 꽃을 약간 늦게 피우지만 자줏빛 꽃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서 있는 모습은 봄맞이하러 나선 사람에게 반갑다고 손짓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꽃의 모양이 연기를 하기 위해 울긋불긋 화장한 광대들과 비슷하다 해서 광대나물이라 불린다. 그러니까 광대나물은 ‘광대’와 ‘나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재미있는 이름인 셈.

얼마 전 아내와 봄 마중을 나갔는데, 마을 둘레길 양지바른 밭둑에 핀 광대나물을 보고 아내가 말했다.

“저 나물 모습을 보면 꼭 불탑 같아요.”

“당신 눈이 보배구려. 일찍이 중국인들도 그렇게 이름을 붙였더군요. 보개초라구.”

“그게 무슨 뜻이죠?”

“보개는 불상이나 탑의 보륜(寶輪) 위에 있는 일산(日傘) 모양의 덮개를 말하는데, 광대나물의 자태가 그와 비슷하게 생겨 보개초라고 했다더군요,”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광대나물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광대나물 전체의 모습은 잎이 층층으로 나 있어 불탑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 모양을 보고 광대나물이란 이름을 붙였고, 중국인들은 줄기와 잎 모양을 보고 보개초라고 이름을 붙인 것. 앙증 맞은 또 다른 이름도 있다. 내가 사는 동네 할머니들은 꽃이 코딱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코딱지나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광대나물은 꿀풀과에 속한 두해살이풀이다. 유라시아 원산의 귀화식물이며, 추운 지역에서 따뜻한 지역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전국 각지의 양지바르고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 키는 30㎝ 정도. 원줄기는 가늘고 네모지며 밑에서 가지가 많이 생긴다. 잎은 마주나는데, 아래쪽 잎은 잎자루가 길고 둥글고, 반면 위쪽 잎은 잎자루가 없고 톱니가 있는 반원형이며 양쪽에서 원줄기를 완전히 둘러싼다. 꽃은 5월에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으로 피며, 잎겨드랑이에서 여러 송이가 돌려나듯 모여 나온다. 꽃부리는 윗입술이 앞으로 약간 굽고, 아랫입술이 세 개로 갈라진다.

봄철 밭 가장자리 같은 곳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광대나물은 농부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생태가 특이한데, 꽃가루받이가 다른 식물들과 다르다. 대부분의 식물은 씨앗을 만들기 위해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을 이용해 수정을 하는데, 광대나물은 날씨가 추워 곤충의 활동이 없는 날에도, 꽃부리가 열리지 않고도 암술과 수술이 성숙해 자화수분(自花受粉)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열매가 익으면 개미가 광대나물을 찾는다는 것. 씨앗에는 향기를 뿜어내는 물질이 있는데, 그 향기를 개미가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개미가 그 씨앗을 물고 옮기는 도중에 떨어뜨려 광대나물이 다시 싹을 틔우고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것이다. 개미집 주변에 광대나물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개미와 광대나물, 요 조그만 것들의 공생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광대나물은 ‘나물’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만큼, 우리 조상들도 나물로 즐겨 먹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선식물명휘>(1922)라는 책에 보면 먹을 것 구하기가 힘들던 일제강점기에 구황식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배고픔을 견뎌낼 수 있는 식량이었다는 것.

우리 집에서는 이른 봄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이 많지 않을 때 광대나물을 뜯어 갖은양념을 해 무침으로도 해먹고, 된장국도 끓여먹는다. 지난해엔 광대나물을 넣은 쌈장을 만들어 두었다가 상추 같은 쌈채소가 나올 때 쌈에 넣어 먹기도 했다. 또 광대나물의 꽃은 독특한 향이 있어 꽃을 따다 말려서 차를 우려 마실 수도 있다.

광대나물 쌈장
광대나물 쌈장

광대나물은 약용식물로도 널리 알려져 왔다. 본초명으로 접골초(接骨草)라고 부르는데, 부러진 뼈를 잘 붙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약초인 것. 여름에 지상부의 줄기와 잎을 채취하여 말린 것을 달여서 약재로 사용할 수 있다. 또 풍(風)을 없애는 효능이 있고, 경락(經絡)을 잘 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종기를 삭이고 통증을 없애는 효능도 있다.

지혈작용도 뛰어나 외상을 입어 피가 날 때 광대나물 잎과 줄기를 짓찧어 붙이면 곧 피가 멎는다. 신경통이나 근육통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여 우리 집에서는 여름에 전초를 채취해 잘 말려두었다가 가을에 여러 야생초로 환을 만들 때 갈아서 넣기도 한다.

버젓이 이런 뛰어난 약성을 지니고 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서 잡초로 여겨지는 식물. 오죽하면 코딱지나물이라는 폄하된 이름으로 불리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조물주께서는 그것이 지구별에 사는 존재들에게 필요해서 짓지 않으셨겠는가. 나는 들길을 걷다가 밭두럭에 핀 그 앙증맞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고마워!’하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곤 한다. 이런 교감으로 작고 귀여운 녀석들과 눈빛을 맞추면 그 생명의 광휘가 내 안에도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되더라! 봄꽃들과 마주앉아 그 눈부심을 본 시인 김용택은 이렇게 노래한다.

너를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눈부신 것이냐

글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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