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루시’를 구조했던 번식장은 비닐하우스 안에 일렬로 여러 칸의 케이지를 설치한 곳이었다. 개농장의 뜬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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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동물권행동 카라로 한 제보가 들어왔다.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번식장인데 좁은 뜬장에 개를 가둬 키우면서 죽으면 사체도 치우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몇년 동안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활동가들이 조사팀을 꾸려 현장으로 향했다.
경기 연천군에 있는 이 번식장은 비닐하우스 안에 일렬로 여러 칸의 케이지를 설치한 곳이었다. 개농장의 뜬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좁고 작은 케이지 안에는 각종 품종견들이 한두마리씩 갇혀 있었다. 낯선 방문자의 등장에 개들은 맹렬히 짖어댔다.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는 개들 사이로 구석에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는 개 한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주 작은 체구였다. 젖이 마른 흔적이 있었고, 다리 사이로 흘러나온 장기가 보였다. 개는 아주 간신히 뒷다리를 들어 다리가 장기에 닿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긴급히 개의 구조가 결정됐다. 구조를 위해 다가가자 개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봤다. 벌써 눈빛은 흐려지고 있었다. 죽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를 꺼내 안고 병원으로 가는 길, 호흡이 떨어지고 있었다. 활동가는 긴급히 심폐소생을 진행했다.
병원에 이송되는 모견 ‘루시’. 루시는 잦은 출산으로 인해 장기가 탈출한 상태로 발견됐다. 카라 제공
“죽지 마, 죽지 마, 제발 죽으면 안 돼.” 심폐소생술도, 애원도 뒤로하고 개는 마지막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고 눈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개가 죽은 뒤 우리는 그를 ‘루시’라는 이름으로 추억하기로 했다. 루시는 2~4살로 추정되는 암컷으로 부검 결과, 자궁과 질이 탈출했고, 2차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도 심장과 간에 부분적인 괴사가 관찰됐고, 장간막 유착, 소장 내 염증, 장 꼬임 등이 있었다. 위는 텅 비어 있었다. 탈출된 자궁과 질도 뒤집혀서 꼬여 있었다. 수의사는 잦은 출산 때문일 거라고 추측했다.
고작 2.2㎏의 작고 마른 몸에 아프고 병들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번식업자에게 왜 루시를 그동안 치료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손으로 (탈출한 장기를) 밀어넣었는데 또 튀어나온 것”이란 기함할 만한 대답을 내놨다. 경험상 이렇게 겨울이 되면 장기가 나온 개들은 모두 죽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번식장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면 루시도 이전에 떠난 다른 개들처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이곳은 불법 번식장이 아니다. 이 농장은 지자체로부터 ‘동물생산업’ 허가를 얻어 영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매년 점검을 받을 의무가 있다. 실제로 몇개월 전에도 연천군의 점검을 받았다고 했다.
허울뿐인 점검이었던 것이다. 카라는 조사 당일 연천군의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해 해당 번식장의 동물학대 정황을 보여주고, 번식업자로부터 81마리의 소유권을 포기받았다. 번식업자는 그로부터 사흘 뒤 번식장 폐업 신고를 했다.
구조된 개들의 몰골은 끔찍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털 때문에 시야가 가린 개들이 다수였다. 대부분의 성견들은 슬개골 탈구로 뒷다리 관절이 쑥 빠져 있었다. 발톱이나 이빨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포메라니안종 개는 대변과 털이 뭉쳐 그 덩어리가 항문을 막고 있었다. 개는 배변을 할 때마다 고통이 극심했을 것이다. 개들의 육체적 건강 상태도 끔찍했지만, 산 생명으로서 좁은 뜬장에서 평생을 보냈을 정신적 고통은 차마 헤아릴 길이 없었다.
구조되는 개들의 몰골은 끔찍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털 때문에 시야가 가린 개들이 다수였고, 털이 뭉쳐 아예 갑옷이 된 개도 있었다. 카라 제공
얼마 뒤 경매장으로 갈 것으로 보이는 아주 어린 개들도 있었다. 강아지들은 사람의 손을 애타게 갈구했다. 보통 번식장에서 태어난 개들은 반려동물 경매장을 거쳐 펫숍으로 간다. 경매장에선 생후 40~50일의 강아지들이 거래된다. 사람들이 어린 강아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4개월이 될 때까지 경매장이나 펫숍에서 팔리지 않은 개들은 다시 번식장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번식장의 끔찍한 상황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0여년 전 방송을 통해 ‘강아지 공장’의 실태가 고발됐고 당시 사람들은 분노했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슬로건이 확산됐고, 이후 몇년 동안 번식장 동물에 대한 복지가 동물권의 주요 이슈가 됐다. 동물 보호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는 퍼져갔지만 정부의 정책은 그 흐름을 따르지 못했다. 정부는 2016년 대통령 주재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에서 ‘투자활성화 대책’이라며 동물생산업을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신고제였던 동물생산업을 허가제로 전환하고 육성하겠다는 것이 발표의 골자였다. 사람들은 동물 매매 금지를 외치고 있었지만, 정부는 ‘허가제’(2018년 시행)로 동물 복지에 대한 요구를 퉁치고 만 것이다.
현재 한국에 등록된 동물생산업 업체는 2177곳이다. 카라는 이러한 번식장에서 동물 약 25만마리가 번식업에 쓰이고 있다고 추산한다. 국가의 공식적인 통계 기록은 없다. 국가는 오직 가정에 입양된 동물만 ‘반려동물 등록제’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천 번식장의 경우 개가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버렸지만, 어떤 번식장에서는 쓸모가 다한 ‘폐견’들을 개농장으로 넘기기도 한다. 더는 출산이 힘든 개들을 ‘무침용 고기’로 싸게 팔아버리는 것이다. 동물생산업 허가제는 결코 개들의 출생, 성장,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켜주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개들이 낳은 강아지들은 어떻게 되는가. 펫숍에서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간다.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는 이름을 내건 한 프랜차이즈 펫숍은 번식장 개들을 유기견으로 둔갑시킨다. 번식장에서 여러 종을 교배시킨 하이브리드 품종견을 믹스견으로 포장해 ‘믹스견은 건강하다’며 분양한다. 하이브리드로 개량된 개들에게 치명적 유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숨겨진다. 펫숍에서 팔리는 새끼 동물을 낳은 모견과 종견들의 끔찍한 고통 또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지난 11월17일 동물권행동 카라는 경기 연천구의 한 허가 번식장에서 학대 상황에 놓인 개 81마리를 구조했다. 카라 제공
영국에도 ‘루시’가 있었다. 루시는 영국의 한 번식장에서 구조된 코커스패니얼종의 모견이다. 끔찍한 상태로 구조된 루시의 모습은 2018년 루시법(Lucy’s Law)을 촉발했다. 영국의 루시법은 강아지 공장에서의 개 대량 생산과 펫숍에서의 새끼 동물 분양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 6일, 한국 정부는 ‘동물보호과’를 ‘동물복지국’으로 승격하고 ‘동물보호법’을 강화해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정책 77개 과제 중 동물 매매 금지는 없었다. 이젠 동물을 어떻게 잘 생산하고 팔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동물을 생명으로 어떻게 지키고 공존하게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우리도 동물의 대량 번식과 제3자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 이제 ‘한국의 루시법’이 필요한 때다.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