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구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서울시 직원들이 고양이를 대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지난달 서울에서 발생한 고양이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감염 고양이가 지내던 보호소의 생식 사료에서 조류인플루엔자 항원이 검출됐음에도 정부가 전국 보호소의 개·고양이 검사에 집중해 행정력을 낭비하고,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있다는 것이 동물단체들의 주장이다.
고양이 보호단체연합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연대’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밀한 역학조사 없이 단지 보호소에서 확진 사례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동물보호소와 길고양이에 대한 무리한 전수조사를 강행하면서 검사를 받은 고양이들이 사망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AI 방역 실패 고양이 책임 전가 농림부 규탄’ 기자회견 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 또한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 기자회견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생육(오리·닭 등) 유통의 원인과 경로를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가 방역 실패의 책임을 동물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감염 생육이 다른 업체로 납품됐을 가능성에 대한 정밀조사가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원료공급업체인 가금류 농장에 대한 조사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의 헛발질에 애꿎은 동물과 현장의 검사 인력의 고통만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생식 사료에서 항원이 검출되었음에도 고양이 감염 검사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방역 실수를 덮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지난달 말 서울 용산구와 관악구의 민간 보호시설의 고양이들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사실이 확인되자 지자체가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는 물론, 민간 동물보호시설, 고양이 카페, 번식장,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감염 여부를 조사했다. 이런 조치는 이달 1일 고양이 감염 사례가 나온 관악구 소재 보호소에서 급여한
생식 사료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항원이 확인된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별 보호시설 개·고양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검사 결과. 자료 각 지자체, 정리 동물자유연대
다행히 보호시설 내에서 더 이상의 감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검사 결과를 발표한 서울, 강원, 충북, 전북, 경남에서는 총 138개소의 보호소에서 3700여 마리가 검사를 받았지만 단 한 마리의 양성 개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검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남 보령, 경기 광명의 보호소에서 검사 직후 고양이들이 사망하는 일이 이어져 고양이의 특성을 무시한 무리한 검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조류인플루엔자의 포유류 대 포유류 전파 가능성이 작다는 기존 연구를 보더라도 보호소 내 개·고양이 및 길고양이에 대한 검사는 감염경로를 확인하거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단체의 주장이다.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이혜원 소장(수의사)은 “포유류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은 대부분 가금류와의 접촉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먹이를 먹음으로써 감염된다. 감염 생육이 유통된 것을 확인한 상황에서 검사 동물들에게 스트레스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검사를 계속 진행할 이유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는 △고양이에 대한 감염검사 즉각 중단 △원료 공급 과정에서의 부실 방역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새로운 가축전염병 감염 형태에 대한 합리적 방역정책 수립 등을 촉구했다.
17일 오전 서울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연대가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고양이 포획 검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연대제공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연대는 문제가 된 생식을 판매한 업체가 당시 동일한 조건(원료, 생산 시기, 제조업체)에서 생산된 제품을 286곳에 판매했지만, 서울시의 두 보호소에서만 감염이 확인된 점은 여전히 의문이라면서 생식 이외의 감염 요인은 없었는지 정부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항원이 검출된 생식과 관련된 가금류 농장, 제조업체, 도축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며, 동물보호소에 대한 방역은 오는 21일 해제된다고 했다.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홍기성 과장은 “가금류 농장에서 추가로 납품한 업체들에 대해서도 검역본부에서 조사 중인데 현재까지는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항원이 검출된 제품이 오래전 공급된 원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무리한 검사라는 비판에는 “다방면의 역학조사를 위해 방역 상 취약할 수 있는 동물보호소나 번식장도 검사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전국 23개 시군구에 5마리 이상 검사를 진행하라는 지침이 있었고, 보호소 입소 개체와 중성화 수술 대상 중에서 표본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길고양이 전수조사는 잘못 알려진 내용”이라고 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