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8할은 잠이다. 아이가 태어나 집에 온 순간부터 육아 담당자는 수면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아이는 조금만 불편해도 잠을 자다 칭얼거리고, 밤에 수없이 깨고, 밤낮이 바뀌고, 안고 있다 잠들어서 눕혀 놓으면 귀신같이 알아챈다.
내가 돌보는 아이는 신생아 시절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했다. 아이는 늘 초저녁이 되면 잠이 들어서는 자정이 한참 지나 깼다. 낮에는 바닥에 등만 닿아도 ‘등 센서’를 켜고 “앵~” 하고 울더니 초저녁에 든 잠은 아무리 깨우려 애써도 한밤중처럼 깊었다. 낮 아이를 안고 어르느라 팔·다리·어깨·목·허리 안 쑤신 곳이 없었던 나의 반려인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깨우는 것을 금세 포기했다. 아이가 스스로 스르륵 잠든 그 시간만이라도 고단한 육아의 세계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중 20시간 정도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고, 맘대로 화장실조차 가지 못했으므로. 읽고 싶은 것을 읽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 따위는 입에 올릴 생각조차 못한 사치였다.
아이의 초저녁잠은 태풍전야 같은 것이었다. 아이의 엄마·아빠는 새벽에 다가올 거대한 쓰나미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을 애써 외면하며 아이를 둘러업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단 사실에나마 하늘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곤 했다. ‘수면교육’, ‘통잠’, ‘수면독립’ 따위의 말들이 내 반려인들의 입 밖에 나와서 공기 중을 떠돌았으나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그 단어들만큼 허상인 것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낮에 자고 밤에도 자던 나의 수면 습관에도 변화가 생긴 것은 당연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반려인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막 비워진 식탁 의자에 배를 깔고 앉곤 했다. 따뜻한 체온이 남은 의자에 누워 있노라면 해가 서쪽 지평선으로 호로록 넘어가듯 단잠에 빠졌다. 그렇게 자다 늦은 밤 깨어나 사료를 한 사발 먹고 반려인들이 잠든 침대 발치에 올라 다시 꿀잠에 들던 나날들…은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다.
새벽에 반려인들의 침대에 오르려다 움찔한 적이 여러 차례다. 발소리 없이 침실로 스며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어쩐지 내가 방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는 꼭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느덧 내가 콧구멍을 쑤셔도 깨지 않을만큼 잘 자는 아이로 자랐다.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제 곁을 지켰는지 이 녀석은 모르겠지.
아이가 잠들지 않는 새벽은 길고 지루하고 고단했다. 나는 반려인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가 잠든 척해 보려 했지만, 염치 있는 고양이이므로 그럴 수 없었다. 반려인들은 무슨 수를 써도 잠들지 않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안고 거실을 서성였다. 한쪽 팔로 아이를 받쳐 안고 나머지 한쪽 팔로 아이의 등을 수백번 토닥이면,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든 듯하다가 어디 바늘에라도 찔린 듯 자지러지게 울곤 했다. 반려인들은 그때 그 밤들을 회상하며 세상 가장 힘든 역경을 견뎌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가 제일 힘들었다. 잠이 덜 깨 눈을 감은 채 아이를 안고 움직이는 그들의 모양이 불안해 한밤 내내 그들을 지켜보며 보초를 섰다. 그들은 팔이 저리면 서로 교대라도 했지, 나는 교대해줄 파트너도 없었다.
흰 털이 더 하얗게 세도록 불태운 밤들을 보내고, 이제 아이는 어느덧 내가 옆에서 콧구멍을 쑤셔도 깨지 않을 만큼 단잠을 자는 아이로 자랐다. 오늘도 아무것도 모르고 내 옆에서 곯아떨어진 이 녀석은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제 곁을 지켰는지.
만세·전업육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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