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힘들어. 몸이 고단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고 보살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내 이름은 만세, 육아하는 고양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물론 인간의 생을 십 몇 년에 압축해 사는 우리 고양이를 키우는 일 또한 경이로운 일이지만, 고양이의 눈으로 본 사람 육아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아이는 어느덧 길 가는 어른들이 “몇 살?”이냐고 물으면 한쪽 손바닥을 쫙 펴보이는 5살 어린이가 되었다. 불과 2년 전, 말은 잘 못했지만 의사 표현에는 안달이 났던 3살 무렵 아이는 “몇 살?” 물으면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오므리고 손가락 세 개만 펴보이는 모양을 하기 위해 혼자 얼마나 맹연습을 했던가. 이제는 손가락을 오므리고 펴는 일 따위 아무 것도 아닌, 제 몸을 결결이 이해하고 쓸 수 있게 된 아이는 마음의 결 또한 갈피갈피 들여다보게 된 모양이었다.
인간의 5살은 울적함과 서러움을 알게된 나이일까. 아이는 무작정 떼를 쓰던 시절을 지나 토라지는 데도 이제 제법 이유와 근거가 있어보였다. ‘갖고 싶다’, ‘먹고 싶다’ 등 본능을 해소하기만 원하던 시절을 지나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났다’ 등의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최근 아이는 엄마와 단 둘이 기차를 타고 먼 지역으로 이동을 할 일이 있었다. 아이는 엄마 옆에 앉아 과자를 뜯어 먹고, 태블릿 피시로 영화를 보며 제법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단다. 엄마는 아이에게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테니, 영화 보고 있어”라고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자리에 돌아왔고, 아이는 엄마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내 영화에 빠져 들었다. 얼마 후 영화를 한참 보던 아이가 헤드폰을 빼고 엄마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나 아까 사실은 엄마가 늦게 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 그래서 눈물이 조금 나왔어.” 아이는 마음에 고인 감정을 풀고 나서야 이내 얼굴이 편해졌다.
감정의 결이 섬세해진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육아냥.
이런 적도 있다. 아이는 오랜만에 엄마랑 단 둘이 할머니댁에 갔다. 아이가 몇 달 만에 본 할머니와도 즐겁게 잘 놀길래 엄마가 볼 일을 보러 몇 시간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할머니와 한참 얘기를 하다 잠든 아이 얼굴을 보러 엄마가 아이 옆에 가자 베개가 눈물로 흠뻑 젖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엄마가 오면 나부터 안아줄 줄 알았는데, 왜 할머니랑만 얘기하고 나는 그냥 두는거야. 엉엉.” 잠결에 반가운 엄마 목소리를 듣고 곁에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몇 분이 그렇게 소리없이 눈물이 줄줄 날 정도로 서러웠나보다. 아이는 가슴을 들썩이며 한참 더 울었다. 인간의 5살은 이렇게, 감정의 응어리를 느끼는 나이인가보다.
그런 마음은 이런 것과 비슷한 걸까. 온 집안 식구들이 나만 두고 외출을 하고 돌아왔을 때, 쫓아다니며 응앙대고 싶은 그런 기분? 왜 나만 텅 빈 집에 남겨두고 다녀왔냐고. 고양이는 외출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라는 건 핑계일 뿐 모처럼 주말인데, 집에서 나랑 같이 시간 좀 보내면 안되냐고. 잠을 자다가도 현관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게 되는 불안함이란. 빈집에 속절없이 내려앉는 어둠, 가늘게 새어나오는 라디오 소리로는 지탱하기 어려운 적막한 공기 같은 건 고양이 한 마리가 감당하기엔 벅차다. 이런 게 외로움이라는 걸까. 평일에도 집 지키고 주말에도 집 지키고 내가 ‘세콤냥’이냐고! 이렇게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이 에스컬레이터 타듯 서서히 증폭될라치면 괜히 발톱을 잔뜩 세워 벅벅 소리를 내며 카페트를 긁곤 한다.
8살 고양이도 그럴진대 아이가 이제 제법 컸다고 어른 마음대로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졌으리라 단정하다니. 인간들은 이렇게 급하다. 육체적으로 고단했던 육아 1기가 지나고 마음을 살뜰히 보살펴야 하는 두번째 육아기가 도래했나보다. 때때로 아이에게 찾아오는 외롭고 서러운 마음, 그 마음 내가 대신 다독여줘야겠다.
글·사진 만세 전업육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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