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점심시간, 서울시 서초구의 한 보신탕 가게 앞에서 중년 남성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야기를 나눈 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원, 검찰청, 로펌 등이 즐비한 동네의 먹자골목, 지난달 23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의 두 오래된 보신탕집은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었다. 검은색 세단 차량 두 대가 40년 전통의 식당을, 은색과 흰색 중형차는 3대째 요리를 하고 있다는 식당을 찾았다. 식당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양복 입은 중년 남성 세 명이 40년 전통 집으로 들어갔고, 캐주얼한 점퍼를 입은 남성 두 명이 이쑤시개를 사용하며 그 식당 밖으로 나왔다.
삼계탕 시키는 여성들
이 중 3대째 하고 있다는 식당은 가정집을 개조한 듯 보였다. 입구에는 세련된 궁서체로 “위생에 철저한 농장, 국내산 1등급, 무항생제, 건강하고 위생적인 보양식 문화에 앞장서겠다”고 쓰여 있는 세움간판이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쪽 벽면 높이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개고기”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고급 식당에서처럼 ‘아베마리아’ 첼로연주곡이 흘러나왔다. 흔히 생각하는 개고기식당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식당 입구 흰색 보드에는 요일별로 식당을 예약한 손님 8~10팀씩 찾아올 시간이 적혀 있었다. 주말보다 평일이 많았고, 점심보다는 저녁 시간이 많았으며, 특히 직장인들 회식이 잦은 목요일에 손님이 많았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이 식당은 3만2천원의 수육(1인분)과 전골(1인분), 1만6천원의 보신탕과 1만5천원의 삼계탕을 팔았다. 수육과 전골은 배바지 살이나 갈빗살이, 탕은 다리 살을 주로 사용했다. 이 집은 “개고기에도 등급이 있다”며 “100마리 중 3~4마리만 나오는 1등급 개만 50여개 농장에서 선별해냈다”고 홍보했다.
보양식 이미지의 개고기는 남성성을 상징했다. 이날 식당을 찾은 장년 남성 두 명은 보신탕과 삼계탕 하나씩을 시켰다. 양복 입은 중년 남성 두 명과 젊은 여성 두 명이 함께 온 팀도 탕 두 그릇과 삼계탕 두 그릇을 시켰다. 그 보신탕은 남성들이 먹었다. 대부분의 보신탕 식당은 보신탕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식당을 찾을 수 있도록 삼계탕을 함께 판다.
짧은 기록이지만, 남성은 4명 중 3명이 보신탕을, 여성은 8명 중 2명만 보신탕을 먹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보양식의 하나인 보신탕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힘을 더 많이 가졌으며 유무형의 힘을 더 많이 필요로 했던 이들의 것이었고, 여전히 그런 문화가 개고기산업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흘에 한 번, 개 한 마리
충북 청주시 외곽에서 60~70석 규모의 보신탕 가게를 26년째 운영하는 ㄱ(60)씨 부부는 새벽 5시~5시30분쯤 일어난다. 이틀 또는 사흘에 한 번 청원군의 한 농가에서 막 잡은 24~25㎏ 개 한 마리씩을 납품받는다. 그 집 고기가 “껍질이 얇고 기름이 적어”서 10년 단골이다. 개고기 항생제 검사 결과를 받았느냐 질문에 “농가에서 이상 없다고 했다. 500마리 이상 기르는 집이고 서울에서도 사가는 집이라 믿고 산다”고 답했다. 1㎏당 1만원~1만1천원을 지불한다. 손님이 몰리는 여름이나 복날 아닌 비수기 기준 고기값으로 300만~400만원이 나간다.
나머지 날들도 같은 시간 일어나 손님상에 올릴 채소류를 다듬는다. 새벽같이 핏물을 빼고 고기를 삶아둬야 밤 9시 문을 닫을 때까지 근처 회사원들, 조치원, 세종시 등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의 배를 채울 수 있다.
ㄱ씨가 파는 개 한 마리를 60~80명이 먹는다. ㄱ씨가 “손의 감각으로 쥔 고기 한 움큼”을 올린 보신탕 한 그릇이 9천원이다. ㄱ씨는 “일요일 하루만 쉰다. 야채랑 인건비 등 원가 계산하면 한 그릇당 6천원꼴은 나온다”고 말했다. ㄱ씨네 집의 수육과 전골은 1인분에 1만8천원이다.
ㄱ씨가 말한 손님 수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ㄱ씨의 비수기 매출은 월 900만원, 재료값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30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ㄱ씨는 성수기인 복날 무렵에는 하루에만 250만원씩 벌었다고 했다. “이 식당은 한철(성수기) 장사”라는 ㄱ씨는 “딸·아들 다 시집·장가보내고, 이제 체력이 부족하니 이 장사를 못 하게 하면 일을 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ㄱ씨는 농사를 짓고 방앗간을 운영하던 남편의 벌이에 보탬이 되고자 장사를 시작했다. 1991년 시작한 보신탕가게는 한자리에서만 26년을 지켰다. ㄱ씨는 “시작할 때는 고기가 모자라서 못 팔았다. 일하는 분들도 3~4명씩 두었지만, 지금은 내외만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개(고기)를 선호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손님이 준다고 해서 ㄱ씨가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는 않았다. 개고기를 처음 먹는 사람, 병원 환자복을 입은 채 몸에 좋다고 들었다며 먹으러 오는 사람 등을 볼 때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만두더라도 누가 또 할 것 같아요. 완전히 없어지려면 한참 걸릴 것 같은데요. 동물보호단체가 말하듯 예쁜 반려견을 잡는 게 아니라 먹으려고 키운 종(도사 혼합)만 잡으니까….”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어 동물보호단체 입장도 이해된다는 ㄱ씨지만, 개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지배하라고 했으니까…. 이것도 같은 고기로 보면 되는데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니까 합법적으로 깔끔하게 해서 작업하면 문제가 덜 될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개고기가 몸에 좋기 때문에 장복을 한 지인도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6회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편이 이어집니다.)
글·사진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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