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이가 노트북에 빠져들 듯한 자세로 ‘겨울왕국’을 보고 있다. 엘사 공주처럼 어깨에 망토를 두르는 건 필수다.
올겨울, 달라진 집안 풍경이 있다. 어둠이 내리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찬란한 얼음 궁전이 세워진 나라, 눈의 마법이 펼쳐지는 나라. 화려한 춤과 노래가 울려 퍼지고, 눈보라와 얼음 괴물이 화를 내는 클라이맥스를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는 동화 같은 세계. 그곳은 바로 ‘겨울왕국’.
내가 돌보는 아이의 2017년 겨울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으로 기억될 것 같다. 어느 주말, 아빠는 주말 근무를 나가고 엄마는 한 주간 쌓인 피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아이는 지루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고양이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도 심심하지 않게 오후를 보낼 자신이 있지만, 아이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 집안의 모든 장난감을 거실 바닥에 쏟아내 한 사이클을 돌고 난 다음 “엄마~” 하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기 직전 아이와 엄마를 모두 구한 것이 ‘겨울왕국’이었다.
‘겨울왕국’을 처음 본 아이는 얼음 괴물이 나오는 부분에서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엄마를 불러댔지만 이내 황홀한 그 세계에 홀딱 빠져버렸다. 그날 이후 아이는 엄마·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밤이면 밤마다 ‘겨울왕국’ 타령을 했다. 온 집안의 불을 끄고 영상을 켜면 그 순간부터 세상은 겨울왕국이 됐다. 어지럽게 바닥에 널려 있는 장난감들은 어둠 속에 묻히고, 집안의 공기는 겨울왕국의 노랫소리로 채워졌다.
일주일에 두세번씩 거의 한달을 겨울왕국에 빠져 지낸 아이는 대사를 거의 외울 지경이 됐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같이 눈사람 만들래?”로 시작해 주인공인 안나와 엘사 1인2역으로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말괄량이 안나는 자신과 동일시하고, 마법을 쓰는 엘사는 선망의 대상으로 삼은 듯했다. 노래를 부를 때, 공주처럼 긴 망토를 두르고 집에서 제일 긴 치마를 꺼내 입고선 온 집안을 휘적거린 건 당연했다. 옆에서 영상을 같이 보던 나도 거기 등장하는 눈사람인 ‘올라프’에 빙의해 한 소절은 따라 불러야 할 것만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아이 부모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확인한 아이가 올라프를 만들러 가자고 외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아이 엄마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부엌에 서서 올라프 코를 만들기 위해 당근을 깎고 있는 뒷모습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겨울왕국’으로 점철된 2017년의 겨울이 지나고 있다. 아이가 자라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듯 이 ‘공주 시절’을 돌아본다면 옆에 앉아 올라프 역을 하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린 나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길.
글·사진 만세·전업육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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