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깡의 시절이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할 만큼 자란 모습에 또 웃는다.
내 이름은 만세, 육아하는 고양이다.
언젠가 이 칼럼에 썼듯, 육아의 8할이 수면이라면 나머지 2할은 먹는 것이다. 잘 자고 잘 먹는 정도에 따라 육아 담당자 눈 아래 다크서클의 농도가 정해진다. 나와 함께 사는 아이는 낮밤이 바뀐 신생아 시절을 보냈다. 반려인들의 다크서클 지수 99. 조리원에서 갓 돌아온 아기는 안을 때, 먹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초보 엄마·아빠의 품에서 고단했던 모양이었다. 밤새 울며 짜증을 내고 낮에는 지쳐 잠들었다.
모두 잠든 밤, 온전한 ‘고양이 시간’을 즐기며 집안을 서성대기 좋아했던 나 또한 그 시기는 육아냥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한밤중 아이가 울음을 그치길 기다리며 반려인들 곁을 지키다 방을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집안의 가장 구석에 들어가 숨어도 아이의 울음소리는 사이렌처럼 온 집안을 울렸다. 온갖 육아서를 동원해도 끝나지 않던 아이의 수면 투쟁을 해결해준 것은 결국 시간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익숙해진 아이는 점차 밤을 밤답게, 낮을 낮답게 보내기 시작했다.
잠을 잘 자기 시작하니 이번엔 먹는 것이 전쟁이었다(다크서클 지수 87). 첫 이유식이었던 하얗고 고운 쌀미음을 아이가 첫입에 주르륵 흘렸던 그 순간이 바로 먹이기 전쟁의 예고편이었다. 아이는 온갖 재료로 정성을 들일수록 잘 먹지 않았다. 같이 사는 개 ‘제리’ 밥상만 잔칫날이었다. 아기 이유식은 몇몇 재료만 피하면 개·고양이 자연식과 거의 흡사하다. 정성껏 끓인 이유식을 어부지리로 얻은 제리의 털만 날로 반질거렸다.
잘 안 먹으면 몸이 비실비실해 감기에 자주 걸리고 감기에 걸리면 입맛이 떨어져 안 먹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 아이의 식습관도 변하는 순간이 있었다. 혹독했던 밥 안 먹기 시절이 지나니 봄같이 잘 먹고 잘 자라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러나 ‘잠과 밥 스테이지’를 끝냈다고 게임이 끝난 걸까. 요즘 나는 아이와 엄마가 싸우는 걸 뜯어말리느라 바쁘다. 아이는 5살, 고집불통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다크서클 지수 65, 신규 울화통 지수 89). 아침이면 옷과 신발로 엄마와 싸우고 밤이면 자지 않고 버티며 더 놀겠다고 아빠와 싸운다. 몸과 마음이 자란 아이는 엄마·아빠가 허투루 한 말들도 모두 마음에 주워 넣고 이따금 비장의 카드처럼 꺼내곤 한다.
까칠한 이 시기가 지나면 또 찬란한 초록의 계절이 오겠지. 그리고 또 겨울이 오고. 아, 육아 난이도 상승에 육아냥은 고단하다.
글·사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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