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이 만난 애니멀피플] 개를 사랑하는 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
“인공심박기 달아준 예삐, 떠났을 때 많이 울었다
개 덕분에 즐거웠던 인생…동물보호 운동 나설 터”
“유기견 줄이려면, 돈과 노력 감당할 사람 키워야
일정 비용 내는 ‘반려견 등록제’ 피할 이유 없다”
서민 단국대 교수가 3월2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반려견 사진이 담긴 명함을 보여주고 있다. 서 교수의 이메일 주소는 18년 동안 키운 몰티즈의 이름(벤지)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는 유머와 반어법, 풍자가 번득이는 글쓰기로 유명하다. 덜 알려진 사실은, 그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애견가라는 것이다. 개 다섯 마리와 함께 사는 그는 “잘 된 건 다 개 덕분”이며 “개권이 서야 인권도 존중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는 또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사람만 개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고하다. “이제 동물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서 교수를 27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의 명함 뒷면에는 기르는 페키니즈 개 5마리가 나란히 서 있고, 부인이 개 발자국과 간식 뼈로 디자인한 앞면의 메일 주소엔 ‘벤지’가 있다.
-벤지는 전에 기르던 개군요.
“여동생이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몰티즈인데, 며칠 함께 지내면서 결국 제 강아지가 됐죠. 18년 동안 좋은 친구였습니다. 어깨에 얹고 지하철 타고, 동네 활보하고, 항상 제 곁에 있어 주었지요. 힘들 때는 마주 앉은 술친구이기도 했어요.”
서 교수의 반려견들이 태평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대접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니, 잘 모셔야 한다’고 서 교수는 말한다. 서민 교수 제공
성격이 다른 개 5마리가 있으니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서민 교수 제공
-벤지 보내고 들인 페키니즈는 중국 황실 견 아닌가요.
“엄마 아빠에게 잘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우릴 잘 모셔야 한다고 믿는 강아지죠. 밥그릇 들고 쫓아가며 먹여줘야 먹고, 먹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죠.”
-어쩌다 다섯 마리가 됐죠?
“전문 증식 가정에서 들여왔는데요. 처음엔 혼자 있으면 외로울까 두 마리를 데려왔어요. 그런데 차츰 ‘이렇게 예쁜 개가 있다니’ 하면서 계속 들여오게 됐어요.”
-집이 개로 가득 차겠어요.
“신경 쓸 게 많긴 하죠. 하루 두 번씩만 소변 봐도…하지만 어딜 봐도 개가 있으니 좋아요. 둘씩 셋씩 짝지어 앉은 모습이 너무 예뻐요.”
-서로 안 싸우나요?
“흰색 미니미와 까만 흑곰이 문제에요. 먼저 온 미니미는 기득권을 주장해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지만 욕심 많고 심성이 안 좋죠. 셋째 흑곰은 미니미가 넷째와 다섯째를 구박하는 걸 막아줬어요. 감동적인 사연이죠. 그런데 흑곰이 밥을 먹으려면 넷째와 다섯째가 은혜를 갚기는커녕 만만하게 보고 뺏어 먹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와 제가 ‘잘해줄 필요 없다. 무섭게 하는 게 최고다’라고 하죠.”
-무섭게 하기는커녕 자주 물린다면서요.
“싸울 때 떼어내면 분이 안 풀려 말리려던 저와 아내를 자주 물어요. 상처가 깊어 응급실에 간 적도 있죠. 차에서 아내가 얼굴을 물린 적도 있어요. 남편이 그렇게 한 거로 오해할 텐데, 억울하죠. 듣는 사람은 ‘그래 알았어’ 하면서도 개가 어떻게 얼굴을 무느냐고 의심하겠죠.”
서민 단국대 교수가 조홍섭 기자(왼쪽)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간식을 먹는 흑곰. 서민 교수 제공
-어렸을 때도 머리를 물린 적 있지요?
“중2 때 교생선생님 댁에서 셰퍼드에 놀자고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그만 물렸어요. 집에는 넘어졌다고 했어요. 제가 워낙 개를 좋아했거든요. 제 피에는 개 유전자가 10%는 섞였나 봐요.”
-다섯 마리 전에 떠나보낸 두 마리가 더 있다죠?
“아내와 제가 결혼하게 해 준 뽀삐와 결혼 뒤 외로울까 데려온 예삐인데, 뽀삐는 십 년도 못 살고 죽었고, 예삐는 심장이 안 좋아 고생 많이 하다 갔어요. 예삐 보내고 아내와 많이 울었죠. 사람에 쓰는 인공심박기 다는 수술을 3번이나 했는데, 작은 개에 힘든 일이었죠. 적지 않은 돈도 들었고요.”
-다른 주제보다 임팩트는 좀 떨어져도 칼럼에서 종종 개 문제를 다루셨죠.
“그게 문제지만 보람 있어요. 동료 교수 딸이 ‘개 기르지 맙시다’란 제 칼럼을 국어 교과서에서 보고 저를 존경하게 됐대요. 결혼도 하게 해주고, 교과서에 실리는 영광을 준 것도 개 덕분이죠. 인생도 즐겁고… 저는 개 덕을 많이 보았어요.”
-한 인터뷰에서, 서 교수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유기견’이 떴으면 좋겠다고 하셨더군요.
“버려지는 개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좋은 사람 만났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유기견 보호소를 후원하게 됐죠.”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개는 어떻게 느낄까요.
“세상을 잃는 것이죠. 차에 태워 버려진 개는 다시는 차에 타지 않으려 하고, 자신을 사간 중년 아저씨만 보면 짖고 하는 트라우마가 남죠. 어릴 때 남성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미니미는 아직도 제게 마음을 열지 않아요. 처음엔 야단맞을까 봐 자기 배설물을 먹기도 했죠. 버려진다는 건 며칠 고생하고 잊히는 일이 아니에요.”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됐다든가, 임신했다,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너무 쉽게 개를 버리는 풍조이죠. 그런데 실제로 단독주택에서 좁은 아파트로 이사하면 방법이 없지 않나요?
“큰 개는 안 기르지만, 그래도 개 때문에 몇 번 이사했어요. 목줄 채워도 개가 싫은 사람이 있어요. 왜 개 데리고 밖에 나오냐고. 사람 피해 새벽에 나가면 또 새벽부터 나왔다고 뭐라 하고…제가 로또를 사는 이유가, 전에는 ‘기생충박물관을 짓기 위해서’ 라고 했지만, 지금은 개들이 마음껏 놀 마당이 있는 ‘타운하우스 사기 위해서’ 로 바뀌었어요.”
서 교수 부부는 반려견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지만, 집에서 함께 있는 것으로 행복하다고 한다. 서민 교수 제공
-유기견이 발생하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개를 가족처럼 대하지 못할 사람은 개를 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개를 하루 대부분 혼자 내버려 둘 수밖에 없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반대하면 개를 길러서는 안 돼요. 아이가 졸라대도 어머니가 반대하면 개 앞날이 험난합니다. 개를 너무 쉽게 기를 수 있는 풍조가 문제입니다. 애완동물 가게 가서 사면 당장 개 주인이 되지요. 몇십년 같이 살 가족을 고르는 건데…개 데려오기 위해 일주일 기다리고, 서류 통과하고, 그렇게 개를 받아들여야 기쁨도 크지요. 개를 받기 어려워야 쉽게 버리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요.”
-50만원 정도의 등록비를 국가에 내고 관리받는 등록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펴셨죠.
“동물 등록제를 칩을 심는 정도로 그치지 말고 개를 버리는지 안 버리는지 알아내 버리면 처벌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하자는 것이죠. 개 키우는데 진입장벽 구실도 하고요.”
-돈 있는 사람만 개 기를 수 있냐는 항의가 나오지 않을까요?
“반대보다는 충분히 이해 간다는 사람이 많던데요. 가족을 영입하는데 그 정도 돈을 쓰지 않는다면 개가 아팠을 때 치료비를 내겠습니까. 부자만 개 키우라는 얘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개를 키울 수 있는 사람, 개가 키우는 데 돈과 노력이 드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그것을 감당할 사람만 키우게 하자는 거죠.”
-거액의 등록제보다 낚시면허제처럼 개를 기르는 데 필요한 소양교육을 미리 받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사실 애견인들의 소양도 길러야 해요. 천안에 개 공원이 생겨 자주 가는데요. 주인들이 동호회 모임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요. 공원의 반 이상이 배설물에 뒤덮이도록. 할 수 없이 아내와 함께 치우는데 끝이 없어요. ‘개똥 치웁시다’라고 팻말을 붙이기도 했는데, 안 들어요.”
개들이 맘껏 뛰놀게 하려면 개 공원만 한 곳이 없다. 서민 교수 제공
-자기 개가 뭘 원하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더군요.
“개들은 소변으로 소통하거든요. 다른 개가 남긴 냄새를 맡는 건 에스엔에스(SNS) 내용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 휴대폰에 얼굴 파묻고 개를 끌고 그냥 지나치죠. 온종일 그 순간을 기다렸는데.”
-개들을 혼자 놔두지 않으려고 여행도 가지 않는다고.
“부득이 해외여행 갈 일이 있어도 2박3일을 넘기지 않으려 해요. 부부가 같이 여행 가는 건 불가능해요.”
-불행하지 않나요?
“개 있는 곳이 천국이고 여행지인데요. 여행 가서 개를 어떻게 할까 걱정한다면 즐거운 여행이 아니죠. 어떤 사람이 ‘개밥 안주고 여행 왔는데 어떡하냐’는 글을 올렸던데,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 글 쓸 시간에 당장 무슨 조처를 했어야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돗개를 정치적 이미지로 이용만 했다고 비판했죠. 문재인 대통령의 토리를 어떻게 보나요.
“유기견이고 남들이 기피하는 검은 개를 입양했으니 높은 점수를 주죠. 하지만 1년에 유기견이 10만 마리나 나오는데 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대통령같이 바쁜 분이 입양하더라도 상징적이고 주로 청와대 직원들이 키우지 않을까요. 목줄을 하는 모습도 어색해요.”
-개도 사람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가축일 뿐이라는 지적은 어떻게 봅니까.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할까요. 모든 범죄와 해악은 사람이 저지르는데, 단지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할까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으면서 개 문제 이야기하면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개권’이 존중되면 사람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개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인권의 척도입니다.”
-개 말고 다른 동물은 안 길러봤나요.
“고양이를 길러봤어요. 우리 집에서 아침마다 길고양이 7마리에 밥을 준 적이 있어요. 지금도 유기고양이 한 마리를 사료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가 눈이 튀어나온 품종이어서 고양이와 함께 기르긴 어려워요.”
개들과 놀아주는 건 매일의 중요한 일과다. 서민 교수 제공
-전공 분야 이야긴데, 고양이가 옮기는 톡소포자충이 심각한가요?
“톡소포자충 감염 자체는 간단한 질환이 아니지만, 고양이가 전파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은 주로 소고기나 채소를 통해 감염되지요. 소고기를 날로 많이 먹는 유럽에서 사람이 많이 걸려요. 고양이도 집에서 기르는 건 별문제 없고 길고양이가 많아지면 감염 가능성이 커지죠. 길고양이를 줄이는 게 해결책이죠.”
-개회충이 더 심각하다고 강조하셨죠.
“우리나라의 개회충 감염률이 세계 1위죠. 그 이유는 버려진 개가 많아서입니다. 유기견이 길거리에서 지저분한 것을 먹다 개회충 알을 먹고 감염돼 알을 뿌리고 다닙니다. 운동장 흙에서도 나와요. 어른들은 소간을 날로 먹어 감염되죠.”
-증상은 어떤가요.
“대부분 몸살 앓듯 지나가지만 일부는 눈으로 가서 망막박리를 일으키거나 뇌로 가기도 해요. 2000년대 이후 핫이슈로 떠올랐는데 유기견 증가와 함께 늘어났어요. 집에서 기르는 개로는 감염되지 않죠. 결국 유기견을 줄여야 개회충도 줄어듭니다.”
-기생충은 무조건 없애야 할 나쁜 존재만은 아니며, 사람과 공존하면서 때로는 알레르기를 막아주는 등 도움도 주는 동물이라고 주장해 오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반려동물도 기생충의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나요.
“기생은 자연계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로 의존한다는 점이 그렇죠. 우리는 태아 때부터 엄마에 기생하고, 태어난 뒤 부모와 사회에 기생합니다. 우리 몸도 우리 것이 아니라 100조마리의 세균과 공존하는 우주죠. 기생충 몇 마리 있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요.”
-아이 대신 개와 사신다고.
“애 안 낳는 이유는 저 닮은 애를 낳을까 봐 무서워 그래요(웃음). 하지만 박지성 선수도 축구 잘하니까 아우라가 생겨서 못생겨 보이지 않잖아요.”
-바쁘실 텐데 아이들과는 어떻게 놀아 줍니까.
“일단 집에 가면 공 던지기 놀이를 하죠. 물어오면 뺏어 다시 던지고… 다음에는 남자애들과 천 물어뜯기 놀이를 합니다. 옷의 팔 한쪽씩 잡고 서로 당기는 거죠. 누우면 만져주고. 이렇게 1시간 반쯤 놀아 주고 일주일에 2∼3번은 개 공원에 데려갑니다.”
-오래 놀아주네요.
“우리나라 남자들이 자기 아이 돌보는데 6분 쓴다는데… 사실 지난해말에 방송 일 모두 잘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어요. 우리 1년이 개들엔 7년이에요. 기다리게 할 수 없죠.”
-지난달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홍보대사로 위촉됐죠. 이제 본격적으로 동물보호 운동에 나서겠다는 선언으로 보아도 되나요.
“그렇습니다. 이름만 거는 사람이 되지 않겠으니 불러만 달라고 했어요. 길거리에서 팻말 들고 시위할 생각도 있습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