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사지마 팔지마 버리지마: 반려산업의 슬픈 실체
3회. 펫숍, 끝나지 않는 생사의 갈림길
3회. 펫숍, 끝나지 않는 생사의 갈림길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사료를 먹고, 진열장에서 떨어질 위험을 안은 채 펫숍의 강아지들은 반려인을 기다린다.
1~2회 이야기: 경매장에서는 생후 40~50일 강아지들이 플라스틱 상자를 타고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전시됐다. 2~3시간 동안 거래된 강아지 200여 마리는 대략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에 팔렸다. 외모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강아지는 현장에서 수시로 유찰되고, 반품됐다. 몇 차례 경매장을 돌다 자라난 강아지는 종·모견으로 보통 8~9년 또는 죽을 때까지 새끼 낳는 일만 하게 된다. 이마저도 역할이 다한 개들은 유기되거나 ‘국물용’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펫숍에는 한국인들이 주로 선호하는 견종인 몰티즈, 푸들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6월4일 처음 출근한 △△펫숍의 첫 업무는 아침 배식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강아지들은 낑낑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날 저녁으로 밥숟가락 한 스푼 분량의 사료를 먹은 상태였다. “불린 사료가 뭉치지 않게 잘 펼쳐 줘야 해요.” 강아지들이 사료를 허겁지겁 먹다가 기도가 막혀 죽을 수도 있다고 점장은 설명했다. 생후 2~3개월의 강아지는 치아가 약하기 때문에 사료를 물에 불려 주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고도 했다. 설사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저혈당 쇼크가 오면 큰일”이므로, 설사는 하지 않되 쓰러지지 않을 만큼 배식하는 요령을 익혀야 했다. 강아지들은 오전 10시와 오후 8시, 하루 2번 사료를 먹었다. 한 번에 밥숟가락 한 스푼씩, 하루 두세 스푼 분량의 불린 사료를 먹었다. 배식을 위해 유리장을 열면 강아지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료와 물을 넣어주기 무섭게 그릇은 깨끗이 비워졌다. 배가 고픈 것이다.
하루에 밥숟가락 두세 스푼 분량을 배식받는 강아지들은 사람을 보면 낑낑대며 보채기 시작했다.
‘더 작고 더 어린’ 개체의 악순환 더 작고 어린 강아지가 비싸게 팔리는 경매장의 법칙은 펫숍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손바닥만 한 강아지들은 펫숍에서도 적게 먹고 작게 키워졌다. 일이 그렇게 된 사정에는 ‘소비자의 기호’가 반영돼 있다. 국내 반려견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종견은 몰티즈(23.9%), 푸들(16.9%), 시추(10.3%) 등이다.(KB금융경영연구소, <2018 반려동물보고서>)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소형 견종을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펫숍이 6월 초 진열하고 있던 28마리 강아지 가운데 푸들이 7마리로 가장 많았다. 몰티즈, 장모 치와와, 비숑이 각각 5마리, 포메라니안은 4마리였다. 나머지 두 마리는 닥스훈트와 시츄였다. ‘판매장부’를 보면, 이 가운데 세 마리가 생후 2개월이 지나지 않은 강아지였다. 나머지 대부분은 생후 3개월 이하였고, 3개월 이상 강아지는 두 마리밖에 없었다. 다 자라도 5kg이 넘지 않는 소형견들 가운데 가장 어린 강아지를 경매장에서 데려온 것이다. 이 특수한 ‘단체 생활’에서 강아지들은 언제라도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펫숍 사장과 점장은 작은 부주의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하며 경고했다. “이 강아지를 만지다가, 소독 안 하고 다른 강아지를 만지면 절대 안 돼요.” △△펫숍 점장은 철저한 ‘위생’을 강조했다. 점장은 강아지를 만지고 나면 손과 몸에 소독제를 뿌렸다. 유리장을 닦고 나면 일회용 장갑과 일회용 행주를 모두 폐기했다. 밥그릇을 닦을 때도 설거지 전에 분말 소독제로 소독했다. 각기 다른 농장에서 온 강아지들이 어떤 질병을 갖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생후 2개월 안팎이 되면, 어미젖을 갓 뗀 강아지들의 면역력이 매우 취약해진다. 이 무렵의 강아지들을 위협하는 질병은 여러 가지다. 감기, 홍역, 파보장염, 코로나장염 등에 대한 예방접종도 이 시기에 차례로 이뤄져야 한다. _______
펫숍 내 격리실의 용도 경매장을 오가며 만난 관련 업자들은 우리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강아지를 데려다 죽이지 않는 것이 중요해.” 그게 무슨 뜻인지 펫숍에 와서 확실히 알게 됐다. 강아지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라는 말이 아니었다. ‘자가 치료’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했던 펫숍 두 곳에서도 예방접종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오래 관리하다 보면 어디가 아픈지 알게 되고, 병원에 가면 다 돈이기 때문”에 병원이 아닌 펫숍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펫숍의 사장은 말했다.
격리실 옆에는 포도당, 항생제 등 약품과 빈 주사기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출근 첫날 격리실에서 만났던 몰티즈. 다음날 이 강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120cm 분양장은 높았다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서울 ○○ 펫숍에서 일했던 김아무개(21)씨를 나중에 따로 만났는데, 그도 아픈 강아지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펫숍 격리실에서 죽은 강아지를 봤다고 말했다. “원래 애들이 처음 오면 많이 낑낑대고 울어요. 그래도 하루 지나면 괜찮아지는데, 그 프렌치불독은 계속 울었어요.” 프렌치불독은 ○○ 펫숍에 온 지 일주일 만에 격리실에 들어갔다. 펫숍 직원들이 주사를 놓는 등 ‘집중 케어’ 했지만 약 3주 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죽기 하루 전날이 기억난다고 했다. 다가가면 조금씩 반응을 보였던 강아지가 그날만큼은 축 처져 있었다.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보자마자 가슴이 턱 막히면서 ‘얘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병이 아니어도 강아지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건강한 강아지들은 때로 분양장 문에 매달려 ‘탈출’을 시도했다. 강아지들이 온종일 생활하는 유리장을 펫숍에서는 ‘분양장’이라 불렀다. 분양장은 지상에서 60~120cm 높이에 있다. 구경하는 사람의 눈높이를 고려한 사이즈로 추정되는데, 강아지들이 여기서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천장이 없는 분양장의 유리벽을 뛰어넘다 떨어질 수도 있고, 천장이 있어도 문이 덜 닫혀 추락하기도 한다.
펫숍 유리장에서 강아지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5개월 페키니즈의 멈춰버린 시간 배식과 분양장 청소가 끝나면 강아지도 잠시나마 유리장 밖으로 나온다. 눈곱을 떼고, 귓속을 청소하고, 발톱을 다듬고, 엉킨 털을 빗는 시간이다. 이들은 이 과정을 ‘세팅’이라고 불렀다. 강아지를 보기 좋게 단장하며, 아픈 곳이 없는지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다른 강아지뿐 아니라 사람과의 접촉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관리되는 강아지들이 하루 중 유일하게 사람과 소통하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아지들은 빨리 꺼내달라는 듯 다가오는 사람을 향해 짖고 꼬리를 쳤다. 이윽고 품에 안으면 조용해졌다.
생후 5개월을 넘은 페키니즈(오른쪽)는 성견에 가까웠지만 어미 젖을 찾는 행동을 보였다.
펫숍 포함한 동물판매업체 전국 4400개 독일은 ‘동물헌법’에 따라 반려동물 매매가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처럼 강아지 또는 고양이를 파는 펫숍이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유기동물을 입양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올해부터 펫숍에서 비영리 동물구조단체가 구조한 유기동물만 거래하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펫숍에서 6개월 이하의 개, 고양이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유기견 보호소인 ‘티어하임’. 티어하임 누리집
번식장, 경매장, 펫숍은 한국 반려동물 산업의 ‘블랙 트라이앵글’입니다.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애니멀피플>이 그 현장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한 달 동안 사전 취재와 자료 조사를 벌였고, 두 달 동안 전국의 강아지 번식장 4곳, 반려동물 경매장 6곳, 펫숍 2곳 등을 잠입 취재했습니다.
반려견 산업은 외부자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강아지 번식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은 경기도의 한 상가를 임대해 관청으로부터 동물판매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엄격한 회원제로 운영되는 반려동물 경매장에 접근하기 위해 펫숍 사업자로도 등록했습니다. 펫숍에서 보름간 ‘알바’로 일하며 개가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현장도 기록했습니다.
돈의 논리로 굴러가는 한국 반려견 산업의 실체를 이제 영상과 글로 보여드립니다. 물건처럼, 때로 물건보다 못한 존재로 거래되는 생명을 구출하기 위한 텀블벅 펀딩도 준비했습니다. 동물의 친구, <애니멀피플> 친구들의 참여와 도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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