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치와와들. 쭈니(오른쪽)은 저런 순간 늘 엄마인 막내를 견제하고 있다.
홀로 사는 이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을 두고 고민할 때 흔히들 “외롭지 않게 하나를 더 두는 게 좋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온종일 밖에서 일하는 동안 막내(13)와 쭈니(11), 치와와 모녀가 함께란 사실은 마음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둘이 온기를 나누며 잠든 모습을 보거나, 서로 얼굴을 핥아주는 모습을 볼 때면 함께여서 다행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문제는 쭈니다. 이 손바닥만 한 강아지는 투기가 강해, 내가 막내와 어울리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한다. 우리집의 희빈장씨다. 막내와 스킨십이라도 하려 하면 내 손등을 박박 긁고 야단법석이다. 그에 견주면, 늘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막내는 인현왕후처럼 현숙하다. 그처럼 어질고 관대한 태도엔 견주의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다.
종종 주변에서 “얘들도 자기들이 모녀지간인 걸 기억할까” 묻는 경우가 있다. 막내와 쭈니를 한두 시간만 지켜봐도, 늘 물러서기만 하는 막내를 보면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먹이를 두고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쭈니는 막내와 먹이 취향이 완전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배를 채우려고 하면 길을 막아선다. 내 앞에선 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동공을 확장하는 쭈니가, 사료 그릇 앞에서 엄마를 막아설 땐 스라소니 못지않은 맹수가 된다.
먹지도 않을 조그만 육포 조각 하나를 숨겨두고 밤새 엄마에게 으르렁대기에 참다못해 빼앗아버린 일도 여러 번이다.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돼 망연자실하던 녀석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쭈니가 막내를 박대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내가 집에 시시티브이(CCTV)를 설치한 뒤다. 그저 백성들의 안녕이 궁금해 설치한 시시티브이 화면 속에서 나는 충격적인 내전을 목격했다. 막내를 쥐잡듯 잡는 쭈니의 뒷모습이었다. 귀엽기만 했던 쭈니가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내게는 <식스센스>와 <유주얼서스펙트>급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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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견주는 하나뿐이니…
굴절된 성격엔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두 모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앙숙이었던 건 아니다. 가족에게서 떨어져나와 치와와들과 내가 따로 살게 되었을 때부터, 쭈니의 신경은 곤두서기 시작했다. ‘나’라는 제왕적 견주의 사랑을 쭈니와 막내가 나눠 가져야 해서다.
거실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볼 때, 두 녀석은 서로 앞자리에 앉아 나와 아이컨택을 하려 다퉈야 한다. 산책을 나설 때도 서둘러 이 길을 주인님과 즐기려는 쭈니와, 산천 유람하듯 여기저기 구경해야 하는 막내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따금 친구들이 놀러 와 우리집이 북적이면 쭈니와 막내는 사람의 손길을 두고 다툴 일이 없다. 각자 한 사람의 무릎을 독차지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서다. 사교성이 좋아 쉽게 남의 무릎에 누워 잠든다.
하늘 아래 의지할 이가 엄지원 주인님뿐인 두 녀석이니, 서로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곳은 정글이다. 엄마의 사랑을 두고 경합하는 두 조카의 전쟁은 비교도 안 되게 치열하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사는 이들에겐 반려동물을 맞을 자격이 충분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개부담도 개부담이지만, 개미안한 견주님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견공들이여.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