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내게 기적같던 반려견을 떠나 보내는 일

등록 2020-12-21 13:24수정 2020-12-21 13:52

[애니멀피플] 엄지원의 개부담
늘 나를 위로하던 막내의 모나리자 스마일. 장례절차에서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
늘 나를 위로하던 막내의 모나리자 스마일. 장례절차에서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

<애니멀피플>에 ‘엄지원의 개부담’을 연재하다 지난 4월 이후 중단했다.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더 글을 싣지 못했다. 다시 쓰게 될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7월부터는 일상이 더 빠듯해졌다. 개부담의 주인공인 치와와 모녀 가운데 엄마인 ‘막내’가 크게 아팠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19일 막내는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아니, 내가 무지개 다리에 실어 보냈다. 안락사를 택한 것이다.

15년을 함께 살았던 친구를,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눈감도록 하기까지 매일 새벽 수없이 갈등했다. 무엇이 최선인지, 개는 답해줄 수 없었다. 원래 막내를 함께 키웠던 가족들이나 친구, 주치의의 판단도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결정도, 수치심도, 미안함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6개월간의 압축적인 투병에서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텍스트를 읽고 카페를 들락거리고 주치의와 대화했지만 늘 외로웠다. 반려동물의 고통을 홀로 지켜보는 ‘독박 반려인’이어서, 늙어가는 동물의 증상과 고통은 저마다 달라서 누구에게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막내가 떠난 뒤에야 겨우 연재를 다시 이어갈 용기를 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 어느 밤에 나와 같은 고민과 아픔으로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이 글을 찾아 읽고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길 바란다.

말하자면 개부담 시즌투다. 이번엔 귀엽거나 사랑스럽기보단, ‘개아픈’ 이야기를 복기하게 될 것 같다. 막내를 기리는 부음으로, 시즌투 첫머리를 연다.

대발작으로 쓰러진 지난 7월의 막내. 죽음의 문턱을 넘어 반년동안 힘을 내주었다.
대발작으로 쓰러진 지난 7월의 막내. 죽음의 문턱을 넘어 반년동안 힘을 내주었다.

‘쭈니’(13)의 엄마이자 ‘깜자’의 딸, 우리 가족의 따뜻한 친구였던 ‘막내’가 19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향년 15. 사람을 기준으로 삼으면 소형견 나이 80살 가량이었을 것이다.

막내. 나는 그 이름이 늘 부끄러웠다. 내 치와와 친구를 그 이름으로 소개할 때마다 민망해서 헛웃음을 짓곤 했다. ‘터무니없는 이름이 아니냐’는 뉘앙스를 담아서 말이다. “막내 보호자님”. 동물병원에서 나를 부르는 간호사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쩔쩔매곤 했다.

심지어 막내를 안락사한 동물병원에서도, 장례를 지낸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그 이름을 소개할 때 피식 웃었다. 이름이야말로 반려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의 척도가 아닐까.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 관계 맺은 반려동물을 최고의 이름으로 호명하면서 그를 우리 삶의 유일무이한 존재로 들여놓는다. 함께 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그 이름은 막내에 대한 내 사랑의 크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 아이를 위해 나는 개명 신청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쭈니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막내. 정신을 잃기 전까진 늘 저렇게 딸을 핥아주곤 했다.
쭈니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막내. 정신을 잃기 전까진 늘 저렇게 딸을 핥아주곤 했다.

그의 이름이 막내가 된 데엔 이유가 있었다. 2006년 봄 서울 구산동의 작은 아파트에서 태어났을 때, 막내는 네 마리의 치와와 남매들 가운데 가장 작고 못생긴 축에 속했다. 남매들의 반토막만했고, 치와와적인 아름다움의 핵심인 크고 튀어나온 눈도 갖지 못했다. 모두 잠든 새벽에 태어난 남매의 서열을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그 녀석을 막내 또는 무녀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말에선 형제 중 좀 모자란 존재를 무녀리라고 한다. 한 태에서 난 것들 가운데 ‘문을 열고’ 나온 녀석이 가장 비실하고 허약해서 ‘무녀리’라고 부른다는 것을 그때 우리 가족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어쩌면 그 비실하고 작은 아이 막내는 사남매의 맏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다정하고 무엇이나 잘 견디는 녀석으로 자라났던 건지도….

멕시코 출신인 치와와는 본래 뜨겁고 용맹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글에서 ‘chihuahua’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angry’가 뜰 정도로 다혈질인 족속이다. 막내라는 이름의 치와와는 달랐다. 15년의 삶을 사는 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다. 말썽을 부린 일도, 무엇을 물어뜯은 일도 없었다. 가끔 짖기도 했지만 쭈니가 앞장서면 뒤따라가보는 식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좀 혀.” 짖지도, 낑낑거리지도 않는 막내에게 우리 아버지는 자주 농담조로 말하곤 했다.

지난 7월 대발작으로 쓰러진 뒤 인지장애에 시각장애를 얻은 막내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잠들었을 때에만 평화로워보였다.
지난 7월 대발작으로 쓰러진 뒤 인지장애에 시각장애를 얻은 막내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잠들었을 때에만 평화로워보였다.

그렇다고 별나게 꼬리를 흔들거나 찧고 까부는, 흔한 ‘멍뭉미’ 쪽도 아니었다. 핥지도 않았다. 막내가 평생 핥아준 존재는 딸인 쭈니뿐이다. 사람에겐 그저 가만히 다가와 몸을 기댈 뿐이었다. 특히 막내는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에 조용히 얼굴을 맞대는 걸 좋아했다.

시인에겐 미안하지만, 김사인의 시를 읽을 때 나는 막내를 생각했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조용한 일>). 이건 완벽히 막내의 사랑이다. 나는 그런 사랑을 막내에게서밖에 보지 못했다. 인간의 사랑이란 늘 떠들썩하니까….

막내가 마지막까지 입던 옷과 턱을 받치고 자던 쿠션. 막내의 냄새가 배어있어 세탁하지 않고 보관해두기로 했다. 이틀 지났을 뿐인데 벌써 내 친구의 냄새가 휘발되어간다.
막내가 마지막까지 입던 옷과 턱을 받치고 자던 쿠션. 막내의 냄새가 배어있어 세탁하지 않고 보관해두기로 했다. 이틀 지났을 뿐인데 벌써 내 친구의 냄새가 휘발되어간다.

우리 집엔 막내 이전에도 여러 댕댕이들(재롱이, 밍키, 깜자)이 있었지만, 막내처럼 특별하게 영혼을 드러낸 친구는 없었다. 여러 번의 이별로 통곡을 할 때마다 막내는 늘 가만히 얼굴을 맞대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산책할 때, 문 열린 집마다 들어가서 사람의 발길을 확인하고 싶어했던 너. 길에 새겨진 모든 냄새의 무늬를 조용히 좇던 너. 잠들 때 아기처럼 꼼지락거리며 기분좋은 담요의 촉감과 따뜻한 온기를 여러 번 되새기던 너.

막내는 꼭 시 같았다. 댕댕이는 동화같거나 애니메이션 같을 순 있어도 시 같을 순 없는데…. 그래서 특별한 치와와였다.

지난 7월 막내가 뇌병변 증상으로 갑작스레 쓰러진 뒤, 우리는 그런 시 같은 일상을 살 수 없게 됐다. 심장병이나 신부전 등의 질병으로 천천히 반려인과 이별하는 친구들과 달리, 발작 후 인지장애와 시각장애를 얻게 된 막내는 단숨에 암흑 속에 갇혀버렸다.

앞도 볼 수 없고, 이 세상을 인지할 수도 없는 막내는 작은 소리에도 불안과 공포에 떨며 반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그는 늘 지켜온 존엄을 좀처럼 잃지 않았다. 몸에 묻히지 않고 제대로 배변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지쳐 잠든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고통과 불안의 울음으로 채우게 됐을 때, 나는 막내를 보내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막내가 세상에 남긴 쭈니라는 디엔에이(DNA)는 그가 떠난 뒤에도 남은 이들이 슬픔에 휘청이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다. 너무 슬퍼해서 쭈니가 놀라거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믿음을 담은 짤. ‘무지개 다리 건너에서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 막내는 가만히,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몇 년이고 우리를 기다려줄 것만 같다.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믿음을 담은 짤. ‘무지개 다리 건너에서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 막내는 가만히,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몇 년이고 우리를 기다려줄 것만 같다.

막내는 우리집에서 태어나 우리집에서 새끼를 낳고, 마지막까지 가족으로서 보호받다가 내 품에서 숨을 거뒀다. 다른 종의 포유류가 이렇게 서로의 생로병사를 모두 함께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1.6킬로그램의 조그만 생명체가 지난 15년 동안 나의 마음에 주었던 평화에 깊이 감사한다. 이제는 댕댕이들의 별에서 고통없이 그 깊고 따뜻한 사랑을 친구들과 나누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가는 날, 지구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마중나와주기를.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