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멕시코 유황 몰리, 물 표면에 규칙적이고 번져가는 물결 만들어 포식자 시야 교란, 과시 물결 일면 공격 빈도·성공률 떨어져…산소 부족한 독성 연못 표면 물고기의 방어술
유독물질이 가득하고 산소가 부족한 연못에 적응한 민물고기 유황 몰리는 물 표면에서 살 수밖에 없어 포식자에 쉽게 노출된다. 일련의 물결을 일으키는 집단행동으로 방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줄리안 루카스 제공.
연못에 내려앉은 백로가 다가서자 물 표면에 있던 물고기떼가 놀라 일제히 달아난다. 백로에서 가장 가까운 물고기부터 꼬리지느러미로 물을 차며 잠수하자 물 표면이 교란되고 이런 움직임이 차츰 먼 거리로 번져나가면서 연못 표면에서 규칙적인 물결이 리드미컬하게 퍼진다. 마치 운동경기장의 파도타기 응원 같다.
칼롤리나 도란 독일 라이프니츠 담수 생태학 및 내수면 연구소 연구원 등은 23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민물고기가 물결파를 이용해 포식자에 대응하는 집단행동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멕시코 타바스코주의 유황이 스며 나오는 연못에 서식하는 구피와 가까운 소형 민물고기인 유황 몰리를 포식자인 백로, 물총새, 노란배딱새 등이 사냥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분석하고 현장에서 실험을 통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교신저자인 이 연구소 옌스 크라우제 박사는 “그 많은 물고기가 함께 반복적으로 물결을 만드는 걸 보고 놀랐다”며 “어떤 때는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가 물결 하나를 만들었다”고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이런 물결이 3∼4초마다 형성됐는데 2분까지 (일련의 물결이) 계속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연못은 황화수소 농도가 높고 물에 녹은 산소가 적은 독특한 환경이어서 유황 몰리처럼 이곳에 적응한 특별한 생물만 살 수 있다. 유황 몰리도 먹이를 먹을 때를 빼면 대부분 산소가 많은 물 표면에 머문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유황 몰리가 서식하는 멕시코 바뇨스 델 아주프레 연못. 독성이 있어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서 있다. 줄리안 루카스 제공.
물 표면에 ㎡당 4000마리까지 밀집하는 유황 몰리를 사냥하러 다양한 포식자가 몰린다. 백로나 왜가리 또는 사람 같은 대형 포식자가 연못에 오면 물고기들은 미리부터 물결을 일으키지만 물총새나 노란배딱새 등 작은 포식자는 첫 공격이 시작된 뒤에야 알아채고 물결을 일으킨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렇다면 물고기들은 왜 물결을 일으키는 걸까. 포식자의 시야를 교란하거나 ‘네가 온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과시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답을 얻기 위해 물총새와 노란배딱새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물총새는 물고기떼를 향해 총알처럼 내리꽂는 사냥술을 자랑하는데 그때마다 물고기는 물결을 일으켰다.
유황 몰리를 사냥한 물총새. 첫 번째 사냥이 이뤄진 뒤에 물고기들은 물결 방어를 한다. 줄리안 루카스 제공.
노랑배딱새는 물에 잠수하지 않고 물 표면에서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채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물결을 일으키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노란배딱새와 물총새는 종종 한 곳에서 사냥한다. 연구자들은 노란배딱새가 사냥할 때 새총을 이용해 마치 물총새가 잠수한 것 같은 효과를 일으켜 물결이 일 때와 일지 않을 때 노란배딱새의 사냥이 어떻게 영향받는지 알아보았다.
실험 결과 새총으로 물총새를 흉내 내 물고기들이 물결을 일으켰을 때 노란배딱새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다음 사냥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곱절로 길었다. 또 사냥 성공률도 물결이 일었을 때 현저히 떨어졌다.
연구자들은 이런 실험을 바탕으로 ”유황 몰리가 물결을 일으키는 집단행동은 포식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크라우제 박사는 “지금까지는 동물의 무리 행동이 개체 사이의 어떤 상호관계로 일어나는지가 주 관심사였다”며 “이번 연구로 일부 집단행동은 포식자로부터 보호받는 데 효과적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결 자체가 포식자 방어 효과를 내는 원인이 시야 교란 때문인지 또는 포식자가 왔음을 알아챘으니 공격해 봐야 잘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광고 효과 때문인지는 후속연구 과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1.11.06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