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건조지대에 서식하는 등껍질이 부드러운 진드기. 학명은 ‘아르가스 브룸프티’이다. 조너선 코엔 제공.
45년에 걸친 장기 관찰연구는 우연히 시작됐다. 미국 뉴욕주의 소도시 빙엄턴 대학 생물학자인 줄리언 셰퍼드 교수는 1976년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아프리카 진드기의 살아있는 표본을 선물 받았다.
이 진드기가 다음 세기까지 살아남을 줄을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암컷 진드기는 8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살아남았고 마지막 수컷이 죽은 지 4년 뒤 번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셰퍼드 교수는 ‘위생곤충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아프리카 진드기가 진드기 가운데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며 “기생 절지동물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기다리는 전략을 펴는지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 진드기는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의 사바나와 사막 등 건조지대에 서식하는 종으로 등껍질이 부드러우며 암컷은 2㎝까지 자라는 대형 종이다. 크고 작은 포유류와 도마뱀에 들러붙어 피를 빠는데 동물이 잠을 자는 얕은 동굴, 모래 목욕장, 몸을 긁는 흰개미 집 등에서 숙주 동물을 기다린다.
대형 포유류가 등을 긁기에 맞춤인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흰개미 탑. 진드기가 숙주를 기다리는 곳의 하나다. 올가 에른스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셰퍼드 교수는 실험실에서 케냐의 동굴에서 채집한 암컷 6마리 수컷 4마리 새끼 3마리로 이뤄진 이 진드기 집단을 유리병에 넣고 일정한 온도(21도)와 습도(81%)를 유지해 길렀다. 실험실에서 항온·항습을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먹이였다.
처음엔 실험동물인 토끼, 쥐 등을 숙주로 제공했고 나중엔 쥐의 혈액을 뽑아 주기도 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진드기의 먹이로 주는 일이 껄끄러운 데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게 되자 셰퍼드 교수는 1984년 먹이 주기를 아예 중단했다.
불가피하게 단식에 접어든 암컷 3마리는 1992년까지 전혀 먹이를 먹지 않고도 살아남았다. 1세대 진드기들은 2003년까지 살았다. 무려 27년을 산 셈이다.
최장수 진드기로 드러난 아르가스 브룸프티를 소개한 해리 훅스트랄의 책 ‘아프리카의 진드기’(1956)의 도판.
셰퍼드 교수는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은 언제나 매혹적”이라며 “이 진드기도 장기간 물을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과 숙주와 만나기까지 오랜 기간 먹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생활방식에 잘 적응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놀라운 건 진드기들이 오랜 단식을 견뎌냈을 뿐 아니라 그 후 먹이를 먹자 번식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8년 동안의 단식이 끝난 직후 셰퍼드 교수는 자신의 피를 제공했는데 살아남은 암컷 가운데 한 마리가 3년에 걸쳐 번식에 성공해 2세대를 일구었다.
마지막 수컷이 단식 도중 죽은 것은 4년도 더 전인 1988년인데 암컷은 어떻게 번식할 수 있었을까. 셰퍼드 교수는 “암컷과 수컷 새끼들이 모두 태어난 것에 비추어 단성생식을 한 것이 아니라 수컷의 정자를 장기간 보관했다 먹이를 먹기 시작한 뒤 수정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아르가스 속 진드기의 산란 모습. 미국 질병 관리 및 통제 센터 제공.
2세 진드기들은 27살을 맞은 현재도 살아있으며 계통분류를 연구하는 남아공 연구자에게 넘겨졌다. 이 진드기가 어떻게 물과 에너지를 절약해 생존할 수 있었는지는 후속 연구과제가 됐다. 셰퍼드 교수는 “내 연구 관심사는 나방 정자의 생리학”이라며 “남아공 연구자들이 내 진드기를 활용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 진드기는 사람에게 병을 옮기지 않아 그동안 생태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진드기에 물리면 매우 아프고 상처가 여러 달에서 수년까지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용 논문:
Journal of Medical Entomology, DOI: 10.1093/jme/tjab20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