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깔따구 성체. 강풍에 날리지 않도록 날개가 없다. 다른 깔따구와 50만년 전에 고립돼 진화한 남극 고유종이다. 리처드 리 주니어 제공.
남극의 얼음판 위에는 펭귄과 바다사자가 살지만 6달 동안 지속하는 겨울을 포함해 1년 내내 육지를 지키는 동물은 남극깔따구가 유일하다. 길이 2∼6㎜이지만 남극 최대 육상동물이며 추위에 적응해 배낭의 짐을 덜듯 곤충 가운데 가장 작은 게놈(유전체)을 보유한 수수께끼의 동물이다.
다양한 남극 겨울 상황을 실험실에서 재현해 남극깔따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6개월 동안 살펴본 연구결과가 나왔다. 놀랍게도 평년보다 2도 더운 겨울이었는데도 깔따구 애벌레의 생존율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 곤충의 유일한 서식지인 남극반도는 남극에서도 기후변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다.
잭 데블린 미국 켄터키대 연구원(현 영국 농업, 식품 및 환경대 박사과정생) 등 미국과 영국 연구진은 남극반도에 있는 미국 팔머 기지 주변에서 깔따구와 이끼 등을 채집해 켄터키대의 냉장고에서 기르면서 생존율, 에너지 비축 정도 등을 조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과학저널 ‘기능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남극깔따구는 2년의 수명 대부분을 애벌레 상태로 땅 밑에 살며 이끼나 유기물 조각 등을 먹고산다. 몸 안에는 부동액을 갖췄다. 리처드 리 주니어 제공.
남극깔따구는 2년 수명 대부분을 애벌레 상태로 이끼, 육상 조류, 유기물 조각을 먹으며 땅속 1㎝ 깊이에서 산다. 짙은 갈색에 단단한 키틴질 껍데기로 덮인 이 애벌레의 체액에는 부동액 성분이 들어있어 영하 15도까지 생존한다.
남극 연구원들은 이 애벌레를 채집해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먼저 냉장고에 집어넣을 정도로 추위에 잘 적응했다. 또
몸의 수분을 70% 잃거나 산소가 없는 곳에서도 2∼4주를 버티는 강인한 곤충이다.
남극반도는 남극에서 비교적 덜 춥지만 겨울에 기온은 종종 영하 40도로 떨어진다. 그러나 애벌레가 사는 땅속 온도는 꽤 높아 10달은 0도∼영하 2도, 나머지 기간도 영하 7도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실험실 온도를 평년기온인 영하 3도와 난동인 영하 1도 추운 겨울인 영하 5도로 맞춰 애벌레를 길렀다. 그 결과 더운 겨울에 애벌레 생존율은 추운 겨울에 견줘 절반으로 떨어졌다. 또 몸에 비축한 지방과 단백질량도 현저히 적었다.
반대로 추운 겨울에는 생존율도 높았을뿐더러 영양분 비축량도 많아 낮은 온도에서 신진대사를 줄인 이득이 추위로 인한 피해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평년 겨울 기온이 남극깔따구 애벌레가 살기에 적정한 기온을 이미 넘어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현실적인 기온 상승 폭인 2도 증가에도 남극깔따구의 생존율이 떨어지고 에너지 비축량이 부족해 이 남극 고유종의 발달과 번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남극반도는 10년에 0.56도씩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짝짓기 중인 남극깔따구 성체. 2년 삶에서 열흘 동안만 짝짓기하고 죽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남극깔따구는 50만년 전 다른 깔따구 조상과 고립돼 진화했으며 남극반도 끄트머리에만 서식한다. 남극의 여름이 오면 10일 안에 무리 지어 짝짓기하고 부동액을 듬뿍 뿌린 알을 낳고 죽는다.
데블린은 “남극깔따구의 월동을 실험실에서 흉내 낸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실험 준비를 끝내고 코로나19 봉쇄에 들어갔는데 돌아와 보니 실험이 잘 진행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Functional Ecology, DOI: 10.1111/1365-2435.1408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