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신무기인 초음파와 이에 대항해 나방이 진화시킨 방해전파의 군비경쟁은 수천만년 동안 계속됐다. 오른쪽은 교란 초음파를 내는 불나방의 일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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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숲 속에선 풀벌레와 소쩍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먹이를 찾는 박쥐의 초음파와 이에 대항한 수많은 나방의 경계 초음파가 하늘을 채우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방은 오랫동안 포식자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해 위장하고 날개에 가짜 눈을 달고 또는 독성이 있어 맛이 고약하다는 경계색을 내어 왔다. 그러나 이런 시각 교란책은 6500만년 전 등장한 청각을 이용하는 포식자 박쥐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박쥐는 돌고래처럼 초음파를 내쏘고 반사파를 통해 먹이의 위치를 파악한다(반향정위). 나방은 새로운 포식자에 대한 대항책을 다양하게 내놓았다. 예를 들어 긴꼬리산누에나방은 하늘거리는 긴 꼬리를 지녔는데 박쥐의 초음파를 교란해 치명적인 첫 공격으로부터 몸의 핵심부위를 지킨다(▶
나방 긴 꼬리로 반격 박쥐의 초음파 교란).
긴꼬리산누에나방의 긴 꼬리는 박쥐의 초음파를 교란해 몸의 핵심부위에 대한 첫 공격을 회피하도록 해 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수백만년 동안의 진화 끝에 마침내 나방 가운데 박쥐의 초음파를 듣는 종이 나타났다. 이들은 박쥐의 초음파를 듣는 즉시 나선을 그리며 곡예비행을 하거나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하는 회피 동작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앞선 무리는 방해 초음파를 발사하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독이 있어 못 먹는다는 경계 초음파를 내보내는가 하면 자신의 위치를 감추는 스텔스 초음파를 발사하기도 한다.
이런 전략이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박각시 과와 불나방과 그리고 자나방과의 한 종 등 일부 나방에게서만 관찰되는 드문 예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시 바버 미국 보이시 주립대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이 전 세계에서 박쥐의 초음파를 나방에게 들려주어 반응을 살핀 장기 연구에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나방이 경계 초음파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 주 저자의 한 명인 아키토 가와하라 미국 플로리다대 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박각시와 불나방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나방이 초음파를 내는데 우리는 그에 관해 거의 모른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박쥐의 초음파를 들려주었을 때 대항 초음파를 내는 나방. 파랑은 소리만 들려주었을 때, 주황은 손으로 만졌을 때 반응한 종이다. 길이 1㎝ 이상인 나방 252개 속 가운데 52개 속에서 경계 초음파가 관측됐다. 바버 외 (2022) PNAS 제공.
연구자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에콰도르, 프랑스령 가이아나, 아프리카 모잠비크 등에서 252개 속에 해당하는 나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1%인 52속의 나방이 대항 초음파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쥐의 먹잇감이 될 만 한 길이 1㎝ 이상의 나방은 세계에 10만 종이 있으니 약 2만 종의 대형 나방이 박쥐에 대항해 초음파를 낸다는 얘기다.
나방은 박쥐의 초음파 소리를 들려주거나 손으로 만졌을 때 ‘독이 있어 맛이 없다’는 경계 초음파를 냈다. 마치 독개구리나 산호뱀이 상대를 놀라게 하는 경계색을 내듯이 경계음을 내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박쥐는 나방을 잡아 꼬리의 막으로 감싼 뒤 입으로 가져가 먹는데 경계음을 들으면 놀라 버린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에콰도르 열대림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2주에 걸쳐 유인등에 몰려든 나방의 경계음을 모두 녹음한 뒤 인공지능의 기계학습 기능을 이용해 소리에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박쥐에 방해 초음파를 내는 박각시. 대형 나방으로 저녁 어스름 때 주로 활동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놀랍게도 하나의 독창적인 경계음 주변에 이를 모방한 다양한 경계음이 분포하는 양상이 여럿 나타났다. 주 저자인 바버 교수는 “중심의 독창적 경계음은 진짜 독성이 있는 나방이 내고 주변의 모방음은 실제로는 독성을 띠지 않는 다른 종의 나방이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에서 기록된 동물 10종 가운데 1종꼴로 나방과 나비가 많다”며 “이번 연구대로라면 나방과 나비는 지구에서 가장 큰 모방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초음파 경계음은 박쥐 회피에 뛰어난 효과를 거뒀음은 나방의 여러 분류군에서 이런 전략이 독립적으로 진화한 데서 알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나방은 그때마다 몸의 다른 부위를 발성 기관으로 활용했다. 가와하라는 “불나방은 진동막을 이용하는데 다른 나방은 날개나 배, 심지어 생식기를 변형해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방의 다양한 초음파 발성 기관. 어깨판(A∼D), 진동판(E∼H, I∼L), 배 비늘(M∼P), 변형 생식기(Q∼T). 바버 외 (2022) PNAS 제공.
이번 연구에서는 태극나방의 일종은 귀뚜라미처럼 겹치는 배 비늘을 문질러 소리를 냈고 명나방과의 한 종은 기타의 피크처럼 날 때 날개를 쳐 초음파를 내는 등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3가지 발성 기관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6월 15일 치에 실렸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1174851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