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피처 잔 모양 덫 덮는 뚜껑이 개미가 비 피하는 곳, 꽃꿀로 유인도 빗방울 충격 받아 아래로 휘어 개미 덫으로 내던져 통의 벽이 스프링 구실, 위로 향하는 뚜껑 멈추고 다음 사냥 대비 빗방울 에너지 이용해 사냥 유일한 식물, “빗방울·우박 에너지 회수에 응용”
동남아에 흔한 벌레잡이통풀 네펜테스 그라킬리스(Nepenthes gracilis)의 뚜껑은 단순히 단순히 사냥의 보조물이 아니라 빗방울 에너지를 이용하는 중요 도구이다. 울리케 바우어 제공.
열대성 소나기가 매일 규칙적으로 내리는 동남아 습지의 벌레잡이통풀 일부는 빗방울의 에너지를 이용해 사냥한다. 덫을 덮는 뚜껑 뒷면에 숨어 비를 피하던 개미는 뚜껑을 때리는 빗방울의 탄력으로 덫 속으로 내던져진다. 벌레잡이통풀의 뚜껑이 어떻게 ‘죽음의 발판’ 구실을 하는지 자세한 얼개가 밝혀졌다.
이제까지 동남아 보르네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습지에 흔한 벌레잡이통풀인 네펜테스 그라킬리스의 벌레 사냥은 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잎이 피처 잔처럼 길쭉하게 변형된 덫의 달콤한 꽃꿀에 이끌린 개미가 미끄러운 함정에 빠진 뒤 다시 헤어나지 못하고 덫 속에서 소화된다. 덫 위에 달린 뚜껑은 소화액이 빗물에 희석되지 않도록 보조적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2년 이 연구의 공동저자인 울리케 바우어 교수가 뚜껑이 안쪽에 붙은 개미를 빗방울을 이용해 덫으로 떨어뜨리는 적극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처음 밝힌 이후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다. 앤-크리스틴 렌츠 영국 브리스톨대 박사과정생 등 이 대학 연구진은 마이크로 컴퓨터단층촬영 기법을 이용해 이 식물의 벌레 사냥과정을 분석해 덫의 기하학적 구조를 이용해 빗방울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정교한 장치가 마련돼 있음을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다른 벌레잡이통풀이 꽃꿀을 대부분 함정 들머리에 분비해 곤충을 유인하는 데 비해 네펜테스 그라킬리스는 뚜껑 안쪽에서 분비한다. 비를 피해 또 향기에 끌린 개미는 뚜껑 뒷면에 자리 잡는다.
이때 빗방울이 뚜껑을 때려 아래로 휘청이면 그 충격에 중심을 잃은 개미는 통속으로 빠진다. 이제까지 뚜껑과 통의 연결부위가 스프링 구실을 해 개미를 털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놀랍게도 통 자체가 스프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펜테스 그라킬리스의 통발 구조(왼쪽)와 빗방울 충격의 전달 과정(오른쪽). 빗방울의 충돌 에너지가 통발의 뒤쪽 벽 중간 부위에 전달돼 뚜껑의 윗 방향 진동을 억제한다. 앤-크리스틴 렌츠, 울리케 바우어 (2022) ‘바이올로지 레터스’ 제공.
연구자들은 “빗방울의 충격으로 뚜껑이 내려가는 동시에 통 뒷면 중간의 얇은 부위가 휘는 변형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이것은 중요한 이유는 뚜껑이 아래로는 쉽게 휘지만 위로는 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통 벽의 스프링은 아래로 휜 반작용으로 위로 향하는 뚜껑을 멈춰 세우는 브레이크 구실을 해 재빨리 다음 사냥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결과적으로 통 벽의 스프링은 빗방울의 충격을 아래로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불필요한 진동을 억제하는 구실을 한다.
네펜테스 그라킬리스 자생지 모습. 울리케 바우어 제공.
주 연구자인 렌츠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이 식충식물의 덫은 가볍지만 아주 강인하다. 덫에 생긴 작은 형태 변화로 빗방울의 충격 에너지를 놀랍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식충식물은 외부 에너지만을 이용해 빠르게 움직여 사냥하는 유일한 식물”이라며 “적은 재료와 가벼운 무게이지만 최적의 기하학적 구조로 스프링 기능을 하는 식충식물의 덫을 빗방울이나 우박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기계장치를 고안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용 논문: Biology Letters, DOI: 10.1098/rsbl.2022.010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