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립에서 깨어난 어린 불사 해파리(메두사). 잡아먹히거나 병에 걸려 죽지 않는 한 ‘회춘’ 과정을 거듭해 생물학적으로 죽지 않는 생물이다. 마리아 파스쿠알-토르네르 제공.
늙어 병에 걸리거나 여건이 나쁠 때 ‘리셋’ 버튼을 눌러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그런 능력을 지닌 ‘불사 해파리’(투리톱시스 오르니이)의 유전체가 해독돼 노화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리아 파스쿠알-토르네르 스페인 오비에도대 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진은 30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불사 해파리가 ‘회춘’해 무성생식 단계의 폴립으로 돌아가는 데 관여하는 핵심 요인을 찾았다고 밝혔다.
젊음을 되찾은 불사 해파리 메두사 하나에서 많은 폴립이 생겨났다. 마리아 파스쿠알-토르네르 제공.
1880년대 지중해에서 처음 발견된 이 해파리는 다 자라면 길이 4.5㎜로 새끼손톱 크기이며 붉은 위장이 드러나 보이는 투명한 몸에 촉수 90개가 나 있다. 동물 플랑크톤이나 물고기 알 등을 포식하며 살다가 온도나 염도 등 환경이 악화하고 먹이가 없거나 상처를 입으면 몸을 녹여 폴립과 유생으로 돌아가는 역 변태 과정을 거친 뒤 새로운 삶의 과정을 시작한다.
불사 해파리의 생활사. 초록색 화살표는 일반적인 과정을 가리키고 푸른색 화살표는 역경에 닥쳐 ‘회춘’하는 경로를 가리킨다. 마리아 파스쿠알-토르네르 외 (2022) ‘PNAS’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불사 해파리와 같은 속으로 유전적으로는 가깝지만 불사 능력은 없는 해파리(투리톱시스 루브라)의 유전체를 해독해 무엇이 젊음을 되찾도록 하는지 비교 분석했다. 또 생활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유전적인 변화 과정을 규명했다.
그 결과 불사 해파리는 손상된 디엔에이(DNA)를 수선하고 보호하는 여벌의 유전자를 보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독특한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인간을 포함해 생물은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어 세포분열을 거듭하면서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진다.
불사 해파리와 같은 속으로 유전적으로는 가깝지만 불사 능력은 없는 해파리(투리톱시스 루브라). 토니 윌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또 젊어지는 변태 과정에서 전사 조절인자인 폴리콤 억제 복합체(PRC2)의 작동이 억제되고 대신 만능 분화능력 인자가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두 가지 인자를 통해 이미 생식능력을 지닌 전문화한 세포가 단성생식 단계인 폴립으로 돌아간 뒤 새롭게 전문화한 세포로 태어날 수 있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번 연구는 노화 관련 질병이나 재생의학 연구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파스쿠알-토르네르는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해독한 해파리의 유전체는 사람의 노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다음 단계는 이런 변형 유전자를 생쥐나 사람에서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사 해파리가 자연계에서 얼마나 오래 사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성체가 폴립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매우 빠르고 그에 해당하는 조건을 찾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불사 해파리의 생활사 단계별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구보타 신 일본 교토대 박사는 1990년대에 이 해파리를 사육하는 실험을 통해 짧게는 한 달 간격으로 2년 동안 10번 성체가 폴립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자연 상태에서 대부분의 불사 해파리는 젊음을 되찾는 과정을 거치기 전에 포식자에 잡아먹히거나 질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외래종으로서 끈질긴 생명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불사 해파리는 선박 평형수를 통해 세계로 퍼지는 침입종이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DOI: 10.1073/pnas.21187631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