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의 일종인 베록스시파카 무리가 주변보다 시원한 나무를 껴안아 열을 방출하고 있다. 클로이 첸=크라우스 외 (2022) ‘국제 영장류학 저널’ 제공.
사람처럼 땀을 흘릴 수 없는 대부분의 동물은 열을 식히기 위해 몸에 침을 바른다. 침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식자를 피해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동물은 나뭇잎에서 어렵게 흡수한 수분을 그렇게 낭비할 수 없다. 대신 비교적 시원한 나무 밑동을 껴안아 열을 식히는 행동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클로이 첸-크라우스 미국 예일대 박사과정생 등 국제 연구진은 마다가스카르 남부 베자 마하팔리 특별보호구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의 일종인 베록스시파카가 더운 날 나무 밑동을 껴안는 방식으로 열을 식히는 사실을 현장 연구로 확인했다고 ‘국제 영장류학 저널’ 최근호에 보고했다. 벌목을 막기 위해 환경운동가들이 벌이는 ‘트리 허깅’이 일부 동물에겐 생존수단인 셈이다.
베록스시파카는 거의 전적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영장류이며 나뭇잎을 주식으로 삼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몸무게 3.4㎏으로 중형인 이 시파카는 나뭇잎이 주식이어서 거의 전적으로 나무 위에서 살아간다. 나무 위에선 9∼10m를 어렵지 않게 건너뛰지만, 땅에 내려오면 두 손을 들고 어색하게 두 발로 깡충거리며 뛴다. 땅에서 포식자를 만날 위험도 커진다.
그러나 더위가 심한 날 시파카들은 무리를 지어 또는 홀로 나무 밑으로 내려와 밑동을 끌어안는 행동이 종종 목격됐다. 연구자들은 이 시파카 6개 무리의 움직임을 600시간 넘게 촬영했는데 이런 행동을 20마리에서 64회 관찰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시파카들은 기온이 30도가 넘을 때만 나무 껴안는 행동을 했는데 기온이 높을수록 이런 행동이 자주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온이 30도가 넘으면 1도 높아질 때마다 나무 끌어안기 빈도가 2배로 늘었다.
나무 끌어안기 행동은 홀로 또는 무리가 했는데 더 시원한 나무를 선호했다. 클로이 첸=크라우스 외 (2022) ‘국제 영장류학 저널’ 제공.
놀랍게도 나무 밑동은 주변보다 훨씬 시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이 측정한 밑동의 표면 온도는 주변 공기 온도보다 평균 4도 낮았다. 시파카가 선호하는 나무가 따로 있었는데, 단향목의 일종은 주변보다 6.7도나 낮았다. 밑동이 시원한 나무도 꼭대기로 올라가면 주변 기온과 비슷하게 달궈졌다.
이번 연구는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위급’ 종으로 분류한 베록스시파카 보전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연구자들은 내다봤다. “여우원숭이가 나무 껴안기로 열을 조절한다는 이번 연구는 코알라에서 드러난 비슷한 행동과 함께 나무가 열 스트레스에 직면한 포유류에 폭넓은 도움을 준다는 걸 알려 준다”고 논문은 적었다. 마다가스카르 남서부의 평균기온은 2055까지 1.5~2.5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유칼립투스 나무 위의 코알라. 나무의 온도는 주변보다 5도 낮았다. 스티브 그리피스, ‘바이올로지 레터스’ 제공.
오스트레일리아의 멸종위기종 코알라도 나무를 안는 행동으로 열을 식힌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마이클 커니 멜버른대 생태학자 등은 2014년 6월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 지역 코알라가 주변보다 최고 5도 낮은 나무줄기를 안으면서 열을 방출한다고 밝혔다.
거의 전적으로 나무 위에서 사는 코알라는 헐떡이거나 침을 바르는 대신 시원한 나무를 끌어안으면서 수분 손실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주식인 유칼립투스 대신 잎을 먹지 않는 아카시아에 오르는 이유도 더 시원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밝혔다.
인용 논문:
International Journal of Primatology, DOI: 10.1007/s10764-022-00328-5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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