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조개껍데기 집을 지키기 위해 경쟁자 수컷을 향해 큰 입을 벌리는 비늘베도라치의 일종(Neoclinus blanchardi). 왓챠라퐁 홍잠랏실프 제공.
북미 태평양 연안에 서식하는 비늘베도라치 과의 바닷물고기는 자기 몸의 3배에 이르는 거대한 입을 벌리고 대결을 벌이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이 베도라치의 큰 입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밝혀졌다.
왓챠라퐁 홍잠랏실프 태국 출라롱코른대 박사 등은 과학저널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거대한 입이 진화한 특별한 기능이 있다”며 “잠수 관찰과 연구실 실험을 통해 이 행동은 짝짓기나 다른 종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종의 수컷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다 자라면 30㎝에 이르는 입 큰 베도라치는 툭 튀어나온 눈과 붉은 바탕에 형광 테두리를 두른 입이 눈길을 끄는 화려한 물고기이다. 바다 밑바닥의 빈 조개껍데기나 바위틈에 마련한 집을 지키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버려진 플라스틱 튜브 집에서 머리만 내밀고 주위를 감시하는 비늘베도라치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집이 중요한 까닭은 암컷이 마음에 드는 수컷의 집에 낳을 낳기 때문이다. 수컷은 알을 수정시킨 뒤 부화할 때까지 지키면서 산소를 불어 넣고 오물을 제거한다.
집이 없으면 짝짓기도 자손을 남기지 못하기 때문에 집을 둘러싼 경쟁은 치열하다. 이 베도라치는 조개껍데기뿐 아니라 버려진 플라스틱 튜브나 유리병에 숨은 채 머리만 내놓고 문어나 다른 종의 물고기가 둥지에 접근하면 쫓아낸다.
입을 있는 대로 벌린 비늘베도라치의 일종. 형광 테두리와 한가운데 날카로운 이가 눈길을 끈다. 왓챠라퐁 홍잠랏실프 제공.
그렇다면 베도라치의 화려하고 큰 입은 공작의 장대한 꽁지깃처럼 짝짓기용 과시물일까. 연구자들은 관찰 결과 뜻밖에 암컷을 만난 수컷은 크고 멋진 입을 벌리는 대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다른 행동을 했다.
연구자들은 이 베도라치 수컷 15마리를 포획한 뒤 수조에 조개껍데기 하나에 수컷 2마리를 넣어 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70%의 상황에서 전면적인 입 벌리기 대결이 벌어졌다.
상대가 접근하면 입을 벌려 머리를 덮을 정도로 거대한 역삼각형 막을 펼친다. 막 테두리는 형광빛 띠가 둘러 있고 한가운데는 일련의 날카로운 앞니가 두드러진다. 싸움은 대개 덩치가 크고 따라서 입도 큰 수컷의 판정승으로 끝나지만 종종 상대를 물어뜯는 격렬한 싸움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이 베도라치의 큰 입과 화려한 색깔은 수컷의 크기와 건강 상태를 알려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물리적 충돌을 막는 효과를 거둔다”고 밝혔다. 애초 무기로 진화한 베도라치의 입이 불필요한 싸움을 예방하는 신호장치로 변신한 셈이다.
인용 논문:
Ecology, DOI: 10.1002/ecy.38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