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잿빛 늑대와 북미에 많은 검은 늑대가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추격 놀이를 즐기고 있다. 검은 늑대는 개홍역 바이러스에 저항력에 크다. 다니엘 스탈러,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제공.
털 빛깔이 새까만 늑대는 위장도 어렵고 번식력도 떨어진다. 그런데 북미 아종 늑대에서는 검은 늑대가 흔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선 그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
북미에 검은 늑대가 많은 오랜 수수께끼가 풀렸다. 놀랍게도 개홍역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수천 년 전 개와 교잡해 그 형질을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옥스퍼드대, 옐로스톤 국립공원,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의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팀 콜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검은 늑대는 없거나 매우 드물지만 북미에선 어느 곳에선 흔하고 다른 곳에선 아예 없기도 하다”며 “북미 전역에 걸친 조사와 모델링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은 늑대 비율은 캐나다 북극에서 드물지만 로키산맥을 따라 미국과 멕시코 쪽으로 남하하면서 커진다.
이 연구 주저자인 사라 큐벤 프랑스 몽펠리에대 진화생물학자는 2011년 늑대의 면역체계와 관련이 있는 CBD103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털빛이 검게 바뀌는데, 변이가 하나인 검은 늑대는 일반적인 회색늑대는 물론 변이가 2개인 검은 늑대보다 개홍역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북미 전역의 늑대 12개 무리를 분석해 개홍역 항체와 검은 털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개홍역에 걸렸다 살아남아 항체를 획득한 늑대일수록 검은 늑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개홍역이 만연한 곳일수록 검은 늑대가 많은 사실도 드러났다.
하울링을 위해 모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드루이드 피크 무리. 절반이 검은색이다. 다니엘 스탈러,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제공.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곳이 1990년대 말 늑대를 복원한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20여년 동안의 조사자료가 쌓여있다. 개홍역이 번성했을 때 검은 늑대의 비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기록돼 있는데, 검은 늑대일수록 회색 늑대보다 감염병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컴퓨터 모의 결과 감염병이 퍼졌을 때 검은 늑대는 다른 색깔인 회색 늑대와 짝짓기함으로써 검은 빛깔의 새끼가 태어날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늑대 집단은 개홍역이 없을 때는 회색이 많다가 5∼10년마다 감염병이 퍼지면 검은색이 많아지는 식으로 질병에 대항해 장기적인 색깔의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검은 늑대가 1500∼7000년 전 북미 원주민이 데려온 개와 교잡해 검은 형질을 획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는 수천 년 뒤 이번에는 개홍역 바이러스를 늑대에 전파했다. 약을 먼저 주고 병을 준 셈이다.
회색 늑대와 검은 늑대의 교미 모습. 서로 다른 색깔끼리 짝짓기하는 쪽이 같은 색 짝보다 개홍역 저항성 유전자를 하나 지닌 검은 늑대를 낳을 확률이 높다. 다니엘 스탈러,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제공.
북미에 개홍역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00년대로, 유럽인이 북미에 들여온 홍역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개를 감염시켰다. 늑대는 먹이를 나누고 서로 핥는 사회성이 강한 무리 동물이어서 개홍역이 급속히 퍼지며 치명률은 50%에 이른다.
연구에 참여한 피터 허드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번 연구로 질병은 동물집단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진화의 동력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곤충, 양서류, 조류, 포유류에서도 늑대와 비슷하게 몸 색깔과 질병 저항의 관계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i874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