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핏줄까지 투명하게…유리개구리 완벽한 은신술, 간 때문이다

등록 2022-12-23 10:29수정 2022-12-23 16:39

[애니멀피플]
중남미 유리개구리, 잠잘 때 적혈구 90% 간에 저장
적혈구 뭉쳐도 엉기지 않아…새로운 혈액 응고 방지제 개발 기대
쉬고 싶거나 잠적하고 싶을 때마다 동면 비슷한 상태 빠지는 셈
큰 나뭇잎 뒤에 거꾸로 매달려 잠에 빠진 유리개구리의 일종. 혈관마저 보이지 않아 주변 초록색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간다. 제시 딜리아 제공.
큰 나뭇잎 뒤에 거꾸로 매달려 잠에 빠진 유리개구리의 일종. 혈관마저 보이지 않아 주변 초록색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간다. 제시 딜리아 제공.

투명한 몸은 완벽한 위장술이다. 복잡하게 주변 무늬와 색에 녹아들 필요 없이 어디서도 안 보인다.

그러나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를 나르는 혈액을 어떻게 감출 것인가.

중남미 열대림에 사는 유리개구리가 기막힌 해결책을 진화시켰다. 밤새 활동하고 낮에 자는 이 청개구리는 잠자는 동안 적혈구 대부분을 간 속에 보관해 ‘시스루’ 위장을 완성한다. 유리개구리의 이런 생리적 적응은 사람의 혈액 응고 방지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나뭇잎 밑에 거꾸로 매달려 자는 유리개구리는 거의 투명한 상태다. 제시 딜리아 제공.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나뭇잎 밑에 거꾸로 매달려 자는 유리개구리는 거의 투명한 상태다. 제시 딜리아 제공.

카를로스 타보아다 미국 듀크대 박사후연구원 등은 2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유리개구리가 간 속에 적혈구를 숨겨 투명성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중남미 열대림에서 다양한 유리개구리를 채집하면서 개구리가 투명해질 때마다 혈관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이번 연구에 나섰다고 밝혔다.

타보아다 박사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유리개구리가 쉴 때는 근육과 피부가 차츰 투명해져 뼈, 눈, 내부 장기가 들여다보인다”며 “특히 큰 나뭇잎 밑에 거꾸로 매달려 잘 때는 몸이 완전히 투명해져 주변 식물의 색깔과 완벽하게 섞여든다”고 말했다.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위장술은 숨을 곳을 찾기 힘든 바다 표면에 사는 해파리, 문어, 물고기 등에 많다. 그러나 육상동물에는 매우 드물다.

잠잘 때 유리개구리(왼쪽)의 투명도는 활동 중(오른쪽)일 때보다 2∼3배 커진다. 혈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시 딜리아 제공.
잠잘 때 유리개구리(왼쪽)의 투명도는 활동 중(오른쪽)일 때보다 2∼3배 커진다. 혈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시 딜리아 제공.

연구자들은 그 이유의 하나가 적혈구를 숨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산소가 풍부한 적혈구 세포는 초록빛을 흡수해 붉은빛을 내는데 이것이 육지의 초록 배경에서 도드라지게 보인다.

문제는 유리개구리의 혈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공동 연구자인 제시 딜리아 미국 자연사박물관 박사는 “유리개구리가 깨어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또는 마취했을 때도 혈관은 적혈구로 가득 차 있어 불투명하다”며 “투명한 상태를 연구하려면 개구리가 푹 잠들어야 하는데 실험실에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음향 현미경 기법을 이용해 촬영한 잠 잘 때(왼쪽)의 유리개구리 혈관과 마취 상태 비교. 야오 준지에 제공.
광음향 현미경 기법을 이용해 촬영한 잠 잘 때(왼쪽)의 유리개구리 혈관과 마취 상태 비교. 야오 준지에 제공.

연구자들은 조영제 투입 같은 절차 없이 살아있는 개구리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아보는 광음향 현미경(PAM)이란 첨단 영상장치를 활용했다. 생체 조직에 레이저 빔을 쏜 뒤 이를 흡수한 분자가 내는 초음파를 이용해 정교한 영상을 얻는 방법이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잠잘 때 개구리의 간은 혈액 속 적혈구의 89%를 보관했고 적혈구가 없는 혈관의 투명도는 2∼3배 커졌다.

나뭇잎 뒤에 무리 지어 잠자는 유리개구리. 제시 딜리아 제공.
나뭇잎 뒤에 무리 지어 잠자는 유리개구리. 제시 딜리아 제공.

연구에 참여한 젠케 존슨 듀크대 교수는 “유리개구리는 통상 쉬고 싶거나 포식자에게 취약할 때 투명해지는데, 혈관 속의 적혈구를 거의 모두 걸러 거울로 코팅된 간에 숨겨 놓는다”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적혈구가 모이는데 어쩐 일인지 엉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리개구리가 혈관이 막히거나 대사이상을 일으키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내는지는 후속 연구과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적혈구 농도가 높아져 엉겨 피떡이 형성되면 사람에게 치명적인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킨다.

유리개구리의 일종. 보통은 반투명 상태다. 마우리시오 리베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리개구리의 일종. 보통은 반투명 상태다. 마우리시오 리베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리개구리가 적혈구를 대부분 간에 모아두고 어떻게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는지도 수수께끼다. 연구자들은 “투명 상태에서 전체 헤모글로빈의 3.4%만이 산소와 결합해 있다”며 “이는 유리개구리가 대사활동을 낮추었음을 가리킨다”고 논문에 적었다. 유리개구리가 완벽한 위장을 위해 수시로 동면 비슷한 상태에 빠지는 셈이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l662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가는 곳마다 제각각’ 동물병원 진료비…5일부터 사전고지 의무화 1.

‘가는 곳마다 제각각’ 동물병원 진료비…5일부터 사전고지 의무화

‘남극 신사’ 펭귄은 왜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거죠? 2.

‘남극 신사’ 펭귄은 왜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거죠?

삽입 없이 53분간 ‘접촉’…문둥이박쥐의 독특한 짝짓기 3.

삽입 없이 53분간 ‘접촉’…문둥이박쥐의 독특한 짝짓기

얼굴도 못 긁는 티라노의 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4.

얼굴도 못 긁는 티라노의 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체조 신’ 다람쥐의 과학적 점프, 비밀 알아냈다 5.

‘체조 신’ 다람쥐의 과학적 점프, 비밀 알아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