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한 종이 건너와 섬마다 독특한 15가지 아종으로 진화한 갈라파고스땅거북.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2개 아종이 멸종했고 나머지도 모두 멸종위기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비글호를 탄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플로레아나 섬을 방문한 것은 1835년이었다. 갓 독립한 에콰도르 정부가 보낸 정치범 200여 명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다윈이 갈라파고스땅거북에 관해 묻자 “숲에 야생화한 돼지와 염소가 많지만 동물성 식품은 거북 고기로 충당한다”며 “많이 줄었지만 이틀 잡으면 한 주일은 먹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다윈 방문 20년 뒤 이 섬의 거북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갈라파고스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인부들이 거북을 잡아오는 모습을 그린 1849년 스케치. 사일러 콘래드 외 (2022)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갈라파고스에는 320만년 전 남미에서 건너온 대형 육지 거북 한 종이 고립돼 섬마다 고유한 형태로 진화한 15개 아종이 산다. 플로레아나의 거북은 멸종한 2개 아종 가운데 하나다.
이제까지 플로레아나 거북이 멸종한 이유는 해적, 포경선원, 죄수 이주민이 20세기 동안 계속한 남획과 이들이 데려온 쥐, 염소, 개 등에 의한 포식과 서식지 파괴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당시의 생태를 알아본 결과 거북의 주요 먹이 식물이던 선인장이 사라지고 다른 식물로 바뀐 것으로 밝혀졌다. 마지막 거북은 식탁에 오르기 전 상당 기간 굶주렸음을 가리킨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주식인 부채선인장. 주요 수분 공급원이기도 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일러 콘래드 미국 뉴멕시코대 인류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갈라파고스땅거북 10개 아종 57개체의 박물관 표본을 대상으로 안정 동위원소 성분 변화를 조사해 “사람이 식생에 끼친 영향이 플로레아나 거북의 멸종을 이끌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고기나 기름을 얻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적 박물관들이 앞다퉈 수집을 위해 포획에 나선 것이 갈라파고스땅거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런 직접 이용을 제외한다면 사람이 도입한 동물과 식물, 농업과 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한 경관 변화가 거북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구체적으로 염소, 당나귀, 소, 돼지, 쥐, 개 등이 유입됐는데 이들이 거북의 새끼나 알을 먹거나 먹이를 가로챘다. 19∼20세기 동안 사람이 들여온 외래식물은 거북 서식지를 덮고 덤불이 우거져 거북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멸종한 플로레아나 거북의 등딱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700년대부터 포경선이 드나들고 1800년대 초부터 거주가 시작된 플로레아나 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섬의 식생이 극적으로 바뀐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이 섬에는 건조 환경에 적응해 애초에는 부채선인장 같은 식물이 대다수였으나 염소 등 침입종이 뜯어먹은 결과 관목과 덤불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1833년 수집한 거북 표본에서 식생의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밝혔다. 플로레아나 거북은 1850년대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마지막 개체인 ‘외로운 조지’가 죽어 핀타 섬의 아종이 멸종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멸종한 플로레아나 거북은 최근 분자유전학의 도움으로 반전을 맞았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2012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이사벨라 섬의 울프 화산에서 플로레아나 거북의 유전자를 지닌 잡종 거북 80여 개체를 발견했다.
포경선이 플로레아나 거북을 저장 식품으로 배에 싣고 가다 더 크고 좋은 울프 화산의 거북으로 대체하면서 내다 버려 이런 일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갈라파고스 보전 당국은 2015년 잡종 거북 20마리를 증식센터에 모아 플로레아나 거북의 형질을 많이 지닌 개체를 골라내는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어른 예닐곱 명이 겨우 들 정도로 큰 갈라파고스땅거북은 대형 초식동물이 없던 섬에서 생태계의 빈 자리를 차지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갈라파고스땅거북은 16세기에 25만 마리에 이르렀으나 1970년대 1만5000마리로 줄었고 보호와 증식 사업 결과 현재 2만 마리에 육박하지만 모든 아종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이 거북은 애초 갈라파고스에 없는 대형 초식동물 노릇을 한다. 무게 400㎏ 이상으로 자라며 수명은 야생에서 100년 사육시설에선 170년 이상 살기도 한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2-26631-y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