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알래스카 등 북미 침엽수림에 사는 아메리카붉은다람쥐. 기회를 놓치는 타격이 너무 커 다걸기하는 번식전략을 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치솟는 집값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다’며 영끌에 나서던 이들은 집값이 계속 오르리란 희망에 다걸기 했다. 북미에 서식하는 붉은다람쥐도 비슷한 번식전략을 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거리를 하는 침엽수의 솔방울에 기대어 사는 이 다람쥐는 풍년이 올 것이란 조그만 단서라도 나오면 새끼를 2배 가까이 많이 낳는 도박을 감행한다. 기회를 못 잡으면 평생 만회하기 힘들기 때문에 희망적인 단서에 다 건다.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널리 서식하는 붉은다람쥐. 캐나다 유콘에서 이들에 추적장치를 부착해 30여년 동안 장기연구했다. 벤 단처 제공.
로렌 페트룰로 미국 미시건대 박사후연구원 등 미국과 캐나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캐나다 유콘의 야생 아메리카붉은다람쥐 암컷 1000여 마리를 대상으로 30여년 동안 생활사와 번식행태를 관찰해 이런 번식전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단기간에는 실수로 타격을 입겠지만 평생에 걸친 번식 성공률은 도박을 거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페트룰로 박사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번 연구를 하게 된 동기로 “일부 암컷 다람쥐가 먹이가 충분치 못해 겨울을 넘기기 힘들 텐데도 많은 새끼를 낳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니카가문비의 솔방울 씨앗에는 지방이 풍부해 다람쥐가 겨울을 나는 소중한 식량이지만 해거리를 해 4∼7년에 한 번만 넉넉하게 맛볼 수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널리 분포하는 코니카가문비의 솔방울은 지방이 풍부해 붉은다람쥐가 땅속에 비축해 두고 겨울을 나는 요긴한 식량이다. 문제는 이 침엽수가 해거리를 해 4∼7년에 한 번씩 열매가 많이 달릴 뿐 나머지 기간에는 아예 열매가 달리지 않거나 극소수가 열린다.
열매가 조금 달린 해에 새끼를 많이 낳으면 겨울에 굶어 죽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열매가 널렸는데 새끼를 조금 낳는다면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전략은 실패한다.
게다가 다람쥐의 수명은 3년 남짓이어서 평생 풍년을 한 번도 맞지 못하는 개체가 전체 암컷의 54.2%에 이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영끌하는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람쥐는 어떤 전략을 펴는 게 가장 유리할까.
모니터링 중인 붉은다람쥐 새끼. 평소에는 한배에 3마리를 낳지만 풍년이 예상될 때는 5마리를 낳는다. 벤 단처 제공.
장기 모니터링 결과 암컷 다람쥐의 53.4%가 풍년이 올 것이란 단서에 반응해 평소 3마리 낳던 새끼를 5마리로 늘렸다. 그러나 23.4%는 풍년에도 새끼를 적게 낳았다. 흥미롭게도 풍년의 단서가 없는데도 26.7%는 새끼를 대폭 늘려 낳았다.
가문비나무는 열매를 많이 여는 해에 식물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오고 다람쥐가 이를 단서로 열매가 열리기 몇 달 전에 새끼 수를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다람쥐는 “(풍년이 올 것이란) 환경 단서를 과대평가하는 편향을 보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 비밀은 평생 얼마나 많은 새끼를 낳는지를 가리키는 번식 성공률에 숨어있다.
풍년에 맞춰 다산한 암컷의 평생 번식 성공률은 12.5%가 늘어나는데 견줘 기회를 놓치고 적게 낳은 암컷의 성공률은 30%가 준다.
결국 풍년을 놓친 다람쥐가 만회하려면 실패 이후 3번의 풍년을 맞춰야 하는데 수명이 3∼4년인 다람쥐에게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페트룰로 박사는 “풍년에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한 손실을 만회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걸기를 하는 것”이라며 “흉년에 많이 낳으면 단기적으로 타격을 받지만 풍년을 만나면 회복한다”고 말했다.
다람쥐가 어떻게 코니카가문비(사진)의 해거리를 예측하는지는 수수께끼다. 나무가 분비하는 식물호르몬을 다람쥐가 섭취해 생리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다람쥐가 어떻게 솔방울 풍흉을 예측하는지 정확히 밝히는 것은 추가 연구과제이다. 주 저자의 하나인 벤 단처 미시건대 교수는 “아마도 다람쥐가 가문비나무의 일부를 갉아먹으면 다람쥐에 생리변화가 일어나 새끼 수가 달라지는 것 같다”며 “이것은 다람쥐가 나무를 엿듣는다는 건데 내용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다람쥐가 얻는 단서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텐데 번식전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관심거리”라고 덧붙였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n0665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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