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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웜뱃은 어떻게 정육면체 똥을 누는 걸까

등록 2023-02-23 12:05수정 2023-02-23 18:51

[애니멀피플]
호주 건조지역 서식, 창자에서 마지막 수분까지 흡수
홈 패인 창자 하루 4만 번 수축운동, 4각형으로 성형
정육면체로 잘리는 과정은 용암 식어 주상절리 형성과 유사
웜뱃의 정육면체 똥. 길이 2㎝로 이런 똥을 하루 100개 가까이 눈다. 데이비드 후, 스콧 카버 제공.
웜뱃의 정육면체 똥. 길이 2㎝로 이런 똥을 하루 100개 가까이 눈다. 데이비드 후, 스콧 카버 제공.

토끼는 콩자반 같은 똥을 누고 소는 펑퍼짐한 무더기를 내보낸다. 동물들은 먹는 것과 소화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른 형태의 배설물을 내놓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유대류인 웜뱃 같은 똥을 누는 동물은 없다. 조약돌 같은 배설물을 내놓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주사위처럼 각진 정육면체 꼴이다.

웜뱃의 똥이 특별하게 생겼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진 건 최근 일이다. 2018년 패트리샤 양 미국 조지아공대 박사 등 국제연구진은 웜뱃을 해부해 이 배설물이 항문이 사각형이어서가 아니라 큰창자에서 그런 꼴로 만들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미국물리학회 연차총회에서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성과로 그해 이그노벨상을 받았는데, 이 상은 ‘먼저 웃고 나서 생각하게 하는 뛰어난 발견’에 준다. 양 박사는 미국물리학회 보도자료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정육면체를 만드는 방법을 주조하거나 자르는 두 가지밖에 몰랐는데 이제 제3의 방법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호주에 사는 유대류인 웜뱃.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호주에 사는 유대류인 웜뱃.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웜뱃은 호주에 사는 길이 1m인 초식동물로 작지만 통통하고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 건조한 지역에 살기 때문에 창자는 10m에 이르며 사람보다 4배나 천천히 소화한다. 먹은 식물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까지 흡수한다.

이런 생태 조건이 정육면체 배설물과 관련이 있을까. 물을 충분히 공급하는 동물원에서 웜뱃의 똥이 각이 흐트러지는 데서 건조와 관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왜 그런지를 밝히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연구진은 구성원을 바꿔가며 연구를 이어갔다. 2021년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소프트 매터’에 실린 논문에서 웜뱃이 창자 안에서 어떻게 정육면체 꼴을 성형하는지 밝혔다.

돼지의 창자가 균일한 구조여서 원통형 배설물을 만든다면 웜뱃의 것은 단면이 불규칙했다. 창자를 따라 2개의 긴 홈이 나 있는데 이 부분은 얇아 잘 늘어나 느슨했지만 두꺼운 부분은 단단했다.

웜뱃의 4만번 수축운동을 하는데 이런 이질적인 근육과 조직 때문에 4각형 단면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4각 기둥 형태의 창자 내용물이 어떻게 균일한 길이로 잘려 정육면체가 되는 걸까.

웜뱃의 정육면체 똥은 용암이 식어 주상절리가 형성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자이언트 코스웨이 주상절리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웜뱃의 정육면체 똥은 용암이 식어 주상절리가 형성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자이언트 코스웨이 주상절리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소프트 매터’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문제를 기발하게 해결했다. 용암이 땅속에서 서서히 굳어 육각 기둥의 주상절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었다.

창자 속 내용물은 수분이 흡수되고 체온에 더워지면서 서서히 건조된다. 이 과정에서 용암이 식어 수축하면서 균일한 금이 가 주상절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창자 내용물도 균일한 크기로 금이 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옥수수 녹말에 백열등을 쪼여 말리면서 실험했다. 그 결과 창자 내 건조에 따라 규칙적으로 금이 가 정육면체의 배설물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창자 내용물의 수분 농도가 70% 이하면 금이 가기 시작해 배설물이 원통형에서 펠릿 형태로 바뀐다”며 “웜뱃 배설물의 수분 함량은 65%로 사람 75%나 소 85∼90%보다 훨씬 적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정육면체여서 잘 굴러가지 않는 웜뱃의 똥은 영역과 개체의 표시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 스콧 카버 제공.
정육면체여서 잘 굴러가지 않는 웜뱃의 똥은 영역과 개체의 표시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 스콧 카버 제공.

웜뱃은 한 변의 길이가 2㎝인 똥을 한 번에 4∼6개씩 하루에 100개 가까이 영역 경계선 부근의 바위 나무 둥치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눈다. 과학자들은 배설물의 육면체 꼴이어서 원통형에 견줘 굴러 흩어지지 않는 장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배설물은 시력이 좋지 않은 웜뱃의 소통수단일 가능성도 있다.

이 연구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기초연구이지만 의학과 제조업에 응용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용 논문: Soft Matter, DOI: 10.1039/D2SM00359G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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