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 일대에서 번식하는 분홍발기러기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1000㎞나 떨어진 새로운 이동 경로와 번식지를 찾은 것으로 밝혀졌다. 요안 피터 키엘드슨 제공.
온난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북극 지역에서 철새들이 신속하게 새로운 번식지를 찾아 새로운 이동 경로를 개척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예스터 메슨 덴마크 오르후스대 교수 등 국제연구진은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번식하던 분홍발기러기 집단이 지난 20년 사이 약 1000㎞ 떨어진 러시아 노바야제믈랴 제도로 번식지와 이동 경로를 바꾸고 있음을 새에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북극해에 있는 노바야제믈랴 섬은 이제까지 너무 추워 철새의 번식지로 쓰이지 않던 곳으로 소련과 러시아의 주요 핵실험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메슨 교수팀은 분홍발기러기 스발바르 집단을 35년 이상 연구해 왔는데 1990년대부터 월동지인 덴마크에서 노르웨이를 통하지 않고 동쪽인 스웨덴과 핀란드를 거치는 기러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18∼2019년에 걸쳐 연구자들은 핀란드 오울루에서 기러기 21마리에 위성추적 표지를 붙였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최근 20년 새 일어난 분홍발기러기의 이동 경로와 번식지 변화. 예스터 메슨 외 (2023)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메슨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표지를 붙인 기러기의 절반이 러시아 노바야제믈랴 북동부로 날아가 깜짝 놀랐다”며 “위성정보를 분석해 기러기들이 새로운 경로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번식한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새로운 새 집단이 형성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며 “10∼15년이란 짧은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노바야제믈랴의 분홍발기러기는 약 4000마리에 이른다.
남한 면적과 비슷한 노바야제믈랴는 1961년부터 1990년대까지 260여 차례의 핵실험이 벌어진 곳이다. 민감한 군사시설이어서 러시아의 생물학자도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지만 위성추적 방식으로 새로운 철새 서식지가 조성됐음이 드러났다.
북극해에 있는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모습. 급속히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핵실험장의 하나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기후변화로 러시아 북극해 지역이 더워져 번식 요건이 갖춰진 것 말고도 기존 스발바르 집단의 이동 경로에서 발생한 어려움도 이런 변화를 부추긴 것으로 보았다. 서식지를 넓힌 흰뺨기러기와의 경유지 먹이 경쟁과 농경지 변화도 심해졌다.
그렇다면 분홍발기러기는 어떻게 러시아의 새 서식지를 찾았을까. 연구자들은 가까운 종 사이의 문화적 전파가 원동력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큰기러기는 해마다 늦은 봄 털갈이를 하러 노바야제믈랴로 날아가는데 분홍발기러기 일부가 이들을 따라간 게 아닌가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논문은 “흔히 어린 새는 나이 든 새로부터 이동 경로의 변화 등을 배우는데, 이번 사례는 가까운 종으로부터도 이런 정보가 문화적으로 전파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적었다.
연구자들은 “기러기들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변화하는 지구에 적응한 이번 사례는 사회적 학습의 중요성을 가리킨다”며 “새뿐 아니라 발굽 동물이나 늑대, 고래 등 사회적 동물도 새로운 이동 경로를 서로 배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종을 건너뛰는 사회적 학습은 급속한 기후변화에 노출된 극지 동물에게 생태적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적어도 단기간에 일부 부정적 영향을 회피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집단이주가 불과 수 세대에 걸쳐 일어나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라고 밝혔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3.01.065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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