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미국 워싱턴의 동물원에서 촬영된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태즈메이니아호랑이라고도 불리는 이 동물은 20세기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까지도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지난 세기 멸종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이하 주머니늑대)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전부 분석해봤더니, 태즈메이니아섬에 고립됐던 1만년에서 1만3천여년 전에 이미 유전적인 다양성을 잃어 장기적 생존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앤드류 파스크 호주 멜버른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등의 연구진이 106년 전에 수집된 어린 주머니늑대 디엔에이를 분석해 지난 11일 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멸종된 야생동물 가운데 최초로 디엔에이를 전부 분석해낸 것이라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108년 동안 알코올에 담겨 보존된 생후 1개월 정도의 어린 주머니늑대의 조직을 떼어내 디엔에이를 채취하고 그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유럽 정착자들이 도착해 주머니늑대를 남획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미 이들은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질병에 취약하고 개체 수도 감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멸종위기 나락에 떨어진 원인은 뭘까?
학계에서는 주머니늑대의 유전적 다양성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주머니늑대가 태즈메이니아섬에 고립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의 연구 결과로 주머니늑대가 섬에 고립되기 훨씬 이전인 7만년에서 12만년 전부터 개체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아마 당시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지구가 점점 추워지면서 이들의 서식 범위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약 5만년 전에 현생인류가 호주 대륙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주머니늑대 개체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머니늑대는 호주에서 현대까지 살던 가장 큰 육식동물이며, 주머니늑대과에 속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중형 개와 비슷한 크기와 생김새인데, 배에는 캥거루처럼 어린 새끼를 넣어 키우는 주머니가 있다. 몸의 뒷부분에 세로 줄무늬가 있어 ‘태즈메이니아호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들은 호주 대륙 전체에 광범위하게 서식했다. 마지막 빙기가 끝날 무렵인 약 1만4천년 전에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태즈메이니아섬이 호주 본토에서 분리되자 이 섬에서 살던 주머니늑대들은 고립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호주 본토의 주머니늑대들은 3천년 전쯤 멸종했다.
(a) 멸종된 주머니늑대의 모습 (b) 호주에 서식하는 딩고 (c) 에탄올 용액에 담겨 보전된 주머니늑대. 네이처 행동과 진화 제공
1803년부터 영국에서 온 정착자들은 태즈메이니아섬의 울창한 원시림을 베어내고 목초지를 만들어 양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주머니늑대가 양을 잡아먹는다는 구실로 한 마리에 1파운드씩 현상금을 내걸고 주머니늑대를 마구 포획했다. 이에 따라 주머니늑대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마지막 남은 개체마저 1936년 태즈메이니아 호바트동물원에서 죽으면서 공식 멸종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 종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고, 진화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인간이 멸종시켰으니, 복제·복원 책임 있다”
이번에 연구자들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주머니늑대가 계통분류학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 파악했다. 연구진이 파악한 주머니늑대의 디엔에이 정보를 이미 알려진 다른 유대류 동물 및 여우와 늑대, 북극여우, 코요테 등의 갯과 동물 디엔에이와 비교하여 주머니늑대의 유전적 계통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주머니늑대가 갯과 동물인 늑대나 여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캥거루와 더 가까운 동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주머니늑대와 갯과 동물은 1억6천만년 전 쥐라기 시대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분류학적으로 서로 연관성이 멀지만 비슷한 환경이나 생태적 틈새에 살다보니 점차 비슷한 모양으로 변한 ‘수렴진화’의 좋은 사례라고 밝혔다.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며 사냥하는 방법까지 비슷하기 때문에 이 두 종류의 육식동물은 두개골과 몸의 형태가 비슷하게 진화되었다.
이번에 주머니늑대의 모든 유전 정보를 파악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 디엔에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주머니늑대를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는 호박 속에 화석화된 모기 몸에서 공룡 디엔에이를 채취해 공룡을 복제했지만, 주머니늑대는 훨씬 간단하게 디엔에이를 합성해 복제에 활용할 수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박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 때문에 멸종됐던 생명체를 인간이 다시 되살리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는데, 이번 연구를 이끈 파스크 교수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는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주머니늑대를) 남획해서 멸종시킨 책임이 있으므로, 이를 다시 복원시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네이처’(Nature.com)와 인터뷰에서는 “기술적으로 이것(주머니늑대의 모든 유전정보를 해독한 것)은 주머니늑대를 복원하는 첫 단계이다. 그렇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매머드 유전자를 코끼리 세포에 넣어서 매머드를 복제하려는 것처럼 주머니늑대의 유전자를 집어넣을 수 있는 다른 유대류 동물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멸종시킨 동물에 대한 윤리인 책임이 있다. 할 수 있다면 이를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복제, 복원해도 살아남겠나?”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을 통해 멸종된 주머니늑대를 복원시켜야 하는 문제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번에 연구진이 밝혀냈듯이 주머니늑대는 인간에 의해 남획되어 멸종되기 이전에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이들을 복제하는데 성공하고 자연 생태계로 되돌려 보낸다 하더라도 이들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회의론이 있다. 또한 멸종된 동물을 복제할만한 과학기술과 자원이 있으면 지금 멸종의 길을 가고 있는 다른 동물들을 시급히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간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볏꼬리물가라는 2017년 호주 스튜어트 국립공원에서 발견됐다. 레베카 웨스트/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한편, 지난 15일에는 100여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작은 유대류 동물이 호주의 한 오지에서 다시 발견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볏꼬리물가라’(crest-tailed mulgara)라는 이름의 작은 쥐를 닮은 동물이 다시 발견되면서 주머니늑대도 어디에선가 살아남아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주머니늑대는 멸종된 이후 이를 다시 보았다는 목격담이 4000건에 가까우며, 근래에 아주 구체적인 증언이 나와서 관련 학자들이 전담 추적팀을 구성해 조사하고 있다. (관련기사 ‘주머니 달린 호랑이를 찾아라’)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eigin, C. Y. et al. Genome of the Tasmanian tiger provides insights into the evolution and demography of an extinct marsupial carnivore. Nature Ecoligy & Evolution (2017) DOI: 10.1038/s41559-017-0417-y
마용운 객원기자·굿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