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동부 앞바다에 사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헤엄치고 있다. 이번 번식기에는 새끼가 태어나지 않았다. 미국 해양대기청 제공
북대서양긴수염고래는 이미 지구에서 가장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가운데 하나다. 이 고래의 미래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현재 450여마리가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해에만 17마리가 죽었으며, 지난 11월에서 2월까지의 번식기에는 새끼 한 마리도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북대서양긴수염고래들은 주로 미국과 캐나다 동부 연안을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산다. 여름에는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메인만과 인근인 캐나다 남동부 펀디만 일대에서 보내다가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 바다로 내려간다. 미국 남동부의 플로리다와 조지아주 앞바다에서 새끼를 낳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과학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번식지와 이동 경로를 따라 고래 개체수를 조사해왔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1990년에서 2014년 사이 적어도 411마리가 태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마다 평균 17마리씩 태어나는 셈이다. 그렇지만 2016~17년 번식기에는 단 5마리만 태어났으며, 올해에는 한 마리도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과거 상업포경이 성행하던 시기에 거의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던 이들은 포경이 금지되면서 개체수를 조금씩 회복했다. 1935년에는 100마리 이하였던 것이 1990년에는 270여 마리, 2010년에는 480마리까지 늘어났다. 그렇지만 그뒤 개체수가 정체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 해마다 평균 6마리가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러던 것이 2017년에는 무려 17마리가 죽었다. 지난해 미국에서 5마리, 캐나다에서 12마리가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올 1월에도 10살 난 암컷 한 마리가 미국 버지니아주 앞바다에서 밧줄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어구에 걸린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몸에 선박과 출동한 상처가 나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북대서양긴수염고래가 죽는 원인의 80%가 인간 때문이다. 2000~2008년에 선박 충돌이 44%로 가장 큰 폐사 원인이었다.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고래들이 새끼를 낳거나 먹이를 먹는 해역에서 선박 항로를 변경하고 속도를 규제하자, 2009~2016년에는 선박 충돌로 인한 사망이 15%로 감소했다. 이제 사람으로 인한 사망 원인의 85%가 어구에 얽히는 것이다.
고래가 여름을 보내는 미국 북동부 메인만과 캐나다 남동부 펀디만 일대에는 바닷가재와 게를 잡기 위한 통발이 수백만개 설치돼 있다. 통발을 수면 위까지 연결하는 밧줄이 수천㎞에 달하고, 고래들은 복잡한 미로를 헤매면서 먹이를 구하고 있다. 7년 전부터 어민들이 통발을 엮는 밧줄을 보다 튼튼한 것으로 바꾸면서 문제가 악화됐다. 더 튼튼한 밧줄에 얽히면 빠져나오기 어려워 죽거나 심한 상처를 입는다.
지난여름 고래들은 더 큰 시련을 겪었다. 그나마 고래 보호 조처가 내려진 펀디만에서 주로 먹이를 섭취하던 고래들이 이곳보다 더 북쪽에 있는 세인트로렌스만으로 몰려갔다. 세인트로렌스만은 이전에는 고래들이 거의 가지 않던 곳으로 고래를 보호하는 대책이 없었다. 이 때문에 게 등을 잡는 각종 어구에 걸려 많이 죽거나 다쳤다. 기후변화 때문에 바닷물이 따뜻해지자 고래의 주된 먹이였던 크릴과 작은 갑각류 등이 줄어들었고, 먹이를 찾아 낯선 곳으로 이동한 고래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어구에 의한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1980년부터 2009년 사이에 촬영된 모든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사진을 분석해보면 이들 가운데 83%가 적어도 한 번은 어구에 걸렸던 상처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적어도 두 번은 걸렸으며, 많게는 일곱 차례나 걸린 고래도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이 어구에 걸린 북대서양긴수염고래에 접근해 구조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 제공
고래에 걸린 해구를 해체하는 작업. 미국 해양대기청 제공
물속에서 어구에 걸리면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해 질식사하기도 하지만, 운이 좋게 풀려난다 하더라도 부상과 감염 때문에 몇 달 뒤 죽기도 한다. 죽은 고래들을 살펴보면 몸의 곳곳에 밧줄이 감겨있고, 심지어 밧줄이 고래의 지느러미나 몸을 파고들어 상처를 낸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2010년 이후 암컷 고래가 어구에 걸릴 경우 출산율이 40%나 낮아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고래가 어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동안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정부와 학계, 환경단체, 어민단체 등이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컨소시엄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과거 암컷 고래는 3~4년에 한 번씩 새끼를 낳았지만, 이제는 8년에 한 번꼴로 낳는다. 긴수염고래는 적어도 70년을 사는데, 지금은 암컷의 평균 수명은 27~28년에 불과하다.
북대서양긴수염고래는 이제 450여 마리만 생존해있다. 번식 가능한 어미 고래는 100마리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앞으로 20년 뒤면 북대서양긴수염고래는 돌이킬 수 없는 멸종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학자들은 우려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바닷가재와 게를 잡는 통발 어구를 개량하고 선박 운항도 규제해서 고래가 당하는 사고를 줄이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으며, 법적인 제소까지 한 상태다.
북대서양긴수염고래는 다 자라면 몸길이가 13~16m, 몸무게는 40~70t에 달하며, 하루에 1~2.5t의 먹이를 먹는다. 암컷은 9~10살이 되어야 첫 출산을 하는데, 1년 동안의 임신 뒤에 몸길이가 4m, 몸무게 1.4t에 달하는 새끼를 낳는다.
몸무게의 40%가 지방이기 때문에 다른 고래와는 달리 죽은 긴수염고래는 물 위에 뜬다. 이들은 해안에서 가까운 바다에 살며, 천천히 헤엄치고, 온순했으며, 지방이 풍부하고, 죽으면 물 위에 뜨기 때문에 값비싼 고래 기름을 노린 초기 포경선단의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이들의 영어 이름이 ‘Right Whale’인 것도 잡기도 쉽고 돈벌이도 되는 ‘진짜 좋은’ 고래였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10~11세기부터 이들을 잡기 시작했는데, 13~17세기 동안 포획이 절정에 달했으며, 1700년대가 되자 이들 개체수가 너무 줄어들어 잡을 것이 없어지자 포경선단은 다른 고래들로 작살을 돌렸다. 1935년에는 남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가 100마리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긴수염고래에 대한 포획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지자,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1937년부터 긴수염고래 포획이 세계적으로 중단되었다.
마용운 객원기자·굿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