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가 유독 작은 새끼를 낳는 이유로 영양가가 부족한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란 가설이 있지만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임신 중 겨울잠을 자는 곰은 다른 포유류에 견줘 아주 작은 새끼를 낳는다. 대왕판다는 극단적이어서, 자기 몸무게의 900분의 1에 해당하는 100g의 눈도 뜨지 않고 털 한 오라기 없는 핏덩이를 낳는다.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서도 자이언트판다는 왜 이렇게 작은 새끼를 낳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풀 드문 해부학 연구결과가 나왔다. 판다 자체가 세계적으로 희귀한 동물이어서 갓 태어난 새끼 또한 구하기 힘들다. 1980년대 미국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이 중국에서 들여온 판다 링링과 싱싱이 낳은, 그러나 곧 죽은 새끼 5마리가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
생후 1주일 된 대왕판다 새끼. 유난히 작은 새끼를 낳는 곰과 동물 가운데서도 대왕판다는 특히 작은 새끼를 낳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캐서린 스미스 미국 듀크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이들 판다를 포함해 곰 10종의 갓 태어난 새끼 표본을 미세 단층촬영과 3차원 모델링 기법으로 연구했다. 이들은 ‘해부학 저널’ 12월 호에 실린 논문에서 “곰이 겨울잠 동안 임신하기 때문에 작은 새끼를 낳는다는 기존의 통념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사람 등 포유류가 평균 어미의 26분의 1 크기의 새끼를 낳지만, 곰은 몸집과 비교하면 훨씬 작은 새끼를 낳는다. 어미 북극곰은 새끼보다 400배나 무겁다.
이 문제를 설명하는 가장 인기 있는 설명은 ‘겨울잠 가설’이다. 곰은 임신을 한 상태에서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먹고 마시지 못하면서 자신과 태아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피하지방을 태워 자신의 신진대사를 유지할 열량을 얻는다. 하지만 태아는 지방을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미는 자신의 근육을 분해해 태아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한다.
어미는 근육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미성숙 상태이지만 새끼를 낳은 뒤 지방이 풍부한 젖을 먹여 오래 기르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판다 등 겨울잠을 자지 않는 곰의 새끼가 여전히 작다는 데 대해, 애초 곰 계통이 이런 제약을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곰의 겨울잠은 새끼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곰 새끼는 다른 포유류의 새끼와 마찬가지 수준으로 골격이 발달한 상태에서 태어난다. 연구자들은 “겨울잠을 자는 북극곰이나 1년 내내 먹이를 먹는 아열대의 느림보곰이나 골격의 성숙도 면에서는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갓 태어난 대왕판다 두개골의 3차원 사진. 페이슈 리, 듀크 SMIF 제공.
겨울잠이 제약요인이 아니라면 왜 곰은 작은 새끼를 낳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어미 곰이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의 변동이 제약요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곰의 예외적으로 큰 몸집, 잡식 식단, 계절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암컷의 번식 여유를 제약했기 때문에 생식을 위해 작은 초기 투자(작은 새끼)를 하도록 선택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암컷 불곰은 피하지방이 충분치 않으면 자궁 속 배아의 착상을 포기한다.
연구자들은 또 2000만년 전 처음 출현한 현생 곰의 공통조상은 몸무게 1.2㎏에 불과했는데 북극곰이 800㎏에 이르는 등 곰의 몸집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새끼의 크기는 원래 수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곰 가운데서도 예외적으로 작은 새끼를 낳는 판다를 어떻게 설명할까이다. 곰은 일반적으로 먹이가 풍부할 때 출산을 하기 위해 짝짓기 뒤 착상을 늦춘다.
보통 곰의 수정란은 몇 달 동안 자궁 속에서 떠돌다 출산 60일 전에 자궁벽에 착상한다. 그런데 대왕판다의 수정란은 분만 30일 전에 착상한다.
갓 태어난 판다의 골격을 정밀하게 조사한 연구자들은 “비글 개와 견주면 뼈가 70%쯤 발달한 상태에서 태어난다”며 “사람으로 치면 40주가 아니라 28주 만에 태어난 조산아인 셈”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태어난 판다 새끼는 이후 성장 속도도 느렸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로 “판다가 다른 곰들보다 훨씬 기초대사량이 적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양이 적고, 주식인 대나무의 영양가가 적고 특히 암컷에 필요한 칼슘이 부족해 태아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며 “그러나 충분한 해명은 되지 않고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ishu Li and Kathleen K. Smith, Comparative skeletal anatomy of neonatal ursids and the extreme altriciality of the giant panda,
Journal of Anatomy (2019) doi: 10.1111/joa.13127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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