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를 부리로 집어 가슴 깃털을 긁는 코뿔바다오리. 아이슬란드 그림시 섬에서 2018년 촬영됐다. 아넷 파예트 외 PNAS (2019) 제공.
침팬지, 멧돼지, 악어, 까마귀, 양놀래기의 공통점은? 모두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침팬지가 가는 나뭇가지를 개미굴에 집어넣어 ‘흰개미 낚시’를 한다는 제인 구달의 발견으로 사람 아닌 동물도 도구를 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이런 능력은 영장류를 비롯해 돌고래, 코끼리 등 ‘똑똑한’ 동물은 물론이고 최근 들어 악어(▶관련 기사: 악어도 도구 이용해 사냥, 나뭇가지로 백로 유인), 멧돼지(▶관련 기사: 멧돼지도 도구 사용한다-나무껍질로 '삽질') 등 척추동물 일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영장류 다음으로 도구 사용이 가장 많이 보고되는 동물이 조류다. 특히 까마귀와 앵무새 무리는 머리 좋기로 유명하다.
야생 바다오리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닷새는 까마귀나 앵무새와 달리 물속에서 사냥하기 때문에 도구를 쓸 필요나 기회도 없고, 능력도 떨어져 왔다. 오리류의 첫 번째 도구 사용 사례이다.
봄 번식기에 코뿔바다오리는 해안 절벽에서 무리 지어 번식한다. 스티브 가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넷 파예트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웨일스와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코뿔바다오리(퍼핀)가 막대기를 이용해 등과 가슴을 긁는 행동을 각각 독립적으로 관찰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야생에서 도구를 이용해 몸을 단장하거나 관리하는 행동은 코끼리와 영장류가 유일하고 조류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1700㎞ 떨어진 두 곳에서 확인돼 이런 행동이 우연이 아니라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고, 바닷새의 인지능력이 알려진 것보다 뛰어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첫 목격은 2014년 6월 웨일스 스코머 섬으로, 번식지 절벽 아래 물에 앉은 바다오리 가운데 한 마리가 절벽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작은 나뭇가지로 약 5초 동안 등을 긁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 오리는 날아갈 때도 막대기를 물고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간직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두 번째 관찰은 2018년 아이슬란드 그림시 섬의 바다오리 번식지에서 이뤄졌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무인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 바다오리는 바닥의 풀밭에서 막대기를 부리로 집어 든 뒤 가슴의 깃털을 긁은 뒤 내려놓았다.
동물이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은 대부분은 먹이를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뉴칼레도니아까마귀가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부리로 물고 나무껍질 틈에 숨은 애벌레를 잡는다.
개미산을 이용해 깃털을 소독하는 바람까마귀 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드물지만 몸 관리에도 도구를 쓴다. 영장류는 약초나 독충을 몸에 문질러 기생충을 제거한다. 마찬가지로 200종이 넘는 새들이 ‘개미 목욕’을 한다. 개미를 부리로 물어 깃털에 문지르거나 개미굴 근처에서 모래 목욕을 한다. 개미 몸속에 든 개미산이 살충과 살균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바다오리가 몸을 긁는데 쓴 나뭇가지가 둥지용 재료는 분명히 아니라고 밝혔다. 바다오리는 굴속 둥지를 부드러운 풀이나 깃털로 단장한다.
이번에 관찰한 행동은 바다오리가 깃털에 붙은 기생충을 떼어내거나 그로 인한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 같다고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실제로 두 번째 관찰을 한 그림시 섬에서는 바닷새 진드기 감염이 만연했다.
연구자들은 “새들의 부리는 몸의 거의 모든 부위를 고를 수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니”라며 “사육하는 앵무새가 막대기로 몸을 긁는 모습이 관찰된 것처럼 드물지만, 야생에서도 이런 행동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번식기 코뿔바다오리 수컷의 화려한 모습. 오리류의 인지능력은 지금까지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리처드 바르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도구를 이용해 먹이를 잡는 동물은 그러지 못하는 동물보다 매우 강력한 경쟁 수단을 보유하게 된다. 이번 발견은 그렇게 강한 선택압력 없이도 도구 사용이 출현할 수 있음을 보인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제까지 물새들은 두뇌 크기가 비교적 작아 정교한 인지능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바닷새의 인지능력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바닷새는 예측 못 할 환경에서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 유연한 문제 해결 능력이 진화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도구 이용해 가슴 긁는 바다오리 유튜브 동영상(한겨레 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용 저널: PNAS, DOI: 10.1073/pnas.1918060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